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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61)님이 홍천 서석면 청량리에 귀농한 지 10년이 되었다. 뒷산과 이어지게 가꾸어놓은 그의 집 뒷동산은 그야말로 작은 식물원이다. 멧나물이 자연스레 씨앗을 퍼뜨려 절로 군락을 이루기도 했다.

그 틈에서 집주인 농부의 손길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남새(채소)는 야생화들이다. 매발톱, 복주머니란, 흰 금낭화, 제주수선화, 할미꽃, 황철쭉, 검종덩굴, 목단, 반잎둥글레, 미선나무, 백송, 금강초롱꽃, 자란, 타래란, 백작약, 일월비비추, 좀비비추, 타래붓꽃, 노랑무늬붓꽃, 난쟁이붓꽃, 노랑꽃창포, 흰창포, 옥잠화 등 하나하나 이름 없이 특징 없이 이유 없이 뿌리내린 아이들이 없다. 이상범님 설명이 줄줄이 이어진다.

희귀 검종덩굴 구하려 전국 방방곡곡 발품
서석면 청량리 이상범(61), 김연희(58) 부부  서석면 청량리에 터를 잡고 야생화를 뒷산에 퍼뜨리고 가꾸며, 마을의 아이들,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 서석면 청량리 이상범(61), 김연희(58) 부부 서석면 청량리에 터를 잡고 야생화를 뒷산에 퍼뜨리고 가꾸며, 마을의 아이들,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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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황철쭉'인데, 밤에 보면 황금색이 아주 화려해요. 저건 '복주머니란'인데 보기에는 좋아보여도 암모니아 냄새가 아주 고약해요. 저건 '금강초롱꽃'인데, '속근초화'(한 번 심어놓으면 1~2년을 고사하지 않고 새싹이 나오는 식물)예요.

'검종덩굴'은 꽃이 아직 안 폈는데, 특이해요. 검은색 종모양이 플라스틱으로 찍어 놓은 것 같아요. 저건 '백작약'인데, 멸종위기종이라 내가 씨를 받아서 계속 증식시키고 있어요. 약재로도 쓰는데 보혈에 좋다고 해요."

"이건 '목단'인데, '모란'이라고도 해요. 꽃이 활짝 피면 아주 예뻐요. 저희한테 천연기념물이 몇 있는데, '미선나무', '백송', '금강초롱꽃'이에요. 이게 '미선나무'인데, 향기가 좋아요.

저게 '백송'인데, 나뭇잎은 소나무랑 똑같은데, 줄기가 플라타너스나무같이 퍼렇고 반질반질하죠. '자란'은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데 강원도는 춥잖아요. 그래서 양지쪽을 골라 심어놓았어요. 저 '타래란'은 꽃대 줄기를 타고 올라가면서 피는 꽃으로 아주 신기하죠."

꽃동산을 누비는 오골계들 청량리 꽃동산에는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꽃밭을 누비고 있는 오골계들이 멋진 자태로 뛰어다니고 있다.
▲ 꽃동산을 누비는 오골계들 청량리 꽃동산에는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꽃밭을 누비고 있는 오골계들이 멋진 자태로 뛰어다니고 있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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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언제 이 많은 꽃들과 함께 하며, 공부해오신 것일까? 더욱 궁금해졌다. 이곳에 오시기 전에 어떤 삶을 사셨는지 여쭈어보았다.

"여기 오기 전 남양주에 살았는데, 저희 집이 엄청난 대농이었어요. 그 때는 귀했던 트랙터로 온 마을 논과 밭을 갈아주면서, 아주 원 없이 벌었어요. 그런데, 지금 말하기 좀 그런, 어려운 일이 생겼어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이상범씨가 인생의 위기를 겪고서, 무언가 다른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겠다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 '야생화'였다. 야생화로 돈 벌어 보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일을 잊고 싶은 심정에서였다.

마침 어디서 생긴 할미꽃이 예뻐 보였는데, 씨앗을 받아 퍼트리면서 재미를 붙인 것이다. 그래서 야생화를 수집하고 연구해야겠다고 붙들게 된 것이다.

학교에 할미꽃 기증하고 마을길엔 작약 심어

야생화 책을 사고, 전국을 돌며 야생화를 수집했다. 우연히 한 농가를 지나다 흰금낭화를 얻기도 했고, 복주머니란을 구하려 오대산을 오르기도 하고, 한 달 동안 검종덩굴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야생화를 수집한다고 소문이 나서였는지, 반잎둥글레를 백두산에서 가져다주신 분도 있다. 이렇게 모은 야생화만 대략 300여 종이 된다.

청량리 꽃동산에 있는 야생화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섬초롱, 복주머니란, 반잎둥글레, 목단, 백작약, 하얀금낭화와 금낭화
▲ 청량리 꽃동산에 있는 야생화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섬초롱, 복주머니란, 반잎둥글레, 목단, 백작약, 하얀금낭화와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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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님은 이렇게 모은 귀한 꽃들을 주위 사람들에게도 기쁜 마음으로 나누신다. 수목원들에 야생화를 기증하기도 했고, 남양주교육지원청 부탁으로 초등학교들에 할미꽃 100포기씩 나누기도 했다.

