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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바크 섬으로 가는 정기 여객선 ⓒ 강은경
배에 오른 지 두 시간이나 지났다. 리오 투바에서 발라바크(Balabac)까지 하루에 한 번 뜨는 정기여객선. (발라바크는 팔라완 남쪽 끝에 있는 가장 큰 섬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영해와 접해 있다. 넓이 324제곱킬로미터. 무슬림들이 물고기를 잡으며 쌀과 코코넛 농사를 짓고 산다.)

나는 팔라완 최남단에 있는 그 섬까지 가보고 싶었다. 팔라완의 북쪽 끝 부수앙가 섬에서부터 이 여행을 시작했으니. 무슬림 위험지역으로 알려진 팔라완 남쪽으로 내려올 때, 마음속에 거미줄처럼 서려있던 두려움이 좀 가셨다. 낯 뜨거운 신고식(?)을 호되게 치른 후에. (관련 기사 : 배낭여행 중 '납치 사건', 그게 오해였다니)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은 세상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물론 특별히 더 위험한 지역도 있고. 그런데 '한국은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나라, 교통사고 사망률이 세계 1위로 악명 높은 나라...' 아니냐며, 무서워서 어디 한국 여행을 하겠냐는 외국 여행자들을 더러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안전의식이 둔해 그런 위험을 못 느끼며 한국에서 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필요 이상 두려움을 갖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아무튼 그렇게 위험지역으로 알려진 곳도 막상 가보면, 죽고 사는 일상이 그저 평범하고, 오히려 더 평화로운 곳도 있었다.

팔라완도 그런 곳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는 지나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행동반경을 제약하고, 미지의 문화 속에서 거닐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며, 영혼의 자유를 깎아먹는 정신은 애초 사절이었다. 그러니 혼자 겁도 없이 여기까지 배낭을 둘러메고 왔지. 물론, 위험 신호를 알리는 직관의 안테나를 높이 뽑아 올리고, 항상 매사 조심해야지. 나쁜 운들은 비켜가길 바라며.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 긴장감과 설렘에 들떠 다시 배낭을 메고 나섰는데, 이제나 저제나 배가 출항할까 기다리다가 좀 지쳤다. 선실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눈이 부시게 푸른 바다 위에서 달콤한 낮잠
여객선 조리실에서 밥을 가져다 먹는 승객들 ⓒ 강은경
웃통을 벗어젖힌 덩치 큰 구릿빛 남자가 요리를 하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고 앉아있었다. 선수 쪽, 안이 훤히 트인 조리실에서 남자는 쌀을 씻어 가스레인지 위에 앉히고, 생선과 채소를 손질해 시니강을 끓였다. 선원들 식사인가? 

그런데 승객들이 조리실 선반에서 접시를 찾아 그 밥과 시니강을 덜어다 먹는 거였다. 내 옆에 앉아있는 히잡을 쓴 할머니와 어린 손자도. 80여 명의 승객들이 다 먹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은데. 히잡 할머니가 조리실과 밥 접시를 가리키며 내게 자꾸 뭐라 뭐라 하셨다. 밥을 갖다 먹으라는 말 같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저었다. 그 비릿하고 시큼한 시니강은 내 입맛에 영 맞지 않는 생선국이었다.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았고. 

21일 전, 코론에서 엘니도로 올 때 탔던 여객선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코론 여객선은 주로 여행자들의, 이 배는 근처 섬에서 사는 현지인들의 해상 교통편이었다. 그래서인가. 여행자나 외국인은 나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현지인들과 화물로 꽉 차, 비좁은 배. 나는 곡물자루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 올라왔다. 그녀는 예약 리스트를 보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호명하고, 일일이 눈을 맞추었다. 정원 초과를 단속하러 나왔나? 밀항하는 사람이 있나? 좀 전에 깜깜한 엔진실로 숨어 들어간 청년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을 목격한 눈이 많았지만.

