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본격적인 제주 이주를 앞두고 서울과 제주를 오갈 때만 해도 '제주에서의 의식주'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주 비용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었다.

앞선 글(제주에서 결혼한다니까... "너희 로또 맞았니?" / 제주에서 집 구하기, 이렇게 '빡셀' 줄이야 참조)에서 언급했듯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주'(住)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남아있는 '의·식', 그 중에서도 특히 '식'에 대한 지출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가 걱정이었다

대개의 이주민들이 그렇듯 우리 역시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하면서 줄어드는 수입 수준을 각오한 상태였다. 다만 줄어든 수입으로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서울에서처럼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던 습관을 버리고,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새로운 생활 습관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결국은 먹는 것이 문제였다. 도심지에서 정장을 입고 출퇴근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의복과 관련된 비용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지만, 대신 먹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지출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먹는 것이 문제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위해 절물자연휴양림을 찾는다. 남들은 휴가 계획을 큰 맘을 먹어야 찾을 수 있는 이 곳을 산책길로 이용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위해 절물자연휴양림을 찾는다. 남들은 휴가 계획을 큰 맘을 먹어야 찾을 수 있는 이 곳을 산책길로 이용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 이영섭

관련사진보기


제주도의 물가, 특히 먹는 것과 관련된 물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분분하다. 하나의 팩트를 놓고 이렇게 여러 가지 주장이 난립한다는 것은 결국 바라보는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먹거리 물가 중 외식 물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리가 가능하다. 관광지에 위치한 음식점이라든지, 큰 도로에서 관광객을 주 고객으로 삼는 음식점의 물가는 상당히 비싸다. 관광지가 아닌 도민들이 이용하는 음식점들의 경우에도 도시에서처럼 음식점끼리 출혈을 감수하며 가격 경쟁을 할 일이 없기에 1000원 김밥처럼 획기적으로 저렴한 곳을 찾기 힘들다. 한 마디로 외식 물가는 도시보다 다소 비싸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가격의 가게를 만나기도 한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가격의 가게를 만나기도 한다.
ⓒ 이영섭

관련사진보기


제주 이주민들이 장을 보는 방법

의견이 분분한 것은 외식보다는 집에서 해먹는 일반적인 식재료와 관련된 부분이다. 일단 제주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분들, 특히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며 지역 내 네트워크가 형성된 분들은 먹을 것을 어느 정도 자급자족할 수 있기에 '열심히 움직이기만 하면 굶어 죽진 않는 곳이 제주'라고 입을 모은다.

육지에서 이주해온 분들 중 농업이나 어업·축산업과 관련된 일을 했다거나, 하다 못해 시골장에 익숙해 농수산물에 대한 정보와 시세에 통달한 분들의 경우에도 오일장의 저렴한 물가 덕에 생활비가 많이 줄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 의견을 내는 그룹은 위의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 일반적인 이주민들이다. 즉, 도시에서나 제주에서나 대형마트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서울과 제주를 왔다갔다하며 생활해본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제주가 산지인 식재료는 당연히 제주도 마트가 싸다. 육지와 중국이 산지인 식재료는 육지 마트가 싸다. 즉, 같은 브랜드의 대형마트라 해도 각각의 품목에 따라 육지에 비해 싸기도, 비싸기도 하기에 이렇게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한 것이다.

우리가 처음에 생각한 방안은 오일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농수산물의 경우에는 대형마트보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이 훨씬 신선하고 저렴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평생 시장을 떡볶이 먹으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해온 우리에게 오일장은 너무나 높고 큰 벽이었다. 가격 흥정은 고사하고, 판매 상품에 가격표라는 것이 거의 붙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봐도 육지것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우리는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던 것이다(물론 시장 상인분들 대부분이 양심적이고 좋은 분들이었지만 그중에는 분명 바가지 씌우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분들이 있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집을 구할 때도 그랬다. 가뜩이나 육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한몫을 챙기려는 업자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얼굴에 '순진무구'(라고 쓰고 '어리숙한'이라고 읽는다)라는 낙인이 찍힌 우리에게 정가가 정해지지 않은 매물에 대한 가격 협상은 '호갱'(호구+고객)이 되는 지름길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공개적인 가격이 제시되는 신축 분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오일장에 대한 아픈 기억만 남긴 채 우리는 결국 제주에 와서도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비용적인 측면은 차지하더라도 도시의 냄새가 가득해 되도록 멀리하고 싶은, 그곳 말이다.

