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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안전파수꾼 교육에 참가자가 있는 힘을 다해 인공호흡법을 실습하고 있다.
 시민안전파수꾼 교육에 참가자가 있는 힘을 다해 인공호흡법을 실습하고 있다.
ⓒ 시민안전파수꾼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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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후 7시경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아파트 입구 길거리에 50대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가던 10살짜리 초등 여학생이 어른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재빨리 119에 신고한 뒤 무릎을 꿇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30여 회 있는 힘을 다해 가슴을 압박하자 남자는 다행히 1분 뒤에 깨어났다. 이 여학생은 불과 4시간 전 소방서에서 안전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 서울지하철 3호선 매봉역에서 도곡역을 향하던 열차 안. 한 70대 남성이 열차 내부에 시너를 붓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때마침 업무를 보러가기 위해 열차에 타고 있었던 40대 역무원이 재빨리 소화기를 꺼내 불이 번지는 걸 막고 승객들에게 비상벨을 눌러 화재사실을 기관사에게 신고하라고 했다. 그 결과 역무원들이 곧바로 소화기를 들고 출동했고, 화재 발생 6분 만에 진압할 수 있었다. 승객 370명은 모두 무사히 대피했다.

모두 작년 초 서울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사건 모두 초동대처를 잘 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은 불과 4시간 전에 배운 심폐소생술로 사람을 살렸고, 역무원도 재난 상황에서 침착하게 필요한 조치를 실행해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10여년 전 대구지하철참사 때는 초동대처에 우왕좌왕하다 192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안전교육 프로그램이 있지만,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머리 속에 지식은 많지만 실제 몸으로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 아닌 행동으로... '10만 파수꾼'을 양성하자

서울시소방재난본부는 이 같은 사례에 착안해 작년 6월 새로운 개념의 안전교육을 도입했다. 기존의 '예방위주' 교육 대신 '행동중심' 교육을 해보자는 것.

2018년까지 1000만 서울시민 가운데 우선 1%인 10만 명을 양성해보자는 의미에서 '10만시민안전파수꾼'이라고 명명했다.

"본인이나 주변인이 위험 상황에 처했을 경우 가장 먼저 119가 떠오르겠지만, 119가 오려면 신고한 뒤 아무리 빨라도 3-5분은 걸립니다. 그 사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할 수 있는 초동대처를 잘 해야 한다는 거죠."

손병두 서울시소방재단본부 재난분석팀장은 시민안전파수꾼의 역할과 중요성을 이같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하철에서의 사고 대처요령을 교육받고 있는 예비 시민안전파수꾼들.
 지하철에서의 사고 대처요령을 교육받고 있는 예비 시민안전파수꾼들.
ⓒ 시민안전파수꾼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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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안전파수꾼이라고 해서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간단하다. 8시간의 무료 기본교육을 이수하면 시민 누구나 될 수 있다. 기본교육은 내용에 따라 ▲안전의식 및 위기상황 판단(2시간)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3시간) ▲재난대응 표준행동요령(3시간) 등으로 구성된다. 원하는 사람은 연령별, 장소별로 나눠 4시간짜리 심화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육 참가자들이 남긴 후기를 보면 특히 화재, 태풍, 지진, 지하철, 엘리베이터 사고 상황 체험이 인상적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남기고 있다.

손 팀장은 시민들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잘못 알고 있는 안전상식으로 소화기 사용법을 꼽는다. 불이 나면 무조건 소화기를 가져와 들이대는 건 아주 위험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소화기를 무턱대고 쏘면 오히려 시야를 가려서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 있으므로 가장 먼저 대피로를 확보한 뒤 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유럽에서도 실내에서는 소화기를 주의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교육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3만 2천명 양성... 대학에 강의도 개설

시민안전파수꾼은 연중 수시로 모집하고,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홈페이지(http://fire.seoul.go.kr) 혹은 전화(02-3706-1724)로 신청하면 된다.

광나루안전체험관(광진구 능동)과 보라매안전체험관(동작구 신대방동) 등 2곳에서 나뉘어 이뤄지고, 단체신청의 경우 출장교육도 가능하다.

현재까지 배출된 시민안전파수꾼은 3만2천여명.

올 4월 서울시소방본부가 교육을 받은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 직원 1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만족도가 99%(매우만족 77%, 만족 22%)에 이르렀을 정도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 덕분인지 작년 말 서울시민 14만여 명이 참가한 인터넷 인기투표에서, 10만시민안전파수꾼이 '서울시 10대뉴스'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시민안전파수꾼이 명성을 얻자, 상명대학교에서는 올 1학기 2학점 30시간짜리 시민안전파수꾼 강의가 개설되기도 했다. 30일 육군사관학교와도 MOU를 체결해 생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시민안전파수꾼 교육 참가자들이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에 대해 교육받고 있다.
 시민안전파수꾼 교육 참가자들이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에 대해 교육받고 있다.
ⓒ 시민안전파수꾼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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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불이 나면 어디로 대피해야 할까

"시민안전파수꾼 교육을 받기 얼마 전 아파트에 있는데 사이렌이 울려 밖을 내다봤더니, 소방차 10여 대가 출동해 우리 동 쪽으로 향하는 거예요. 우리 동에 불이 난 줄 알고 갑작스런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린이집 음악강사 유아무개씨(여, 44)는 당시 무조건 밑으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라 소방관들이 문을 두드리고 화재가 아님을 알려줘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화재신고가 들어온 곳이 윗층이 아니라 아래층이었다. "화재가 윗층에서 발생하면 밑으로 내려가는게 맞지만, 아래층에서 나면 옥상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당시엔 몰랐다"는 유씨는 파수꾼 교육 이후 항상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시민안전파수꾼 강사는 시민강사 36명과 119대원 10여 명. 최고의 안전전문가를 엄선하는 만큼, 안전교육을 오랜 동안 수행해온 사람들도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속출한다는 게 최 팀장의 귀띔이다.

'위기상황 판단' 과목 시민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권용희씨는 "위기상황에서는 당황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의외로 잘못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며 "파수꾼 교육은 안전행동을 체득화 할 수 있는 차별화된 교육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태그:#시민안전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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