낮 12시 10분, 세 시간여 만에 드디어 여객선이 출발했다. 배가 출발하자 선실 밑에 숨어있던 청년 넷이 밖으로 나왔다. 나는 배낭을 들고 선실 밖으로 나갔다. 선미에 서서 멀어져가는 리오 투바 항구를 바라보았다. 작은 방카와 니켈광산의 대형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 햇살은 뜨겁고 바닷바람은 시원했다. 바다는 잔잔했고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발라바크 섬으로 가는 여객선 지붕 위에서 ⓒ 강은경
발라바크 가는 바다 ⓒ 강은경
짐이 실려 있는 선실 지붕 위로 올라갔다. 선미 쪽에 남자 서너 명이 짐 옆에 앉아 있기에. 나는 아무도 없는 선수 맨 앞쪽에, 짐을 좀 옮겨놓고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하늘과 바다, 사방 전망이 확 트인 명당 자리였다. 다만 직사광선이 너무 강렬해 팔팔 끓는 기름이 튀어 날아오는 것 같았다. 긴 바지와 긴팔 남방을 꺼내 입어야 했다. 히잡을 쓰듯 사롱으로 머리와 얼굴을 싸맸다.

열대의 푸른 바다와 수평선, 느낌표처럼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코코넛 섬들과 나룻배들,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시원한 바람... 정말이지 '텅 빈 듯 충만해' 보이는 푸르고 광활한 풍광이었다. 나는 그 속으로 출렁출렁 기분 좋게 흔들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나의 존재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는 나룻배처럼 위태롭지만,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다. 와아~!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벅차오르는 감동. 바다를 감상하며, 사들고 온 빨간 바나나를 까먹었다. 스르르 눈이 감겨 졸기도 했다. 짧고 달콤한 낮잠. 
발라바크 가는 길에 들린 섬 ⓒ 강은경
그렇게 두 시간 반쯤 갔을까. 여객선이 한 섬에 들렀다. 그 섬에 사는 승객들과 짐들이 내려갔다. 가벼워진 배는 남쪽을 향해 항해를 계속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엔진을 끄고 몇 번 멈춰 서기도 했다. 그때마다 파란 너울을 타고 달려온 작은 보트로 바리바리 짐과 함께 승객 몇몇이 옮겨 타고, 떠났다. 이 남쪽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은 양쪽에 날개가 달린 '방카'가 아니라, 팔라완이 아닌 다른 바다에서 흔히 봐온 배 모양의 목선이 많았다. 무슬림들의 배였다.

오후 3시 50분, 드디어 4시간여만의 뱃길이 끝났다. 발라바크 선착장에 내려섰다. 키가 작고 몸집이 통통한 한 여자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강?"
"네. 씽씽?"

씽씽은 리오 투바의 어촌 덕장에 사는 빙빙의 여동생이었다. 내가 발라바크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고맙게도 빙빙이 연락을 해 둔 것이다. 나는 씽씽을 따라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그녀의 집으로 걸어갔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보라 빛, 붉은 빛으로...
씽씽의 수상가옥 ⓒ 강은경
씽씽 집 앞 우물터 풍경 ⓒ 강은경
수상가옥촌 입구의 첫 집이었다. 그녀의 집 앞 공터에서 동네 여자들이 모여 빨래를 하고 있었다.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우물터였다. 내가 거기로 들어서자 아줌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커다란 눈을 끔벅거리다가 곧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담수를 퍼 담아놓은 파란색 대형 플라스틱 드럼통들이 둘러서 있는 우물터. 우물은 얕았다. 고여 있는 물이 한 뼘 깊이나 될까. 

나는 씽씽을 따라 널빤지로 만든 짧은 다리를 통해 수상가옥으로 들어갔다. 다리엔 화분들이 곱게 놓여 있었다. 바다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널빤지로 바닥과 벽을 치고, 니파 이파리로 지붕을 올린 집이었다. 작은 거실과 방 하나, 부엌 하나. 일곱 평쯤 될까. 널빤지 바닥 틈으로 바닷물이 내려다보였다.