플리마켓에서 작은 희망을 찾다

제주에 온 후 도서관을 찾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특히 한라도서관은 시설이나 주변환경 등에서 도민들에게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제주에 온 후 도서관을 찾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특히 한라도서관은 시설이나 주변환경 등에서 도민들에게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 이영섭

관련사진보기


그랬던 우리에게 최근 들어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제주도 내 플리마켓의 수와 규모가 점점 증가하면서 판매물품 또한 기존의 공예품과 가공식품 위주에서 벗어나 농민들이 직접 수확한 직거래 농산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말이 되면 제주 이곳저곳에서 10개 이상의 플리마켓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들을 잘 뒤져보면 건강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마트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어차피 직접 먹을 것이기에 '파치' 위주로 쇼핑을 하면 더더욱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마켓 한 편에는 어린이를 위한 체험활동과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함께 펼쳐지고 있다.
 마켓 한 편에는 어린이를 위한 체험활동과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함께 펼쳐지고 있다.
ⓒ 이영섭

관련사진보기


지난 26일엔 아라동에 열린 플리마켓을 찾았다. 평소에는 금·토요일 양일 간 '지꺼진장'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지만 매달 네 번째 일요일에는 '곶자왈도체비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곶자왈 기금조성을 위한 모금활동과 각종 이벤트를 함께 진행하는 곳이다.

아이들을 위한 각가지 체험활동과 곶자왈 기금조성을 위해 기부된 중고서적을 구경하던 중 찐 옥수수를 판매하는 셀러 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찐 옥수수 한 봉지를 사 들고 한 입을 베어 문 순간 우리는 탄성을 내뱉었다.

"너무 쫄깃하고 달다! 그런데 이거 설탕이나 사카린 많이 친 거겠지?"

먼저 사과부터 드린다. '달다 = 설탕쳤다'라는, 도시에서 온 무식쟁이의 편협한 경험에서 나온 망언 말이다.

우리가 먹은 옥수수는 '초당 옥수수'라는, 부끄럽지만 평생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품종이었다. 일반 옥수수에 비해 당도가 3배 정도 높아 찔 때는 소금이나 설탕 같은 걸 넣지 말아야 하며, 찌는 것이 귀찮으면 그냥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군옥수수 맛이 나는 옥수수. 정말 처음 먹어보는 품종이었다(편의점 즉석 버터구이 옥수수도 아니고, 생 옥수수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다니!).

초당 옥수수 중에서도 특히 제주 초당 옥수수는 강한 해풍을 맞고 자라 그 맛이 특히 좋다 하는데, 이 초당 옥수수 파치 10개들이 한 봉지가 단돈 5000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초당옥수수의 또 다른 이름은 마약 옥수수다. 한 번 맛보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초당옥수수의 또 다른 이름은 마약 옥수수다. 한 번 맛보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 이영섭

관련사진보기


플리마켓의 역할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현지인들에게는 육지에서 온 다양한 분야의 셀러들의 감각 있는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육지에서 온 우리 같은 이주민들에게는 현지에서 수확한 건강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처럼 젊은 이주민과 현지인들 사이의 네트워크 역할을 하며 점점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플리마켓이 이들 모두에게 보다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강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무대가 돼주길 기대하고 또 기대해본다(판매되는 파치 상품의 종류도 점점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태그:#제주이주, #도체비장, #플리마켓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