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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 경의선숲길공원에서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LGBT)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클럽 총격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 지난 13일 오후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 경의선숲길공원에서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LGBT)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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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성소수자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

올랜도 게이클럽 총격 사건이 터진 다음 날, 그 친구는 옷장 앞에서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전날 퀴어문화축제에서 안드로이드 캐릭터가 무지개 깃발(성소수자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있는 티를 샀고, 그 옷을 입고 출근할지를 고민했다. 뉴스를 보며 주저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는 이럴 때일수록 더 움츠러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티를 입고 집 밖을 나섰다고 했다.

하지만 지하철에 올라탄 그는 곧바로 후회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누군가 이 셔츠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을 공격하거나 몰래 사진을 찍지는 않을지 불안했다고 했다.

그는 초조하게 두리번거렸고, 누군가 가방이라도 열라치면 저 속에서 무엇을 꺼낼까 두려웠다고 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너무나 무서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처지가 너무 서러워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공포 속에서 지하철이 빨리 회사에 닿기를 기도했고,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회사로 뛰어갔다. 그리고 회사 화장실에 앉아 잠시 참았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랜도 게이클럽 총격 사건 이후 많은 사람이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가 어떤 사람이고 직접적인 범죄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조사 중이다.

확실한 건 이 사건이 성소수자들에게 미친 영향이다. 이번 사건으로 성소수자들은 혐오범죄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특히나 이 사건 이전에도 많은 성소수자들이 혐오범죄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이는 단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폭력은 비가시화되어 있을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낯선 사람들에게 범죄 피해를 보는 일은 발생해왔다. 단지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이 알려질까 하는 두려움에 대부분 신고를 하지 않는 것뿐이다.

또한 직장이나 학교에서 성소수자임이 노출되고, 폭력이나 혐오에 노출되는 일은 빈번하다. 이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데, 이는 보이기에만 자살일 뿐 사실상 타살이나 마찬가지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특정한 피해자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전반을 대상으로 한 혐오와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학 내에서는 성소수자 관련 게시물이 훼손되거나 철거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게시물들에 '더럽다, 죽어라'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적히기도 한다. 한 대학교의 성소수자 혐오 모임은 트위터를 통해 '회칼이라도 들고 가서 퀴어축제에 참여한 동성애자를 찌를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큰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같은 혐오가 단지 일부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총선에서 성소수자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기독자유당은 무려 60만이 넘는 표를 받았다. 이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만연함에도, 사회적 차원으로 문제가 제기되거나 제재가 가해진 적도 없다. 사회적으로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는 것이다.

네게 내가 가진 공포를 말할 수 있게 해줘

문제가 된 계정의 트위터 캡쳐 화면
 문제가 된 계정의 트위터 캡쳐 화면
ⓒ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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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혐오가 만연하고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제대로 된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내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준 친구는, 그 일을 겪은 후 무기력한 감정에 빠졌다고 한다.

감정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영향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며칠간 불면과 두통에 시달렸고 소화불량과 속 쓰림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직장 동료로부터 '왜 이렇게 넋이 나가 있느냐'는 걱정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막막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유방암에 걸린 사만다는 캐리에게 이야기한다. '네게 내가 가진 공포를 말할 수 있게 해줘, 나는 죽는 거보다 내 가슴을 잃는 게 더 두려워'라고.

나의 한 친구는 SNS에 이 대사를 인용하며,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공포를 실재화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는지, 무엇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지, 계속 말하고 행동해야 하며 그 과정을 통해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성소수자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일상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일은 내 친구가 SNS에 언급한 것처럼, 가지고 있는 공포를 구체적으로 직시하고, 이를 누군가와 나누고 다른 이들의 불안을 들으면서 가능할 것이다.

나의 두려움이 어떤 것인가를 명확하게 안다면, 그 두려움을 피할 수는 없어도 어떻게 대처할지를 미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두려움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누군가 이 공포에 함께해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만큼 두려움에 맞설 힘은 강해질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그 친구는 나를 만난 날, 두려움에 떨던 그 날과 같은 티를 입고 왔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네가 함께 걷고 있어서 이 티를 입을 수 있어."

두려움을 전복시키는 연대,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13일 오후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 경의선숲길공원에서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LGBT)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클럽 총격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 13일 오후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 경의선숲길공원에서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LGBT)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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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또 다른 성소수자 친구는 월요일 홍대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리고 집회에 참석한 도중 자신의 뒤에 한 남성이 서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는 갑자기 큰 공포에 휩싸였고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고 했다.

그는 '저 남자는 누구지? 왜 내 뒤에 서있지? 가지고 온 가방에는 뭐가 들었지?'라고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뒤를 돌아볼 용기도 나지 않아, 그렇게 오들오들 떨며 서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뒤를 돌아보니 그 남성은 자신과 함께 추모집회에 오기로 한 친구였다고 한다.

그가 내게 한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다.

"있지 무서워, 진짜 무서운 건 맞아.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의외로 내가 두려워한 것보다 크지 않은 것일지도 몰라. 때로는 뒤를 돌아볼 용기도 필요해."

함께할 때 그 용기는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태그:#성소수자, #올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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