옷가지와 최소한의 살림도구들. 벽에 걸린 가족사진. 구형의 작은 텔레비전 하나와 인형들이 장식장에 들어 있었다. 가난한 살림살이지만 궁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찌들어 보이지 않는 이 식구들의 밝은 표정 때문일까? 그 집에서 씽씽은 다섯 살짜리 아들과 일곱 살짜리 딸, 남편과 살고 있었다. 나는 씽씽의 권유로 그 집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생전 처음 수상가옥 현지인집에서 묵게 됐다.  

씽씽과 아들, 사촌들과 근처의 '비가비가'라는 해변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본 노을이 장관이었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보라 빛으로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씽씽이 그 붉은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노을지는 바다풍경 ⓒ 강은경
노을 풍경 ⓒ 강은경
"저기... 보여요?"
"뭐가요?"
"악어예요."

뭔가가 붉은 수면을 헤치고 가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악어인지 뭔지... 씽씽의 남편이 저녁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밥과 생선구이와 야채 아도보. 나는 염치불구 그 몇 마리 안 되는 생선에 손이 자꾸 갔다. 정말 맛있었다. 짜지 않게 간도 딱 알맞고...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나와 눈이 마주치면, 멋쩍은 듯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씽씽 식구들과 저녁식사 ⓒ 강은경
씽씽의 남편은 그곳에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한국에서 오래 전에 사랑 받았던 '수줍은 색시' 같은 모습이랄까. 그러고 보니 빙빙의 집에서도 빙빙이 그랬고, 여기서도 씽씽이 가족의 리더처럼 보였다.

필리핀은 모계사회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 상류층은 아직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라고 하지만.) 서민층과 빈민층의 집안에선 여성의 지위와 발언권이 높단다. 그 이유는 필리핀에선 '여아선호' 사상이 강하고, 여자가 교육도 더 많이 받고, 돈도 더 잘 벌어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한편, 여성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아무튼 빙빙도 씽씽도 은근 여장부 티가 났다.

다음 날 이른 새벽, 씽씽의 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히잡을 쓴 무슬림 여인들과 소년들, 장정들까지. 크고 작은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새벽식수를 뜨러 나온 것이다.
씽씽 집 앞 우물터 이른아침 풍경 ⓒ 강은경
씽씽 조카들과 보트 타고 소풍가다. ⓒ 강은경
우리는 이른 아침밥을 먹고 바다로 나갔다. 오전 6시 50분, 마을 청년이 모는 폭이 1미터쯤 되는 작은 보트를 타고 소풍을 갔다.(보트의 가솔린은 내가 아침 일찍 나가 사왔다. 1리터짜리 플라스틱 콜라병에 담아 파는 가솔린 네 병을.) 씽씽과 그녀의 사촌들도 함께. 18살의 잘생긴 레이마크, 17살의 제인은 씽씽처럼 조금 서툴지만 영어로 나랑 의사소통이 되고, 말을 할 때면 손짓 발짓이 큰 발랄한 젊은이들이었다.

보트는 섬의 서쪽에서 남쪽을 향해 달렸다. 푸른 유리처럼 맑은 수면을 가르며. 두 시간여 후에 섬의 남쪽 해변에 도착했다. 보트를 해변 위로 올려놓고, 우리는 바다메꽃이 핀 백사장과 '니파 헛'들을 지나 코코넛 숲으로 들어갔다. 거길 빠져 나가자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캐슈넛 나무 숲이었다.

