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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라도 찾아가는 구의역

지난 10일 금요일 오전이었다. 심리상담 교육을 가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보게 되었는데, 문뜩 아이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장소가 떠올랐다. 바로 구의역이었다.

"얘들아, 우리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어."
"응? 어딘데?"
"구의역. 구의역이라는 2호선 전철역이야."
"전철역? 우리 그럼 전철 타는 거야? 야호!"

평소에 자동차보다는 전철을 타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기에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기뻐했지만 막상 말을 꺼내놓고 보니 망설여지는 건 사실이었다.

아직 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녀석들이 그 죽음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인지할 수 있을까? 지난 강남역 살인 사건 때도 아이들에게 추모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차마 살인사건을 설명할 수 없어서 그만 뒀었는데 과연 구의역은 괜찮은 것인지.

순간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는
▲ 구의역에서 마주친 현실 순간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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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음식물들이 눈에 밟힌다
▲ 추모의 공간 옆의 음식물들이 눈에 밟힌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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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내 구의역 행을 결심했다. 부모님이 보시면 유별나다며 끌끌 혀를 차시겠지만, 어쨌든 아이들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막연하게나마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아이들이 그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만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런 억울한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져야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것은 아이들을 키운다는 핑계로 이런 사회적인 이슈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강남역이나 구의역으로 득달같이 달려갔을 나인건만 어느새 무뎌져 그 모든 사건을 글로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만큼, 대신 아이들에게 이 역사의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었다.

자, 그럼, 암사동 삼남매. 우리 구의역으로 가보자꾸나.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

강변역에서 전철을 탄 뒤 구의역에서 내렸다. 아이들은 왜 기껏 전철을 타놓고 한 정거장밖에 가지 않느냐며 아우성이었지만, 사건 현장이 있었던 반대 플랫폼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마주치는 풍경에 그만 넋을 잃은 듯 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근조화환과 함께 플랫폼에 채 적어놓지 못한 수많은 추모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슬프고 스산했다. 아이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깨달았는지 그동안 쫑알대던 입을 닫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또다른 세월호
▲ 검은 리본들 또다른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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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잘 가요
▲ 추모의 글을 남기는 까꿍이 삼촌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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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포스트잇에는 시민들의 아픔들이 절절히 그리고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세월호 노란리본을 본뜬 검은 리본이 보였으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추모의 단 옆에 놓여 있는 음식물들이었다. 그래, 언론에서 보여준 그 육개장 사발면이 너무도 가슴 아팠지. 19살 꽃다운 청년이 무슨 죄가 있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하다가 그런 참사를 당해야 했는지.

깨알 같이 쓰여 있는 글들을 보고 있으려니 울컥 눈물이 나왔다. 19살 김군의 죽음을 한 개인의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시민들의 아픔이,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잘못임을 반성하는 시민들의 각성이 그곳에 적혀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김군이 죽은 스크린 도어 앞으로 수많은 추모의 글들이 붙어 있었고, 그곳에는 간간히 1만 원짜리 지폐도 보였다. 이 돈으로 컵라면 말고 밥 사먹으라는 사람들.

김군의 죽음을 기리며
▲ 구의역 플랫폼 김군의 죽음을 기리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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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삼촌은 왜 죽었어?
▲ 뭐라고 써 있는 거지? 아빠, 삼촌은 왜 죽었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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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까꿍이와 산들이, 복댕이의 폭풍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빠, 이게 다 뭐야? 사람이 죽었어?"
"응. 어떤 삼촌이 이 문 밖에서 일하다가 전철에 치여 죽었어."
"왜? 그 삼촌은 왜 전철을 피하지 못했어? 전철이 오면 피하면 되잖아."
"너희들도 게임에 집중하거나 책 읽고 있으면 엄마가 밥 먹으라는 소리 안 들리지? 그 삼촌도 열심히 일하다가 전철 오는 걸 몰랐었나봐."

