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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향기가 짙어서 뱀 퇴치에 좋다는 꽃.
▲ 메리골드 향기가 짙어서 뱀 퇴치에 좋다는 꽃.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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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30일이면 시골에 내려온 지 만 2년이 된다. 귀촌한 첫해 여름은 상큼한 공기와 신선한 먹을거리로 인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가을은 누렇게 나락 익는 모습과 가는 곳마다 울긋불긋한 단풍, 아무리 나눠줘도 다 못 먹고 남아도는 알밤과 은행, 달콤한 홍시 등등에 마음을 빼앗겨 지루한 줄 몰랐다.

그리고 다가온 겨울, 눈은 왜 그리도 많이 내리는지! 산 밑에 집이 있는지라 잘 녹지 않는 눈 때문에 겨울은 춥고 길기만 했다.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그렇게 즐겁고 오지게 보내던 시골 생활이 길고 추운 겨울로 인해 마음까지 을씨년스러웠다. 한 달에 80만 원어치 난방(LPG가스)을 때고 벽난로도 쉬지 않고 땠건만, 산 밑의 집은 좀처럼 데워지지 않았다. 몸의 추위도 마음의 추위도 가시지 않았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백설인데 오가는 사람마저 가위로 잘라버리듯 끊기고 말았다.

기어이 마음에 병이 생겼다. 갱년기 때도 겪지 않은 우울증이 찾아왔던 것이다. 서울 집에 올라갔다. 하지만 혼자 시골에 남아있는 남편이 마음에 걸렸다. 이 추운 날씨에 끼니는 제대로 해결하는지, 빨래는 제때 해 입는지.

다시 시골로 내려왔다. 시골에 오면 서울의 따뜻한 아파트와 자식들이 그리웠다. 그렇게 서울과 시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에 겨울이 물러났다. 봄이라고 하기엔 이른 2월, 양지바른 곳에 파란 새싹이 올라왔고, 채소의 싹을 보고는 마늘인지 파인지 양파인지 분간도 못해서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은 여반장이었다. 국화를 쑥으로 오인해서 국화로 국을 끓이겠다고 설치기도 했다.

고추와 까마중 구별하기... "아직 멀었네"

까마중 꽃과 잎이 고추와 흡사하다.
▲ 까마중 꽃과 잎이 고추와 흡사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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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고추만 안 열렸으면 내 눈엔 까마중과 비슷하다.
▲ 고추 고추만 안 열렸으면 내 눈엔 까마중과 비슷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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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특별한 일이 있어야 서울에 올라가고 친구들이 서울에서 만나자고 하면 시골로 초대한다. 친구들이 시골로 내려오면 펑퍼짐한 몸뻬에 헐렁한 면 셔츠, 검정고무신을 신고 터미널로 마중 나가곤 한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떠날 때는 무엇이든 손에 들려 보내고 싶어서 이것저것 올망졸망한 보따리를 만든다. 별것도 아닌 푸성귀를 기쁜 마음으로 가지고 가는 친구들을 보는 마음이 기쁘고 시골에 적응한 나 스스로가 대견하기까지 하다. 마을 사람들도 나를 보면 원래 시골에 살던 사람 같다고도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며칠 전에도 남편을 웃게 만들고야 말았다.

"여보, 올해는 까마중이 안 나왔나 봐요."
"많이 났었는데 당신이 다 뽑고 두 그루 남았드만. 아마 풀인 줄 알고 뽑아 버린 것 같아요."
"까마중이 났었어요? 어디?"

그러고는 텃밭으로 나갔다. 남편이 고추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두 그루 있잖아요."
"그거 고추 아니에요? 난 고춘 줄 알고 안 뽑았는데?"

나의 말에 남편은 "잘난 척하지만 아직 멀었네"란다. 얼른 보면 두 가지가 비슷했다. 자세히 보니 고추의 잎사귀가 까마중과 조금 달랐지만 꽃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꽃이 안 핀 것은 풀인 줄 알고 모두 뽑아서 버렸던 것이다. 새벽부터 우리 부부는 소리 내서 웃었다.

벌에 쏘였다... 며칠 지나고 나니 '헉'

시골에 살면서 터득한 것이 있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풀을 뽑거나 채소를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도회지 사람들이 별을 보고 출근한다는 그 시간, 새벽 5시에 잠에서 깬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기도를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풀을 뽑기 시작한다. 그 만반의 준비라는 것이, 긴 바지와 긴 팔 옷을 입고, 고무가 덧대어진 면장갑을 끼고, 늘어나서 못 신는 남편의 면양말에 발등을 덮는 고무신을 신은 다음 챙이 아주 넓은 밀짚모자를 눌러쓰는 것이다.