"이건 캐슈애플이라고 해요. 먹어 봐요."
케슈넛 따기 ⓒ 강은경
열대 과일 케슈넛 ⓒ 강은경
제인이 노랗게 익은 캐슈넛을 하나 따 내게 건네며 말했다. 먹는 방법을 일러주며. 꽁지처럼 과일 끝에 붙어 있는 씨앗은 부수앙가 섬에서 볶아 먹어봤지만, 이 붉거나 노랗게 익은 '캐슈애플'이라는 종 모양의 열대과일은 생전 처음이다. 과즙을 쪽쪽 빨아먹으며, 칡처럼 질긴 과육을 질겅질겅 씹어 먹는 거였다. 시원한 과즙이 줄줄줄 흘렀다. 뭐랄까, 달콤한 먼지 맛이라고 할까. 내 입맛에는 딱 천상의 맛이었다.

"와아! 맛있다!"

우리는 아예 가던 길을 멈추고 캐슈넛을 따기 시작했다. 근처의 '니파 헛' 집에 들어가 나무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레이마크는 대나무 장대를 빌려와 높은 가지를 두드렸다. 나는 떨어진 캐슈넛을 찾아 풀밭을 헤치고 다녔다.

"강, 잠깐!"

씽씽이 갑자기 내 팔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나는 왜 그러나 싶어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한 발짝 떨어진 풀밭을 가리켰다. 가늘고 긴 연두색 뱀이 구불구불... 으악! 나는 옆으로 한 발짝 더 물러섰다. 풀 넝쿨처럼 생긴 독사였다. 몸이며 빛깔이 움직이는 식물처럼 생긴 뱀. 그렇게 보호색으로 몸을 숨기고 도처에서 사르르 사르르 기어 다니고 있는 위험들. 씽씽이 날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밟았겠지. 휴우~!
 
연두색 뱀 ⓒ 강은경
우리는 한 봉지씩 캐슈넛을 들고 언덕위로 올라갔다. 희희낙락 그 열대과일을 빨아먹으며. 언덕 위에 우리의 목적지인 멜빌 등대(Melville Lighthouse)가 서 있었다. 1892년, 스페인 정부가 지은 등대였다. 높이 27미터. 씽씽은 발라바크 섬으로 시집온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 등대에 처음 오는 거라고 했다.     

우리는 텅 비어있는 낡은 부속건물을 통과해 등대 타워 아래로 갔다. 화강암 벽돌로 지어진 등대의 외벽엔 여기저기 키 작은 나무들이 뿌리를 내렸다. 오래된 폐허에서 풍기는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건축물이었다. 더 이상 바다로 빛을 쏘아 보내지 않는 등대였다.
멜빌 등대 ⓒ 강은경
레이마크랑 나는 나선형 철체계단을 밟으며 탑 위로 올라갔다. 계단엔 먼지, 쥐똥, 떨어진 회벽가루들이 쌓여있고, 벽엔 온통 갈겨쓴 낙서들... 전혀 관리가 되고 있지 않는 유적지였다. 아무튼 우리는 회랑으로 올라가는 계단 문이 잠겨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계단참마다 뚫린 작은 창문으로 사방 바다와 숲을 내다보며.

100여 미터 떨어진 옆에 흰색 등대가 서 있었다. 2003년도에 새로 지어진 알루미늄 조립식 타워였다. 그 아래쪽엔 등대지기들이 묵는 현대식 숙소 건물도 보였다.

해변으로 내려와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씽씽이 싸온 밥과 생선구이, 식빵, 스낵, 망고를 나눠 먹었다. 모래에 파묻혀 있던 조개껍데기를 한 봉지 주워들고 우리는 다시 보트를 탔다.

낯설지만 더는 이곳이 두렵지 않았다

오후 2시 30분, 씽씽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짐을 꾸렸다. 숙소를 옮기겠다며. 씽씽이 좀 서운해 했지만 나는 마음이 불편해 더는 그 집에서 묵을 수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침대방과 모기장을 내게 내주고, 네 식구들이 출입구 앞 거실(?) 바닥에 누워 자는데. 나 때문에...

