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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의 사진으로 촉발된 때아닌 노브라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 노브라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내 주변에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친구들이 여럿 있지만, 그들이 말하기 전까지 내가 먼저 알게 된 적은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 할 때, 나는 눈을 바라보지 그 친구들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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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또래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한 여성 아이돌이 화제로 떠오른 일이 있었다. 인터넷에 한 여성의 벗은 몸을 찍은 화상 통화 영상이 유출되었는데, 그 아이돌이 영상의 주인공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영상에 찍힌 '집 내부 구조'까지 분석하며 그 여성이 진짜 그 아이돌이 맞는지를 파헤쳤고, '진짜 맞다' 혹은 '아니다' 식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당시 사람들이 어찌나 이 이야기를 많이 했는지, 나는 때로 상대방이 몇 마디를 더 하기도 전에 '지금 그 이야기 하려는 거지?'라고 되묻곤 했다.

어찌 되었건 '그 아이돌이 맞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묻고 싶던 건 딱 한 가지였다. '그건 어떻게 알았죠?'

도대체 그 영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배경이 무엇이며, 누가 그걸 퍼트렸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 영상의 주인공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알게 되었는가. 직접 본 건가? 그렇다면 그런 영상을 도대체 왜 봤던 건가?

당시에는 그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만 폭발적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 영상을 '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노브라'가 문제? 왜 타인의 몸을 훑어보는가

 페이스북에 개설된 '노 브라 노 프라블럼(No Bra No Problem) 페이지 갈무리. 미국 몬타나 주의 고등학생에서 벌어진 집회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노 브라 노 프라블럼(No Bra No Problem) 페이지 갈무리. 미국 몬타나 주의 고등학생에서 벌어진 집회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 페이스북 '노브라 노프라블럼'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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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미국 '노브라 노프라블럼' 운동에 관한 기사(관련 기사 : 노브라로 등교했다 교장실 불려간 여고생)를 보고, 그때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기사에 등장한 교장에게 묻고 싶었다.

'아니, 그 학생이 브래지어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어떻게 알았대요?'

이는 단지 농담 같은 질문이 아니다. 내 주변에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친구들이 여럿 있지만, 그들이 말하기 전까지 내가 먼저 알게 된 적은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 할 때, 나는 눈을 바라보지 그 친구들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여성의 몸이 얼마나 과도하게 남성들의 시선의 대상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여성들은 대중교통에서 자신의 몸을 불쾌하게 훑어보는 남성을 본 사연이나, 길을 걷다가 다른 여성들의 옷차림새나 몸매를 평가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하곤 한다.

물론 누군가 옷차림이나 꾸밈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뽐낼 수는 있다. 가령 나는 내 다리를 마음에 들어 하는데, 그래서 그리 덥지 않은 날에도 반바지를 입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 나를 훑어보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다. 가령 내가 사람들 앞에서 열심히 발언하고 연단에서 내려왔는데, 누군가 나에게 '와, 종아리가 정말 예쁘시네요'라고 말한다면 과연 그게 기쁘겠는가.

때문에 내가 이 기사를 읽고 처음 발견한 문제는 '여성의 몸이 시도 때도 없이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학교는 '학습을 위한 공간'이지, '누군가의 몸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그녀의 몸을 관찰하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고 이를 꾸짖는 행동이 과연 납득 가능한 일인가.

조금 더 나아가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직장 내 성희롱'도 같은 차원의 문제를 공유한다. 분명 여성들은 '노동자'로서 회사에 출근한다. 하지만 많은 남성은 그녀를 '여성'으로, '몸'으로 바라본다. 때문에 회사 내에서 여성 동료의 몸매를 품평하거나 꾸밈을 지적하는 상황이 왕왕 발생하는 것이다. 여성은 공간과 시간에 상관없이, 너무도 손쉽게 '육체'로서 관찰되고 소비되기 때문에.

