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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를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에서 생리대는 감춰야 할 것, 숨겨야할 것이다.
 생리를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에서 생리대는 감춰야 할 것, 숨겨야할 것이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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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과거에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생리대를 받았다. 낱개 한 개의 생리대를 한 번 더 포장한 상태였다. 얇은 종이 포장지를 먼저 뜯고, 생리대를 직접적으로 감싸는 두 번째 포장지를 뜯었다. 그 과정이 사회가 요구하는 생리에 대한 이미지와 같다고 느꼈다. 깔끔하게, 소위 '센스있게' 감춰져야 하는 것이 생리다.

누가 생리를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었을까? '생리대'라는 단어는 불특정 다수에게 완전히 공개된 장소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 대부분 지시대명사로 불리고, 보통의 목소리 크기보다 작게 말하는 분위기가 있다.

'여자들이 먼저 부끄러워하며 생리를 숨긴다'는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화살은 '생리대는 거북하니 위생대로 부르라'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지난 15일, 광주 광산구의회 정례회에서 저소득층 지원 물품에 생리대를 추가하자는 내용의 건의안이 제출됐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저소득층 청소년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지자체가 지원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박삼용 의원(새누리당)이 '생리대'라는 용어 사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말씀을 안 드리려고 했다"며 말문을 연 박 의원은 "(생리대는) 청소년이 되었든 여성이 되었든 조금 듣기 거북하다"고 말했다. 그는 "위생대, 그러면 대충 다 알아들을 것이다, 본회의장에서 생리대라는 것은 좀 적절치 못한 그런 발언이지 않으냐 그런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이 알려진 후, SNS에는 다른 내용 없이 오로지 '생리대'나 '생리'를 반복하는 글들이 많아졌다. 생리대를 다른 단어로 바꿔 부를 것을 요구할 수 있던 젠더 권력에 대한 항의다.

생리혈이 새서 귀띔을 받을 때, 아무렇지 않은 양 한 달 에 한번 생리를 거쳐야 하는 같은 여성의 마음이 느껴져 안도한 적이 있다. 어딘가에서 생리가 새거나 생리대가 없어도, 적어도 최소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동시에 그 도움 요청은 사회가 원하는 '감춰진 상태의 생리'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생리대가 듣기 거북하다"는 말은 그렇게 생리를 숨기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어떤 여성들, 특히 연령대가 높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생리대를 위생대나 월경대로 부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박 의원이 한 말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남성 의원이, 거북하다는 이유로 생리대라는 명칭을 쓰지 말아 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생리대 지원을 논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대부분 여성이 생리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현재, "위생대라는 단어가 틀린 말은 아니지 않으냐"는 반박은 기계적 중립을 따르는 것이다.

젠더권력에 뿌리를 둔, 생리에 대한 '자신있는 무지'

나경채 정의당 의원이 박삼용 의원의 발언을 비판하며, 해당 발언이 담긴 회의록을 캡쳐해 SNS에 올렸다. 나 의원은 박 의원의 발언을 소개하며 "그가 느꼈을 그 거북함이 참 거북하다"고 말했다.
 나경채 정의당 의원이 박삼용 의원의 발언을 비판하며, 해당 발언이 담긴 회의록을 캡쳐해 SNS에 올렸다. 나 의원은 박 의원의 발언을 소개하며 "그가 느꼈을 그 거북함이 참 거북하다"고 말했다.
ⓒ 나경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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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성 가족구성원도 한때 생리에 대한 대화를 불편해했다.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여자끼리'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숨길 필요가 없으므로 반대했고, 나를 포함한 여성 가족구성원들은 패드나 탐폰, 팬티라이너, 생리대를 감싸버릴 용도의 신문지 조각 등을 숨겨 보관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다른 불만을 들은 적은 없다. 이것은 특별한 경우다. 남성 구성원의 주장을 거역할 수 없는 가정에서는 집에서 온전한 편안함으로 생리주기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한, 혹은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여기서 나아가 생리에 대한 금기는 공적인 영역에서 더욱 치밀하게 작동한다.

사회는 생리에 대해서는 쉬쉬하면서, 임신과 출산은 당연하고 무조건적인 것으로 여긴다. 생리를 여전히 몽정이나 대소변, 몸에 난 상처와 같은 선상으로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 캡처 형태로 떠도는 글에서도 생리에 대한 '자신있는' 무지를 엿볼 수 있다. 하루에 사용하는 생리대가 두 개일 것이라는 확신과 '생리대가 거북하다'는 박삼용 의원의 말은 젠더권력이라는 같은 뿌리를 지닌다(관련 기사 : 일베서도 웃음거리 된 '생리대 가격 전혀 비싸지 않다'는 주장).

SNS에서 화제가 된 "천을 끊어다 면생리대는 만들어 쓰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관련 기사 : "시장 가서 천 끊어다 면 생리대 만들어 쓰라" 고나리질에 대한 현실적인 답변) 생리대가 빳빳하게 마를 수 있도록 볕이 들어오는 공간과, 거리낌 없이 건조시킬 수 있는 여유, "생리대는 여자의 물건이니 내 눈에 띄지 않게하라"고 말하는 남성 가족구성원이 없는 상황을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

기업별로 내놓는 생리대가 모든 여성에게 딱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나, 생리통이나 질환을 유발하지 않는 생리대를 찾아 '유랑'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있지 않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성의 수만큼 생리의 모습 역시 저마다 다르다.

위생대라는 말이 거북하지 않다면 생리휴가는 (지금도 보건휴가라는 명칭이 붙지만) 위생휴가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생리통은 위생통증이라고 부를 것인가? 생리불순이나 탐폰은 또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젠더권력은 그것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것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 한 그렇다. 이런 불균형을 눈앞에 두고도 '여자의 센스'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태그:#생리대, #생리, #위생대, #박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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