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정글북>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정글북>(1967)의 한 장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소동극들이 느슨하게 이어지는 유쾌한 작품이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요즘 디즈니가 신경 쓰는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 고전들을 실사 영화로 리메이크하는 것입니다. '소재 우려먹기'라는 점에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늘 하는 게으른 선택이라 할 수 있지만, 작년에 나온 <신데렐라>처럼 오래된 이야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이라면 나쁘지 않은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정글북> 역시 그런 기획의 일환입니다. 리메이크의 원본으로 삼은 디즈니의 1967년 작 애니메이션은, 러디어드 키플링의 원작에서 늑대와 함께 자란 소년 모글리가 나오는 이야기 몇 편을 따와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주관객층인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만화적'으로 순화시키다 보니, 원작 소설이 가진 나름의 박진감과 긴장감 대신 히피풍의 유쾌함이 강조된 작품이 돼 버렸지요.

하지만 실사판은 다릅니다.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통해 정글 배경과 동물 캐릭터들을 사실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원작이 지닌 야생의 느낌을 아주 잘 살려냈거든요. 특히 각각의 특징을 실감 나게 포착한 다양한 동물 캐릭터들의 존재는, 그들 사이에 기본적으로 흐르는 긴장감은 물론이고 액션 시퀀스의 박진감과 스릴까지 배가시킵니다. 3D로 보면 확실히 더 좋은 영화들이 매년 한두 편씩은 꼭 있기 마련인데, 올해는 이 영화가 그런 것 같습니다.

 영화 <정글북>의 한 장면. 정글의 폭군인 호랑이 쉬어칸에 맞서 모글리를 지키려는 바기라, 발루, 락샤의 모습.

영화 <정글북>의 한 장면. 정글의 폭군인 호랑이 쉬어칸에 맞서 모글리를 지키려는 바기라, 발루, 락샤의 모습.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시각 효과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짜는 기술도 괜찮은 편입니다. 메인 플롯은 주인공 모글리의 전형적인 성장 서사인데, 내면의 성장을 위한 여정과 호랑이 쉬어칸과의 대결 과정을 잘 배합해 리듬감 있게 뽑아냈습니다. 또한 모글리를 돕는 동물 캐릭터들의 내적 성장까지 서브플롯으로 함께 다루면서 진정한 '정글의 법칙'이란 어떤 것인지 그 의미를 되새긴 것도 특기할 만합니다.

주요 배역을 맡은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좋은데, 그중에서도 곰 발루 역할을 맡은 빌 머레이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모글리에게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전해주는 느긋하고 수다스러운 발루의 캐릭터는 빌 머레이의 체념 섞인 말투와 아주 잘 어울리죠. 또한 이번 영화에서 발루는 모글리를 위해서 자신의 한계를 여러 번 넘어서야 했는데, 그런 장면들의 뉘앙스까지 세심하게 잘 표현한 것도 점수를 줄 만합니다.

2천 대 1의 경쟁을 뚫고 모글리 역할에 캐스팅된 아역 배우 닐 세티는, 꾸밈없는 감정 표현과 대사 처리를 통해 인간의 세계에 물들지 않은 야생의 순수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배경과 상대 캐릭터가 모두 CG였기 때문에, 가끔 인형들과 함께할 때 말고는 거의 혼자서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정말 좋은 연기를 보여준 겁니다. 물론 감독 존 파브로의 연기 지도가 그만큼 효과적이었다고 해야겠죠.

정글 공동체를 위해서

흔히 '정글'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비정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센 육식동물이 약한 초식동물들을 사냥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요.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글은 하나의 생태계로서, 구성원 모두가 도움을 주고받는 커다란 순환 체계거든요.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우리 인간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스러운 순환의 고리를 깨뜨리기 일쑤였습니다. 정글을 불태우고 개간하여 개인 소유의 경작지로 만들고, 각종 희귀 동식물들을 삶의 터전에서 뿌리째 뽑아내서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벌이에 나섰던 거죠.

약육강식의 논리란 본디 자기가 가진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작자들이 자연 현상을 멋대로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인간들이 그러하듯 힘의 우위를 통해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행동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이 영화 <정글북>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연대의 정신만이 정글 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정글의 법칙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호랑이 쉬어칸의 몰락과, 인간인 모글리가 진정한 정글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통해서요.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인간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혹은 전 지구적 생태 순환계를 보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화 <정글북>의 포스터. 진정한 정글의 법칙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연대의 정신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영화 <정글북>의 포스터. 진정한 정글의 법칙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연대의 정신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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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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