과천시에서 공원을 조성한다며 그를 찾아와 야생화를 얻어가기도 했다. 청량1리 마을회관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꽃길도 그가 기증한 작약 2000포기로 꾸며진 것이다.

그가 나눈 꽃을 받아서 정성껏 키우는 이들을 보면 신이 나는데, 요즘 꽃가게만 가도 꽃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런지, 어렵게 준 것을 함부로 방치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까울 때도 있다고 한다.

"사람이 돈 주고 산 것은 쉽게 함부로 대하는데, 자기가 애써서 키운 것은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요. 그런 사람한테 꽃을 나눠줘야 저도 신나죠."

마을에서 땅을 가꾸는 농부로

삶을 절망케 했던 사건으로부터 7년이라는 시간과 야생화는 그를 회복시켰다. 이제 하나씩 태어나는 손주들을 보게 되면서, 손주들이 산에서 개울에서 마음껏 뛰놀고, 예쁜 꽃들도 보고, 개구리도 잡고 하는 경험을 하면 좋겠다 생각해서, 서석면 청량리로 왔다.

산골짜기 바로 아래에 집을 짓고 야생화를 심어 산에 퍼뜨리고, 산에서 절로 내려오는 물로 연못도 만들고, 가족들이 함께 먹을 작물도 건강하게 키우고 있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로, 참된 농부는 땅을 가꾼다는 말이 있는데, 자연적으로 땅을 옥토로 만들어야 작물도 좋아지는 법이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땅을 가꾸는 게 좋아요."

직접 만든 야생화 효소를 청량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맛보여 주신다. 청량초등학교 학생들은 청량리 꽃동산에  놀러가희귀한 풀꽃도 구경하고, 야생화 효소도 맛보았다.
▲ 직접 만든 야생화 효소를 청량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맛보여 주신다. 청량초등학교 학생들은 청량리 꽃동산에 놀러가희귀한 풀꽃도 구경하고, 야생화 효소도 맛보았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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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그가 가꾸는 뒷동산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살아 있다. 요즘 보기 힘든 실잠자리도 날아다닌다. 게다가 물고기 수십 마리를 풀어놓았던 연못에는, 수달이 와서 물고기를 다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좋다고 하신다.

"수달도 있고, 내가 먹지 못하더라도 다른 이(동물)가 먹는 것이니까, 야생화를 누가 와서 몰래 캐가도 자리만 옮겨갔을 뿐이지 결국 이 땅 어느 곳에는 있는 것 아니에요?"

힘겨운 인생길을 걸어오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더 넉넉한 품으로,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의 푸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상범 님 부부는 직접 지은 집에서 아들 부부와 다섯 살 희도, 네 살 희모, 두 살 배기 희준이 세 형제 손주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올 5월에는 첫째 손주 희도가 다니는 청량분교 어린이들에게 뒷동산 야생화를 구경하라고 초대해주셨다.

다슬기를 잡아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시는 꽃동산 할아버지 아상범님 다슬기를 잡아 아이들에게  보여주시고, 아이들이 돌아간 후에 다시 연못으로 돌려보내 주셨다.
▲ 다슬기를 잡아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시는 꽃동산 할아버지 아상범님 다슬기를 잡아 아이들에게 보여주시고, 아이들이 돌아간 후에 다시 연못으로 돌려보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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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 청량학교 봄나들이

유치원 가까이 친근한 농장에 초대받은 어린이들은 진귀한 꽃 구경에 더해 뒷동산을 터전삼아 뛰놀고 있는 꿩이며 닭, 토끼 구경에 더 신났다. 이상범님은 당신이 정성 들인 공간이지만, 넉넉한 품으로 악동들에게 열어주신다.

10년 전부터 키우고 퍼뜨려왔다는 할미꽃 군락 앞에서 이제 백발마저 솜털처럼 가벼워진 할미꽃 홀씨를 불어보라고 고사리 손에 하나씩 따주신다.

청량리 꽃동산 할아버지 이상범님 서석면 청량리 작은 분교의 병설 유치원 7명 아이들을 초대해 할미꽃 홀씨를 나누어 주고 있는 모습
▲ 청량리 꽃동산 할아버지 이상범님 서석면 청량리 작은 분교의 병설 유치원 7명 아이들을 초대해 할미꽃 홀씨를 나누어 주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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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주 친구들이 다 내 손주들이죠."

모처럼 산 흙 실컷 밟고 여러 생명 친구들 골고루 만나고 돌아가는 시간.

"안녕히 계세요!"

꼬마손님들 인사가 유난히 힘차다. 곧 하지감자 캐러 다시 와서 마을 할아버지네 골짜기 농장을 점령할 태세다. 자연과 마을의 너른 품 안에서 마을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간다. 절로 그리고 돌봄 속에 환한 빛을 내며, 이상범, 김연희 부부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생명력이 할미꽃 홀씨를 타고 마을 곳곳으로 널리널리 퍼지길 소망한다.

청량리 꽃동산에 놀러간 청량유치원 친구들 청량리 꽃동산에 놀러간 청량유치원 친구들이 야생화를 둘러보고 그늘에서 쉬고있다.
▲ 청량리 꽃동산에 놀러간 청량유치원 친구들 청량리 꽃동산에 놀러간 청량유치원 친구들이 야생화를 둘러보고 그늘에서 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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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위 글은 아름다운마을신문(http://admaeul.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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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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