'시선폭력'과 외모 품평, 원인은 '불평등한 권력관계'

 여성
 '노브라, 노프라블럼' 운동으로 항의한 학생 주빅은 단지 '브래지어가 불편'하며, 자신의 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런 그녀를 보면서 '노브라라서 불편하다'거나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은 너무 음란하다'고 생각한 남성이 있다면 묻고 싶다. 그 불편함을 만든 사람은 결국 누구인가. 이 사건을 음란함과 연결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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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의 큰 원인 중 하나는 비대칭적인 성별 권력관계다. 만일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관계에 놓여있다면, 남성이 그렇게 아무 때나 손쉽게 여성의 몸을 관찰하고 대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철학자들이 '미적인 것이란 여성적인 것'이라며 여성을 미를 탐구하는 주체가 아닌 대상에 고정했던 것도, 현대의 미디어에서 특정한 여성의 신체만을 아름다운 것으로 추앙하며 부위별로 파편화시키는 것도 같은 식의 발상이다. 이는 각각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큰 권력을 가졌던 사회적 환경과 주류 미디어에서 남성들만이 큰 목소리를 내는 상황을 반영한다.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시시때때로 간섭하는 것은 이 같은 일상 속의 성별 불평등이 만들어낸 결과다.

비대칭적인 권력관계가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배경은 바로 '통제'다. 특히나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통제된 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다. 알다시피 여성의 신체에서 가슴은 매우 성애화된 부위다. 그리고 많은 남성이 가진 여성의 가슴에 관한 환상이 보여주듯,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성애화된 대상이 되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체계 내부의 여성이 누구에게나 성애화되는 것은 곤란한 일이 된다.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독점하는 가부장적 가족관계의 유지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백번 양보하여, 남자들이 다른 남성들에게 '제발 아무 여자나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말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남성들은 더 쉬운 방법을 택한다. 그냥 여자들에게 '스스로 가려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남성들은 여성들을 성애화된 대상으로 만들면서도, 그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표출되어야 할 곳과 말아야 할 곳을 나누고 통제한다. 많은 남성들이 말하는 '밖에서는 조신하지만 집에서는 나를 성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여자'와 같은 환상이 이를 반영한 것이다.

여성들이 이 같은 규범과 구획을 벗어날 때, 그 여성은 '음란한 여성', '불편한 여성'으로 낙인이 찍히곤 한다. 이번 노브라 논란이 굉장히 민망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건의 당사자가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등교했을 때, 그녀는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단지 '브래지어가 불편'하며, 자신의 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런 그녀를 보면서 '노브라라서 불편하다'거나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은 너무 음란하다'고 생각한 남성이 있다면 묻고 싶다. 그 불편함을 만든 사람은 결국 누구인가. 이 사건을 음란함과 연결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남의 몸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여성혐오'라는 용어를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해야 할 사람들은, '여성혐오'라는 단어에서 너무도 쉽게 "여성 집단에 대한 극렬한 혐오주의"라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버린다.
 "가슴은 모아 풍만하게 보이게 하되(성애화) 허리를 잘록하게 만드는 것을 통해 여성들을 유약하게 보이게 하는 의상, '마치 인형처럼 손쉽게 통제가 가능해 보이는 이미지'로 만드는 의상이 아닌가. 즉 코르셋은 수동적인 섹슈얼리티를 가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판타지가 투영된 의상이자, 동시에 여성들을 그러한 틀 속에 가두는 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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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브래지어의 유래를 찾아보면 등장하는 의상이 바로 '코르셋'이다. 현대의 브래지어는 코르셋에서 가슴 부위만 분리된 형태를 취한다. 그런데 이 코르셋이 어떤 의상인가.

가슴은 모아 풍만하게 보이게 하되(성애화) 허리를 잘록하게 만드는 것을 통해 여성들을 유약하게 보이게 하는 의상, '마치 인형처럼 손쉽게 통제가 가능해 보이는 이미지'로 만드는 의상이 아닌가. 즉 코르셋은 수동적인 섹슈얼리티를 가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판타지가 투영된 의상이자, 동시에 여성들을 그러한 틀 속에 가두는 의상이었다.

하지만 코르셋은 입는 사람을 졸도하게 만들 정도로 건강에 좋지 않으며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상이었다. 노브라를 이야기하는 여성들도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 가슴을 압박하는 브래지어가 건강에 딱히 좋을 리도 없으며, 무엇보다 브래지어를 입으면 답답하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삐뚤어진 욕망과 당사자의 건강과 편안함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를 골라야 할 것이다. 그러니 노브라에 관해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싶은 남성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타인의 몸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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