간밤에 자다 깨어 소변을 누러 나갈 때, 나는 누워있는 그 식구들 몸 위로 넘어가야 했다.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수상가옥촌의 공중화장실을 찾아, 구멍이 뻥뻥 뚫린 위험천만한 널빤지 길로 바다 쪽으로 더 나아갔다. 얼기설기 널빤지로 벽을 세워놓은 화장실. 뻥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바다로 곧바로 떨어지는...
수상가옥촌 공중 화장실 가는 길 ⓒ 강은경
섬에는 여행자숙소가 네 군데 있다고 했나? 그중에서 씽씽의 남편이 잡일을 한다는 롯징 하우스로 씽씽이 데려다주었다. 150페소짜리 싼 숙소였다.

다음날 나는 바랑가이(마을)를 혼자 천천히 걸어 다녔다. 어딜 가나 아이들이 많고, 닭도 많았다. 또, 나는 어딜 가나 시선을 끄는 이방인이었고,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였다. 주민들이 머뭇머뭇 던지는 호기심 어린 다정한 시선들, 열대 나무들, 수상가옥... 내겐 낯선 세상이지만, 더는 두렵지 않았다.
섬 아이들 ⓒ 강은경
코코넛 마을 ⓒ 강은경
섬 마을 풍경 ⓒ 강은경
바다풍경 ⓒ 강은경
항구 근처의 상점들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옷이며 잡화며 가까운 말레시아에서 온 공산품들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한 잡화점에서 레이미크가 튀어나왔다. 어제 같이 등대에 갔었던 청년.

"강! 내가 일하는 가게예요. 점심 안 먹었으면 먹고 가요! 주인아줌마가 스파게티를 만들었는데..." 

나는 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라 그를 따라 가게 뒤쪽으로 들어갔다. 히잡을 쓴 중년여인이 스파게티 한 접시와 콜라 한 병을 내게 갖다 주며, 손짓으로 먹으라고 권했다. 스파게티가 꿀맛이었다. 두 접시나 먹었다.
발라바크 시내 풍경 ⓒ 강은경
다음날 오전 5시, 리오 투바로 가는 여객선에 올랐다. 발라바크에 더 머물며 '우눅'이라는 작은 무인도에 가보고 싶었지만, 빙빙과 한 약속 때문에 그만 돌아가야 했다. 멸치잡이 배를 타기로 했던 것이다. 

출항을 기다리고 있는데, 들것에 한 장정이 실려 왔다. 그는 선실 맨 앞자리 긴 나무의자에 눕혀졌다. 그의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무표정했다. 가슴에 칭칭 감고 있는 천이 새빨간 피로 젖어 있는 부상자인데. 무슨 변고일까, 궁금했지만 물어보는 건 실례일 것 같았다. 코코넛 나무에서 떨어졌나? 폭약을 터드려 물고기를 잡다가 사고가 났나?... 아무튼 불운의 여신이 그를 꼭 붙들고 있었다.

그의 아내로 보이는 중년여자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서 있었다. 부상자의 얼굴에 부채질을 해주며. 바람도 잘 일지 않는 두꺼운 종이조각으로.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배낭에서 접이부채를 꺼냈다. 붉은 열대 꽃이 그려진 부채였다. 얼마 전 필리핀 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인데... 나는 부상자에게 다가가 부채를 펼쳤다. 부상자에게 바람을 몇 번 부쳐주다가, 그 아내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오전 7시, 드디어 배가 출발했다. 나는 올 때처럼 배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 위에서 나는 또 겉멋이 가득 든 모험가처럼 바다에 취해갔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이런 말을 했다지.

'모험가는 확실하지 않은 가능성과 숙명과 우연에 모든 것을 걸고, 뒤에 있는 모든 다리를 끊은 채, 어떠한 상황에서도 길이 나타나 자신을 인도하기라도 할 듯이 안개 속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신의 시도가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감정으로 자신의 모험을 정당화한다.'
 
바다풍경 ⓒ 강은경
태그:#팔라완, #배낭여행, #발라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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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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