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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선거부정과 유사한 것이 왕정체제에서도 있었다. 새로운 왕이 투명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등극했을 경우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 예컨대, 전임자의 정상적인 죽음이나 자발적인 양위(사퇴)를 계기로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선거부정' 시비가 생길 수 있었다. 

드라마 <대박>에 나오는 영조 임금(여진구 분)도 이 점에서 하자가 있었다. 그는 전임자이자 이복형인 경종의 죽음을 계기로 1724년에 왕이 됐다. 그런데 <경종실록>이나 그 수정판인 <경종수정실록>에 실린 여러 기사들에 따르면, 경종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 후계자인 영조는 내의원 의원들을 무시하고 치료 행위에 개입했다. 여기서 시빗거리가 생겼다.

영조는 당대의 의학 상식을 무시한 처방을 두 번이나 내렸다. 서로 상극인 게장과 생감을 환자에게 먹이는가 하면, 인삼탕과 상극인 탕약을 인삼탕과 함께 먹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경종은 영조가 치료에 개입한 지 닷새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실, 영조가 개입하기 전부터 경종의 병세는 의원들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이런 상태에서 영조는 이복형을 살려보겠다면서 치료에 개입했다. 하지만, 고의가 없었다 해도 영조가 경종의 죽음을 앞당긴 것은 사실이다. 영조의 잘못된 처방이 없었다면, 경종이 좀더 오래 생존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종의 죽음을 앞당긴 영조가 왕위에 올랐으니, 세상은 영조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그가 합법 절차에 따라 왕이 되지 않고 전임자를 독살하는 부정한 방법으로 왕이 됐다고 수군댔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대선 부정' 시비가 생긴 것이다. 경종을 지지하는 당파와 영조를 지지하는 당파가 달랐기 때문에 이 시비는 더욱 더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선거부정'으로 당선된 '불법 대통령'

<대박>의 영조(여진구 분).
 <대박>의 영조(여진구 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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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수파인 노론당이 경종을 싫어하지 않았다면, 또 그들이 영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경종이 죽은 직후에 영조는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파의 지지를 받은 덕분에 영조는 별 탈 없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경종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영조가 노론당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되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의 눈에 부조리한 일로 비쳐졌다. 그래서 백성들 상당수는 영조를 '선거부정'으로 당선된 '불법 대통령'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그런 군주는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타난 백성과 야당 일부세력의 저항운동이 유명한 1728년 이인좌의 난이다. 

그런데 이인좌의 난에서는, 예언서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이 등장하여 세상의 주목을 한껏 받았다. 이인좌를 최고사령관으로 모시고 거사에 합류한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이인좌보다도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은 인물이었다. 한동안은 이인좌를 제치고 반란군 최고사령관으로 오해받기도 한 인물이었다. 드라마 <대박>에서 이인좌의 경쟁자 겸 협력자로 등장하는 정희량(최진호 분)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정희량은 당시에는 소외된 땅인 경상도 출신이다. 지금의 경상도 서부인 함양군 사람이었다. 경상도 서부는 한양의 임금을 기준으로 경상우도(--右道)라고 불렸다. 왕이 있는 곳에서 바라볼 때는 경상도 동부가 왼쪽이고 서부가 오른쪽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달리 조선 후기에는 경상도가 소외되고 차별받는 땅이었다. 17세기 전반인 1623년에 인조 쿠데타(이른바 인조반정)로 몰락한 광해군 정권의 지역 기반 중 하나는 경상도 서부 즉 경상우도였다. 광해군 시대의 여당인 북인당은 경상우도를 기반으로 했다.

