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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는 것보다 더 힘든 건 같이 일하는 동료들조차 '늬들이 먼저 꼬리를 친 거 아니냐'는 시선으로 바라 볼 때입니다. 제발 진실을 밝혀주세요. 너무 억울합니다."(경기보조원 C씨)

국가보훈처가 지분을 100% 소유한 공익 골프장 경기보조원들이 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들을 조사한 경찰은 무혐의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 관련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축하파티를 위해 괜찮은 캐디 데려오라"... 경기팀장의 지시?

골프장(자료사진)
 골프장(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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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용인 88컨트리클럽 경기보조원 일반노조 관계자와 복수의 경기보조원들에 의하면, 지난 해 5월 9일 이 골프장 사장 K씨는 골프장 운영위원들과 함께 라운딩을 하다가 이글(지정타수보다 두타를 덜 쳐서 홀에 공을 넣는 것)을 기록했다.

사장 취임 직후 첫 이글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고, 골프장 회원이 운영하는 한우 고깃집에 마련된 식사 자리에는 경기보조원 7명이 동석했다. 저녁 식사 자리가 만들어진 경위부터 회사 측과 경기보조원들의 주장은 엇갈린다.

사측은 K사장과 함께 라운딩을 했던 운영위원들이 축하자리를 마련했고 시간이 되는 경기보조원들이 자연스럽게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식사자리에 참석했던 경기보조원들의 말은 이와 다르다.

경기보조원들은 K사장이 이글을 기록한 직후, 골프장 경기팀장 Y씨가 축하 꽃다발을 준비할 것과 더불어 "저녁에 축하 파티를 해야 하니 경기보조원들 중 괜찮은 인원을 선발해서 데리고 오라"고 마스터(경기보조원들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보조원들은 사장과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불편해 내키지 않았지만, "밥만 먹고 가면 된다"고 부탁하는 마스터의 얼굴을 봐서 식사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또 경기보조원들은 오후 7시경부터 시작된 이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사장과 골프장 운영위원들 사이사이에 앉아 술을 따르는 등  자신들이 유흥업소 종업원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노래방까지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식사만 하고 나오면 된다고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참석하게 되었어요. 밥 먹는 자리에서도 사장이나 운영위원들에게 술을 따르는 일이 불편했지만, 축하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내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차로 노래방을 가자는 거예요. 마스터님이 경기팀장에게 '밥만 먹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건 말이 다르지 않느냐'고 막 화를 내시더군요. 하지만 이미 식당 앞에 대기하고 있던 봉고차에  반강제적으로 탈 수 밖에 없었습니다."(경기보조원 A씨)

회사 측의 설명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식사자리에서 경기보조원 중 한 명이 노래방을 가자고 제안해서 노래방에 가게 되었고, 봉고차에 억지로 태웠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경기팀장은 노래방에 가는 문제로 마스터와 다툰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마스터 "노래방 가는 문제로 경기팀장에게 항의"... 경기팀장은 부인

식사 자리에는 총 7명의 경기보조원이 동석했지만, 노래방에서 진행된 2차 술자리에는 5명의 경기보조원들만 참석했다. 경기보조원들의 주장은 노래방에 가는 문제로 마스터가 경기팀장에게 항의하는 장면을 보면서 2명이 그 자리를 피했다는 것.

식사자리에는 참석했지만 노래방에는 가지 않았던 경기보조원 중 한 명은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한 선약도 있었던데다, 마스터가 노래방에 가는 문제로 경기팀장에게 강하게 항의하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했다"고 말했다. 

결국 노래방까지 간 5명의 경기보조원 중 3명이 노래방에서 사장으로부터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장과 같이 블루스를 췄고 노래를 부르고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사장이 왜 그냥 앉느냐면서 팔을 끌어 당겨서 옆에 앉히고 어깨동무를 하는데, (사장의) 손이 가슴에 닿았다."(경기보조원 A씨)

"블루스를 추면서 사장의 뜨거운 입김을 느꼈으며, 두 손으로 내 허리를 꼭 껴안아서 가슴이 사장의 몸과 밀착되었다."(경기보조원 B씨)

피해를 주장하는 경기보조원들은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이 기분 나쁘고 불쾌했지만 이런 내색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주장했다. 사장이나 그 자리에 있었던 운영위원들과는 1주일에 서너 번을 봐야 하는 처지에서 싫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경기보조원들 "블루스 추다가 신체접촉"... K사장 "블루스 춘 사실 없다"

골프장(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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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장과 회사 측은 당일 노래방에서 사장이 경기보조원들과 블루스를 춘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운영위원과 회사직원들은 경기보조원들과 블루스를 췄지만, 사장은 아예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

K사장은 기자와 만나 "노조가 있지도 않은 성추행 사실을 들먹이면서 나를 흔들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5명의 경기보조원들이 노래방에 있었지만 그 중 3명만 피해사실을 진술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노조 측은 "노래방에 간 5명의 경기보조원 중 한 명은 만취해서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다른 한 명은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엄마여서 이 문제에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반박했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 마치 여성 경기보조원들을 꽃뱀처럼 몰아가고 있다"면서 "사장의 이글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사장만 빼놓고 다른 이들만 블루스를 췄다는 것이 이해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경기보조원들은 극도의 수치심과 무기력감에 빠져 바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지만, 이런 사실을 파악한 노조 관계자에게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사장의 이글 축하 파티에 참석한 경기보조원들에게 관련 내용을 듣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사실확인서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때가 지난 해 5월 15일경의 일이라고 했다.     