그렇게 거창하게 행장을 갖추고 마당의 풀을 뽑으려고 주위를 둘러봤다. 뒷마당 수돗가의 천리향 주변에 풀이 우거졌다. 낮은 의자에 앉아서 풀을 뽑기 시작했다. 주변의 풀은 다 뽑고 나무 바짝 밑의 풀을 뽑으려고 뿌리 쪽을 손으로 더듬는데 무언가가 톡 쏘는 느낌이 들면서 순간적이지만 무척 아팠다. 깜짝 놀라서 얼른 손을 빼고 보니 면장갑 위에 말벌이 붙어 있었다. 얼결에 말벌을 잡아서 내동댕이쳤다. 말벌이 손등을 쏜 것이었다. 남편을 소리쳐 불렀다.

울타리 안팎에 메리골드를 심던 남편이 쫓아왔다. 크레디트 카드 두 장을 가지고 벌에게 쏘인 곳 주변에서부터 훑어 들어오면서 독을 짜냈다. 입으로 빨아내기도 했다. 약간 불그스름하던 손등이 멀쩡해졌다. 빨리 응급처치를 해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손등이 빨개지더니 조금 부어올랐다. 손등을 보고 병원에 가자던 남편이 말끝을 흐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1년에 두세 차례 벌에게 쏘이는데 며칠 가렵다가 괜찮더라."
"진짜? 말벌에 쏘인 거 맞아요? 말벌에 쏘이면 죽기도 한다던데."
"죽는 사람도 있기는 하대. 벌초하러 갔다가 말벌에 쏘여서 죽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또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어떤 사람들은 봉침을 일부러 맞기도 한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럼 이참에 봉침 맞은 셈치고 그냥 있어 볼까요?"

말벌 벌에 쏘인 손이 부풀어 올랐다. 제일 참기 힘든 건 가려움.
▲ 말벌 벌에 쏘인 손이 부풀어 올랐다. 제일 참기 힘든 건 가려움.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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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을 앓고 난 뒤라서 은근히 나의 면역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주위의 사람들도 일부러 봉침을 맞기도 하는데 한번 견뎌 보라고 했다. 많이 힘들면 병원에 가기로 하고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 본 나의 손은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머리도 어지럽고 약간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굳세게 버티고 있었다. 아침을 과일주스만으로 때우는 터라 주서기에 과일을 잘라 넣고 갈았다. 타다닥 소리와 함께 주서기가 멈추었다. 주스를 부어 보니 작은 뚜껑을 넣고 함께 갈아버렸다. 어지럽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남편에게는 아무 말 안하고 가만히 누워서 안정을 취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나 자신과 싸웠다. 부기와 가려움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보름 만에 손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을 다 지켜본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당신 면역력이 그만큼 좋아졌는가 보다. 말벌 침도 이겨내고 기특해."

오가는 정, 오가는 물건들

마늘 큰 바구니의 것은 우리가 농사 지은 것이고 작은 바구니와 바닥의 것은 선물 받은 것.
▲ 마늘 큰 바구니의 것은 우리가 농사 지은 것이고 작은 바구니와 바닥의 것은 선물 받은 것.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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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당 옆은 이웃집 채소밭이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아주머니가 마늘을 캐고 계셨다. 얼음 미숫가루 한 잔 타다 드렸다. 고마워하며 맛나게도 드신다. 잠시 후 벨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아주머니가 마늘을 가지고 오셨다. 안 받을 수도, 받을 수도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내 팔에 마늘을 안겨주셨다. 제작년에도, 작년에도 한여름 뙤약볕에서 일을 할 때마다 마실 것을 갖다 드리면 꼭 무엇이라도 답례하셨다.

올해도 이웃에서 선물로 들어온 마늘이 두 접 반이다. 올해는 우리도 마늘 농사를 아주 조금 지었지만 정성으로 주는 마늘을 고맙게 받았다. 마늘 풍년이다. 이는 꼭 마늘 풍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만큼 이웃과 정으로 맺은 열매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도 아주머니는 밭에서 열심히 일을 하신다. 내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주스라도 한 잔 갖다 드리고 싶은데 또 무언가를 가지고 오시면 어쩌지? 30℃가 넘는 뙤약볕에서 저렇게 열심히 지은 농작물을 자꾸 주시니 어쩌면 좋지!'

못 본 척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머릿속은 모르는 척하자고 하면서도 나는 오미자차에 얼음을 잔뜩 넣은 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 거실을 서성이다가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어라? 아주머니가 안 보인다. 밭으로 가봤으나 아주머니는 안 계셨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셨나 보다. 아주머니에게 드리려고 탔던, 얼음이 다 녹은 오미자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해 보지만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다음에는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시원한 물 한 잔 가져다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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