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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3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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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연쇄 인터뷰①] 정춘숙 국회의원 당선자가 본 강남역 살인 사건
[전문가 연쇄 인터뷰②]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여성혐오, 계속 말해야"

"형벌포퓰리즘은 시민들이 적절히 협력해야 작동한다. 여기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주체도 시민이다. 정부에서 나름대로 치안대책을 내놓았는데, 강남역 사건에 분노한 여성들이 '치안대책 마련하라고 나선 것이 아니다, 혐오와 차별이 진짜 문제다'라고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금까지 강력범죄가 발생했을 때의 반응하고는 다르다."

참혹한 강력 범죄 발생, 언론의 선정적 보도, 시민들의 분노, 국가의 강경대응, 안심하는 여론, 비슷한 범죄의 되풀이. 강력한 처벌로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형벌포퓰리즘'의 악순환이다.

지난 3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의 경우 이 순환의 고리가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형벌포퓰리즘을 작동시키는 언론, 정치권, 시민의 삼각연대가 깨지고 있다는 것.

시민들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건드릴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도 변했다. 선정적 보도 대신 차분하게 범죄의 원인을 짚는 기사가 과거에 비해 늘었다. 그는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평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어떻게 화답해야 할까. 홍 교수는 치안대책에만 매몰되지 말고, 혐오와 차별을 근절하는 근본적인 대책들이 함께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차별 피해를 실효적으로 구제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 등으로 차별적인 관행과 의식들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홍성수 교수와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혐오범죄'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지만, 혐오의 격정 상태에서 발생하는 범죄성격상 '증오범죄'가 더 적절하다는 홍성수 교수의 의견에 따라 인터뷰에서는 '증오범죄'라는 표현이 혼용되어 있다.

무조건 여성 혐오 아니다? 포커스 잘못 맞췄다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여성 혐오세상을 뒤엎자' 집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행사 참가자들은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일상적인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여성 혐오세상을 뒤엎자' 집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행사 참가자들은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일상적인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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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법질서 관계장관회의에서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이 나왔다. CCTV 설치, 공용화장실 축소, 여성 대상 강력범죄 처벌 강화, 정신질환자 행정입원 조치 등의 내용을 담았는데.
"강력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한정되어 있다. 애초에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 여성혐오라는 맥락을 제거하고 치안대책 마련 집중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이런 식으로는 이 사건의 기저에 있던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건드릴 수 없다. 차별과 혐오는 강력범죄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성희롱,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고용과 서비스 영역에서의 차별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등장할 수 있다. 범죄 자체에만 집중하면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외국에서 증오범죄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나왔던 우려 중 하나가 바로 '경찰국가화'다. 증오범죄를 척결한다는 빌미로 전반적인 경찰력이 강화되어 시민의 권리를 위협하는 문제인데, 정부 대책을 보면 그런 점이 상당히 우려된다."

- 성평등문화를 조성하겠다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양성평등 심의 조항을 3개에서 5개로 확대하고 포털사이트 자체 필터링 기준에 혐오표현 등을 포함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공공영역인 방송에 대한 일정한 규제는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대책이다. 그런데 사실 이전에도 강력범죄 대책을 내놓을 때 관련 사회정책들이 제시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정책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추후에 관리가 잘 안되면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 성평등정책을 넣은 게 좀 의아했다. 경찰은 줄곧 이 사건에 여성혐오적 맥락이 있다는 것을 부인했다. 이런 정책을 넣은 것은,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는 건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찰은 '여성혐오범죄'라는 점을 부정해왔다. 그런데 정책 대책을 내놓을 때는 성평등정책을 일부나마 포함시켰다. 최소한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 지난 5월 22일 경찰은 브리핑을 통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23일 강신명 경찰청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고. 이렇게 단언하면서도 "여성 혐오는 처음 접해보는 용어라 입장 밝히기 어렵다"(한증섭 서초경찰서 형사과장), "우리나라에는 헤이트 크라임(증오 범죄)에 대한 사례가 많지 않아 논의가 필요하다"(이상경 프로파일러)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일단 과연 경찰에 여성혐오범죄라는 개념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의심스럽다. 내부적으로 무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설사 있다고 해도 학계나 시민사회와 충분히 논의한 여성혐오범죄라는 개념이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혐오범죄임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나온 것 자체가 황당한 것이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설사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해도 얼마든지 관련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데, 자꾸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다'라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춰놓으니 앞뒤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의 대응은 어땠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든, 국무총리든, 여가부 장관이든 책임 있는 사람이 나와서 여성혐오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표시했어야 했다. 최소한 여성가족부에서는 여성혐오범죄 여부는 물음표로 두더라도, 여성에 대한 각종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경찰과는 다소 다른 스탠스를 취했어야 했다."