1년 만에 불거진 노래방 성추행 의혹

하지만 성추행 의혹은 당시에는 공론화되지 못했다. 경기팀장으로부터 지시받고 경기보조원들에게 식사 자리에 참여할 것을 부탁했던 마스터가 "이 일은 그냥 덮어 두었으면 좋겠다"고 간청해서 문제삼지 못했다는 것이 노조 측과 경기보조원들의 주장이다.

그렇게 묻혀지는 듯 했던 성추행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날 4월 초의 일이다. 올 해 초 경기보조원들로부터 신망이 높던 한 남성 직원이 성희롱 혐의로 사측의 징계를 받고 보직이 바뀐 것이 계기가 되었다.

노조 측 설명에 따르면, 징계를 받은 직원은 자신의 부하 여직원에게 여러 차례 핸드폰으로 이모티콘을 보냈는데, 사측이 이런 행위가 성추행에 해당한다고 결정하고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징계 사건 이후 지난해 사장·운영위원들과의 노래방 모임에 합석했던 경기보조원들 사이에 "이게 성희롱이라면 우리가 당한 경험은 훨씬 치욕적이었다"는 데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아졌고, 뒤늦게라도 사건을 공론화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

노조는 지난 4월 1일 골프장 측의 불법 벌목 의혹, 경기보조원들의 불만 사항과 함께 경기팀장 교체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작성해 국가보훈처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조는 골프장 관리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보훈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사건은 노조가 원하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보훈처 관계자로부터 사건 내용을 전달받은 88컨트리클럽 감사는 노조 관계자와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경기보조원들을 불러 관련 내용을 들었다. 하지만 감사는 이후 노조가 제기했던 문제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골프장 감사는 "노조가 보훈처에 전달한 의혹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였고 4월 27일 감사를 종료하고 감사결과를 보훈처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가 제기한 사장의 성추행 의혹은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관련자들의 진술이 전혀 다른 데다 이미 노조 측이 수사기관에 고소를 한 상황에서 감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노조 측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노조가 사장의 성추행 혐의와 관련한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한 것은 4월 25일이었고, 이때는 이미 탄원서를 보훈처에 제출하고도 20여일 흐른 시점이었다는 것. 노조는 보훈처를 통해 내부적으로 원만하게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성추행 혐의 감사가 전혀 진전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검찰에 고발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노조 "경찰 조사도 편파적이었다"

검찰로부터 사건을 이첩 받은 용인 서부경찰서가 조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5월 초. 노조 측은 피해자 진술을 받을 때만 해도 우호적이었던 경찰의 태도가 대질조사를 하면서부터 전혀 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작성해서 올 4월 보훈처 관계자에게 전달되었던 사실확인서는 오히려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사장에게 유리한 자료로 경찰에 제출되어 있었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노조 측은 88골프장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보훈처를 통해 성추행 의혹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보훈처 관계자에게 사실확인서를 전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자료는 K사장에게 유리한 증거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관계자는 "당사자들에게는 성추행 피해 사실이 아주 예민한 문제였기 때문에 사실확인서에 나와 있는 피해자 실명을 반드시 지워 달라고 보훈처 담당자에게 요청했지만, 지난 5월 23일 경찰 대질조사를 받을 때 사실확인서에 실명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회사 측과 노조 측의 설명을 종합하면, 보훈처 관계자는 처음부터 노조가 제기한 문제들은 노사문제에 해당하는 사안이므로 골프장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한다. 노조 측이 제기한 문제를 보훈처 관계자로부터 전달받은 골프장 감사는 성추행 건을 제외한 의혹들을 감사하고, 그 결과를 보훈처에 보고했다.

사실확인서가 오히려 불리한 증거가 돼

그렇다면 정작 회사 감사과정에서 다루어지지도 않았던 경기보조원들의 사실확인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경찰에 전달되었던 것일까?

골프장 감사는 "노조가 사장을 성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후인 지난 5월 초 보훈처에 연락해 사실확인서를 팩스로 받았다"면서 "대표이사가 고발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회사의 일원으로서 (사장에게) 유리한 자료를 입수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만약 이것이 문제가 되어서 책임져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노조는 사실확인서와 경찰에서 진술한 피해자 조서의 차이점에 대해 "사실확인서는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이러 이러한 일이 있었다'라는 정도로만 간략히 작성을 해두었던 것이고, 경찰조서는 성추행 당시 상황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묻는 조사관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라면서 "사실확인서에도 성추행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적혀 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경찰 대질조사 당시 경기보조원은 1명씩만 조사실로 들어오게 한 후, 사장은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는 운영위원 1명과 동석한 상태에서 조사가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대질조사가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조사과정에 입회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오히려 경찰은 노조관계자들을 조사실 밖으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또 양측의 주장이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기보다, 사실확인서와 경찰진술 내용의 상이점을 경기보조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추궁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노조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경찰의 조사과정에 상당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라며 "경찰청 성폭력 피해자 조사 지침에는 경찰관이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에게 신뢰관계자가 조사과정에 동석할 수 있음을 반드시 고지하게끔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노조 측의 주장에 대해 용인서부경찰서 관계자는 "모든 조사과정은 적법하게 이루어졌으며, 양측의 주장을 검토한 결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고 밝혔다. K 사장은 "검찰에서 결과가 나오는 대로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관련자들을 상대로 법적 조치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태그:#88골프장,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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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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