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 포스터 20년 만에 극장으로 돌아온 속편. 당연히 20년 전 개봉한 <인디펜던스 데이>와 비교를 피할 수 없다.

▲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 포스터 20년 만에 극장으로 돌아온 속편. 당연히 20년 전 개봉한 <인디펜던스 데이>와 비교를 피할 수 없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파격이 진부함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꼭 20년이면 충분했다. 이건 재난영화의 거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롤랜드 에머리히의 이야기다. B급 SF연출부터 시작해 제작비 많이 들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재난 블록버스터 장르로 할리우드서 일가를 이룬 바로 그 감독 말이다. 괴수나 외계생명체의 습격,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등 다양한 수법으로 몇번이나 인류를 절멸의 위협에 몰아넣은 그에게도 한 때는 촉망받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조지 루카스가 직접 연출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을 보고 영화에 꿈을 품은 독일청년은 20년이 지나 할리우드서 어딘지 모르게 <스타워즈>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게이트>를 찍어낸다. 당대의 액션스타 커트 러셀이 주연한 이 영화는 개봉한 지 20년도 더 흐른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팬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롤랜드 에머리히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최고수준의 작품임은 물론이다.

굳이 '최고' 옆에 '수준'을 같이 적는 건 모두가 생각하는 바로 그 이유에서다. 롤랜드 에머리히를 할리우드를 넘어 세계 영화계의 독보적인 파괴신으로 군림하게 한 결정적 계기,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시리즈가 그랬듯 수많은 영화꿈나무에게 영화에 대한 꿈을 품게한 <인디펜던스 데이>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보고 성조기 펄럭거리는 미국발 '국뽕영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십수 년 간 주구장창 반공영화를 찍어댔으면서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작품 하나 남기지 못한 우리네 사정을 먼저 돌아볼 일이다. 자주 '뻔하고 억지스럽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오락영화 감독이 그렇지 뭐'하고 웃어넘기는 롤랜드 에머리히에게선 일견 대인배의 풍모까지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1996년 7월

연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전율이 이는 연설을 남긴 배우 빌 풀만. 20년 전 이 작품은 분명 훌륭한 영화였다.

▲ 연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전율이 이는 연설을 남긴 배우 빌 풀만. 20년 전 이 작품은 분명 훌륭한 영화였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인디펜던스 데이>가 개봉한 1996년 7월을 기억한다. 이후 스무 번이나 더 7월을 겪었지만 나는 아직도 이 해의 7월만큼 풍요로웠던 7월을 알지 못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감독하며 할리우드 최고 수준의 블록버스터 연출자로 자리매김한 마이클 베이의 인생작 <더 록>부터 20년 간 네 편이나 속편을 내놓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임파서블>,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만남을 성사시켜 큰 화제를 모은 <히트>가 <인디펜던스 데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토네이도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트위스터>, 숀 펜이 사형수로 분해 강렬한 연기를 펼친 <데드 맨 워킹>, 두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굿바이 마이 프렌드>, 이란이 낳은 세계적 명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등도 모두 이 달 개봉한 작품들이다. 디즈니의 <노트르담의 꼽추>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의 한·미 애니메이션 대전은 덤이었다.

월드컵 죽음의 조를 연상시키는 1996년 7월 개봉작 가운데서 <인디펜던스 데이>는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건 이 영화가 이제껏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압도적인 재난을 그린 덕분이었다. 지구 상공에 도시 하나 크기는 족히 될 법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우주선이 멈추었을 때 스크린을 마주한 모든 관객은 절로 숨을 죽였다. 그로부터 온갖 위협이 쏟아지고 이에 대처하는 인류의, 주로 미국의 분투이긴 했지만 어쨌든, 분투는 보는 이를 경탄하게 하기 충분했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할리우드 최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규모의 영화'로 당대의 관객과 마주했다. 그리고는 가장 비관적인 평론가의 팔짱을 풀고 박수를 받는 데 성공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그런 영화였다.

20년 후

안젤라 베이비 비중은 꽤 있지만, 정작 이야기에 별 필요가 없는 조연 레인 라오 역으로 출연한 안젤라 베이비의 모습.

▲ 안젤라 베이비 비중은 꽤 있지만, 정작 이야기에 별 필요가 없는 조연 레인 라오 역으로 출연한 안젤라 베이비의 모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하지만 2016년 6월 22일, 거의 20년의 시차를 두고 개봉한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는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우주선의 크기나 형태, 본편에 등장했던 많은 배우들은 여전했지만 롤랜드 에머리히에겐 20년 전 자신이 내보인 승부수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던 탓이다. 그의 독문수법이라 할 만한 규모의 영화는 더는 관객을 압도하지 못하고 그가 제공하는 시각적 경험 역시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놀라운 건 영화 전반에서 감독의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마치 마이클 베이가 차이나머니를 투자받아 <트랜스포머> 속편을 연이어 내놓았을 때처럼 영화는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단 2시간짜리 광고에 가깝게 느껴진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자기만의 승부수 하나 없이 흔하디흔한 공식대로 영화 전체를 얼기설기 짜놓았고 그로부터 본편에서 맛볼 수 있었던 어떤 종류의 감격도 재생하지 못한다.

이때문에 많은 이들은 롤랜드 에머리히가 노쇠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현존하는 재난영화계 최고 거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 롤랜드 에머리히와 같은 종류의 감독은 캐릭터나 세계관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다. 그가 찍는 영화란 태생적으로 드라마나 캐릭터보다 재난과 파괴의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어떻게 파괴할 것인지, 어떤 충격을 줄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기에 속편보다는 다른 방식의 재난영화를 한 편 더 찍는 게 효과적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롤랜드 에머리히는 <인디펜던스 데이>의 영광을 되살리는 데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화려한 필모그래피 가운데 그 흔한 속편이 한 편도 없다는 게 이를 잘 보여준다. <인디펜던스 데이>에 대한 속편 제작 요구가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제기돼 왔음에도 그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었다. 그런 그에게도 차이나머니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됐고 그는 마침내 이 영화를 내놓았다.

본편에 출연한 배우들과 시종 유쾌하게 찍어낸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는 일종의 팬픽을 떠올리게 한다. 억지로 끼워넣은 흔적이 역력한 중국인 배우들은 팬픽을 넘어 광고에 가깝다. 그 스스로 찍어낸 팬픽이며 투자자의 입맛에 맞춘 한 편의 광고. 그게 이 영화의 진짜 모습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더는 작가로서만 영화를 찍지 않게 되었다. 오랜 경쟁자 마이클 베이가 그렇듯이.

어느덧 롤랜드 에머리히의 등에도 석양이 진다.

감독과 배우의 웃음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오른쪽)과 본편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인 배우 제프 골드브럼. 이 거장도 결국,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다.

▲ 감독과 배우의 웃음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오른쪽)과 본편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인 배우 제프 골드브럼. 이 거장도 결국,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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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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