"다른 사람이 옆에서 이야기 안 해줬어?"
"글쎄 말이야. 원래는 2~3명씩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삼촌은 혼자서 일을 했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슬퍼하는 거야."

역시나 아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렇게 큰 굉음을 내고 들어오는 전철을 알아채지 못했다니,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안타까움
▲ 유독 눈에 자주 띈 지폐 살아남은 자의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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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지만, 극소수만 잘 살고 대다수는 힘겹게 살고 있는 이 구조를, 모든 업체가 하청에 하청을 주고 있는 이 기형적인 사회시스템을,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빛나야 할 19살 청년이 고작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그곳에서 힘겹게 일해야 하는 현실을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그 모든 것이 말이 안 되지. 아이들의 언어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만큼 사회가 꼬인 것이고, 그만큼 잘못된 것이겠지. 너희들 말대로 전철이 오면 피하면 되는데, 우리 사회는 그 당연한 것도 하지 못할 만큼 망가져 있는 것이겠지.

누가 김군을 죽음으로 몰아갔는가

녀석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길 바라며
▲ 뭔가를 적어야 한다 녀석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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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박또박 이야기하는 중
▲ 인터뷰 중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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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스크린도어에 붙여져 있는 글을 읽고, 직접 추모의 글을 포스트잇에 써 붙이고 있자니 어떤 카메라맨이 다가왔다. 공중파 PD였는데 김군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며 나와 아이들의 인터뷰를 부탁했다.

어느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김군의 비극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평일 낮에 구의역에 왔으니 아마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림이었겠지.

이어지는 인터뷰. 까꿍이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까 잠깐 아빠에게 들은 설명만으로 고인이 된 김군에게 그럴듯한 영상편지를 만들었다.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죽지 말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1학년답게 편지 마무리를 했다. 이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나는 꽤 오랜 시간 구의역을 떠나지 못했다. 아이들은 들어오는 전철을 볼 때마다 이제 타면 되냐고 물었지만 난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누가 김군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나는 과연 공범이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김군의 사망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이 중첩된 결과이다. 소위 흙수저로 태어나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 속에서 인생은 원래 그런 거라며 큰 희망 없이 오늘 하루 무사히 보내는 걸로 만족하는 삶.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

문제는 내가 그와 같은 사회의 기성세대로서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말이나 글로는 그런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열심히 떠들어대지만, 나 역시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기 때문이다.

김군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하청에 하청을 주는 사회 시스템이었다. 내가 물류업에 몸담고 있을 당시, 그것은 당연한 관례였다.

물론 그렇게 되면 화물 노동자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금액이 적어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물류업체들이 그렇게 매출을 돌려가며 이익들을 나눠가졌고, 일부 간부들은 자신의 명의로 세운 회사를 그 시스템 속에 포함시켜 이윤을 사유화 했다.

그리고 많은 직원들은 그런 것들을 보고 배우며 내가 회사 CEO가 되지 않는 이상 그런 협력사 하나 차리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최근 많은 이들이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비난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묶여있는 사회 관계망 속에서 하청을 받을 수 있는 협력사를 차린다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그 관계망 속에 들어올 수 없는 김군 같은 이들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그 말도 안 되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 그의 죽음은 불의의 사고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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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들어오는 전철에 몸을 실어 구의역을 출발했다. 녀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전철 창밖을 바라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믿는다. 오늘 본 장면들이 녀석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 언젠가는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겠지. 그것이 내가 아이들과 함께 구의역을 찾은 이유이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이런 나의 바람이 마냥 어처구니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런 죽음에 대해 많은 이들이 소리 내어 추모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희망이 남아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김군의 죽음을 추모하고, 그 죽음의 원인을 생각하고, 그 해결방안을 떠올린다면 사회는 또 다른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늦게나마 고인이 된 김군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 또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결심해 본다.  


태그:#육아일기, #구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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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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