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친정언니와 중국 북경을 여행했다. 자매끼리의 여행은 처음인지라 우리는 흥분했다. 그래서 사지 않아도 될 것들을 부러 사기도 했다. 그중에 진주도 있었다.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렸던 천제단 인근에는 진주로 만든 장신구들을 파는 큰 쇼핑센터가 있었다. 그곳에 들렀던 우리 자매는 그만 살짝 이성을 잃고 말았다. 우윳빛 진주가 발에 밟힐 듯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귀고리와 목걸이를 사고야 말았다. 가격이 생각보다 헐해서 샀지만 그것이 진품인지 아니면 가짜인지의 여부는 따지지 않았다. 어차피 진품 진주는 우리에게 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 스타인벡이 각색한 영화, <진주>

'진주(眞珠)'는 이름 그대로 진귀한 보석이다. 팥알만 한 크기에도 가격은 엄청나서 범인들은 선뜻 손에 넣기가 쉽지 않다. 귀해서 더 갖고 싶은 게 보석이리라. 그러나 가지지 못했을 때는 원하지만 막상 손에 넣으면 혹시 잃거나 남의 손을 탈까 봐 염려가 되는 게 또 보석이기도 하다.

1947년에 만들어진 <진주>(La Perla)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존 스타인벡의 작품을 시나리오로 각색해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각색하고 할리우드의 메이저급 영화사가 아닌 멕시코의 '에밀리오 페르난데즈' 감독에게 건네준다.

 1947년 작 <진주>는 세월을 뛰어 넘는 감동이 있다.

1947년 작 <진주>는 세월을 뛰어 넘는 감동이 있다. ⓒ DRFA예술영화관


이 영화는 그해의 골든 글러브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거친 바다를 배경으로 멕시코의 하층민들의 삶을 이토록 절묘하게 담아내다니, 70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 이 시대에 봐도 작품의 감동은 여전하게 전해져 왔다.

'퀴노'는 바다에 목숨을 걸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어부다. 하나뿐인 아들이 전갈에 물려 생사를 헤매지만 가난해서 병원에 찾아갈 돈도 없다. 돈에 눈이 먼 의사는 가난한 환자들을 내 몰라라 한다. 아들을 안고 몇 시간 째 기다리던 퀴노와 그의 아내를 그는 끝내 내치고 만다.

아들에게 다른 삶을 줄 거야

바람이 불어 여러 날 바다에 나가지 못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콩 한 줌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바람을 살피던 퀴노는 바다로 나간다. 칼 한 자루를 옆구리에 차고 바다 깊이 자맥질해 들어간다. 그가 찾는 것은 바로 '진주'다. 운이 좋아 진주를 품은 조개를 발견하면 당분간 먹고 살 돈을 얻을 수 있다.

퀴노에게 신이 선물을 주었다. 숨을 참고 바다 속 저 아래로 내려간 그의 눈에 커다란 조개가 하나 보인다. 바로 진주를 품고 있는 조개였다. 여태껏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크고 아름다운 진주를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재앙의 시작이었다.

진주를 탐내는 사람들이 그의 목숨을 노린다. 퀴노의 아내는 진주를 바다에 던져버리자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일확천금을 손에 넣었는데 어찌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끝내 퀴노와 그의 아내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마을을 몰래 떠나야만 할 처지에 놓인다. '조개의 눈물'이라 불리는 진주는 부와 기쁨을 주었지만 또한 슬픔과 고통 또한 안겨 주었다. 퀴노의 꿈은 소박했지만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진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진주>. ⓒ DRFA예술영화관

퀴노는 아들에게 빛나는 미래를 안겨 주고 싶었다. 그의 꿈은 소박했다. 오직 아들을 공부 시켜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후안티노는 공부를 시킬 거야. 상류층 사람이 되도록 할 거야."

퀴노의 바람은 좋은 옷도 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식에게 공부를 시켜 아들은 자신처럼 하류 인생이 아닌 상류층 사람으로 살기를 바랬다.

모든 아비들은 자식에게 기대를 건다. 내 자식은 나와 달리 살기를 바란다. 서툴고 부족해서 실수 투성이였던 내 삶을 아들은 닮지 않기를 바란다. 자식에게 거는 희망이 있어서 부모는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산다. 퀴노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야 말해 더 무엇 할까. 그의 소망은 오직 아들을 공부 시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무참히 깨어지고 만다.

조개의 눈물, 진주의 저주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냥개를 앞세우고 추격한다. 마치 사냥감을 쫓듯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뒤쫓는다. 그들에게서는 천륜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석을 탐하는 자들은 형제끼리 서로 죽이기까지 한다. 

진주의 저주였을까, 그 어느 누구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다. 진주를 탐했던 자들은 추악한 얼굴로 죽어갈 뿐이다. 퀴노 역시 제일 소중한 것을 잃었다. 진주를 바다에 던져 버리자는 아내의 간청을 들었더라면 아들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을 가르치고 아내와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꿈은 소박하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하다. 우리 모두의 꿈도 그와 다를 바가 없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데 어떻게 진주를 버릴 수 있단 말인가. 퀴노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들을 잃고서야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퀴노는 깨닫는다. 아내와 함께 손을 맞잡고 진주를 바다로 던져버린다. 거대한 파도가 진주를 삼킨다. 이제 그들 부부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사랑하는 아들도 없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도 없다. 진주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이었던 것일까.

에밀리오 페르난데즈(Emilio Fernandez) 감독

1947, Venice Film Festival 촬영상
1948, Ariel Awards, Mexico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남우주연상 수상
1949, Golden Globes, USA 촬영상



LA PERLA 존 스타인벡 진주 에밀리오 페르난데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