지역적 분노를 정치 역량으로 조직해낸 정희량

17세기 후반인 숙종 임금 때 장희빈을 앞세워 권력투쟁을 했다가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당은 경상도 동부 즉 경상좌도를 기반으로 했다. 이렇게 경상도의 서부와 동부는 17세기를 거치면서 정치권에서 자리를 잃고 재야로 밀려났다. 이로 인해 경상도의 이익을 대변할 세력이 중앙 정치권에 별로 없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 경상도 차별이 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1733년 영조에게 제출된 경상도 출신 관료들의 상소문에도 드러난다. 음력으로 영조 9년 2월 25일자(양력 1733년 4월 9일자) <영조실록>에 실린 상소문을 읽어보면, 경상도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차별을 받은 것도 모자라서 툭 하면 반체제 세력으로 오해받는 것에 분개하는 이들이 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경상도 사람들은 차별받고 의심받으며 살았다. 이런 경상도 사람들의 귀에 '선거부정' 소문이 들어갔다. "영조가 이복형을 독살하고 왕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이것은 경상도 사람들의 심장에 불을 질렀다. 충청도와 전라도 백성들도 분노했지만, 경상도 백성의 분노에는 조금은 색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선거부정'에 대한 불만 속에 지역차별에 대한 불만이 섞여 들어갔던 것이다.

<대박>의 정희량(최진호 분).
 <대박>의 정희량(최진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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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역적 분노를 정치 역량으로 조직해낸 사람이 바로 정희량이다. 경상우도의 명문가 출신이지만 정치적으론 소외된 삶을 살았던 그는 영조의 즉위를 계기로 경상도의 불만이 증폭되는 것을 관찰하면서 비교적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했다.

정희량의 거사 준비는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부터 있었다. 반란이 일어나기 몇 개월 전인 1727년 가을이었다. 영조 4년 3월 27일자(1728년 5월 5일자) <영조실록>에 따르면, 정희량은 건장한 말을 타고 많은 노비들을 거느린 채 여러 지역 장터에서 포목을 대대적으로 사들였다. 그러나 정상적인 거래를 하지는 않았다. 은으로 된 계약금만 지급한 상태에서 포목을 인수한 뒤 "잔금은 내일 지급하겠다"고 말하고 밤중에 사라지곤 했다.

많은 상인들이 속아 넘어간 것은 정희량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부하 직원들을 거느린 데에다가 계약금으로 은을 지급하는 재력까지 과시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사들인 포목은 반란 당시 요긴하게 쓰였다. 반란군의 군복과 깃발을 만드는 데 사용됐던 것이다.

반란 때 쓸 무기를 은밀히 준비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역사기록에서 종종 볼 수 있지만, 반란 때 쓸 깃발과 군복을 그렇게 미리 준비해두는 사람의 이야기는 흔치 않다. 그것도, 여러 지역에서 사기 행각을 벌여가며 요란하게 준비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욱 더 흔치 않다. 봉이 김선달을 살짝 닮았다고 할까. 정희량은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 

이인좌의 난이 성공해 정희량이 살아남았다면...

정희량은 또 다른 면으로도 능력을 보여주었다. 친척과 노비들 중에서 120명의 병력을 확보한 것이다. 할아버지 무덤을 이장하려고 일꾼을 모은다는 공식적 핑계를 만들어놓고 그런 병력을 모았다. 깃발에, 군복에, 병력에, 이 정도로 철저한 사전 준비를 갖춘 반란자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위의 <영조실록>에서는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킨 뒤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정희량이 진짜 괴수"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재정적·조직적 측면에서 능력을 보여준 상태에서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던 것이다. 

최고사령관 이인좌는 충청권을 장악한 뒤 경기도로 진격했다. 정희량도 그에 못지않은 역량을 과시했다. 그는 경상우도인 함양·거창·합천을 단번에 장악하는 기세를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점령지의 관군을 자기편으로 흡수하여 세를 한껏 불렸다. 결국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도 이인좌 못지않은 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정감록>의 일부인 <무학비결>에는 군주에 대항한 반란이 일어날 때에 함께 발생할 사건을 예언한 대목이 있다. "세 전내(奠乃)가 내응하여 삼한을 멸망시킬 것이다"라는 대목이다. 奠과 乃를 합하면 정(鄭)처럼 보인다. 그래서 奠乃는 정씨·정도령을 가리킨다. 세 명의 정씨 즉 정도령이 등장하여 삼한 멸망에 기여할 것이라는 게 <정감록> 속 <무학비결>의 예언이다. 

만약 이인좌의 난이 성공을 거두고 정희량도 살아남았다면, 세상 사람들이 <정감록>을 근거로 정희량을 정도령으로 떠받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예언서에 나올 법한 인물이었다. 정희량은 정도령 신화에 비교적 가깝게 다가선 인물이었다.


태그:#대박, #정희량, #정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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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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