- 상징적인 역할이 필요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상징적인 조치도 필요하다. 사실 몇 주 만에 그럴듯한 대책이 체계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은 무리다. 일단은 정부 책임자가 여성혐오 문제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어야 했다. 강남역 사건 이후에 나타난 여성들의 분노에 대해 '공감한다',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오범죄가 범죄 이전에 사회에 광범위한 혐오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확립된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신중하게 천천히 나오는게 오히려 맞다. 하지만 '방향'은 제대로 잡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징적인 '발언'은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나온 대응을 보면, 과연 정부가 문제해결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 의문이다."

차별금지법 요구한 지 10년... 이제는 제정되어야 한다

-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규정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
"전략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외국의 증오범죄법상 증오범죄는 주된 동기가 '혐오'에 기반해야 하는데, 이번 사건이 그런 개념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혐오범죄'라는 개념을 고수하면,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 하지만 운동의 차원에서 꼭 법개념이나 범죄학적 개념과 동일한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여성운동에서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고 할 때, 그 폭력은 법적 폭력보다 넓은 개념이다. 그렇지만 이 구호는 다양한 수위와 형태의 여성에 대한 억압, 차별, 물리적 폭력을 '폭력'으로 통칭화하여 사회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적절하고 유효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여성혐오범죄라는 개념을 고집해서 혼란스러웠다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그 표현을 쓰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의미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을까."

- '혐오'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혐오'(hate)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통칭하는 학적, 운동적 개념으로서의 '혐오'가 일상적인 언어사용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롱이나 차별적 의견 표시를 모두 '혐오'라고 개념화한 것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실제로, 혐오를 당하는 소수자들은 혐오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수자는 사소한 조롱, 차별적인 의사 표시조차도 혐오로 느낀다는 증거다. 그래도 이 표현이 틀린 개념일까? 다수자에게 어색한 개념이면 폐기되어야 하는가? '여성혐오범죄'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사건을 '내 일처럼' 여긴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로 규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 증오범죄법 제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증오범죄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기존에 처벌받지 않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폭행, 강간, 살인 등의 범죄가 '혐오'나 '편견'이라는 동기에 의해 행해졌을 때 가중처벌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필요한 것은 증오범죄를 눈에 보이게(visible) 함으로써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증오범죄대책에 대한 각종 보고서들을 보면 증오범죄에 대한 '통계화' 작업을 유난히 강조하는데 바로 그런 '가시화'의 일환이다. 미국 같은 경우에도 증오범죄통계법을 제정해서 연방 차원에서 1년에 증오범죄가 얼마나 일어나는지 공표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증오범죄법 제정과 별개로 다른 구체적인 사회정책적 조치들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증오범죄법은 중요하면서도 그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얘기도 나오던데, 차별금지법이 더 근본적인 대책인가.
"차별금지법 제정이 더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구제를 하는 법이다. 주요 국가들에도 기본적으로 제정되어 있는 법이며, 한 사회가 '차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선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그런 상징도 없고, 실효적인 구제조치도 부실하다.

또한 증오범죄법 같은 경우는 찬반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차별금지법은 유엔기구들도 지속적으로 제정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상식으로 확립되었으며, 그 효과도 지속적으로 검증됐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한 지 딱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정말 제정되어야 한다."

당장 효과 없더라도 중장기적인 사회정책 필요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는 '추모의 벽'을 둘러보고 있다. 이날 강 장관은 "여성혐오 범죄로 단정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는 '추모의 벽'을 둘러보고 있다. 이날 강 장관은 "여성혐오 범죄로 단정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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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의 경우, 증오 범죄에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나.
"직접적인 대책은 증오범죄법을 제정해서 증오범죄를 가중처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증오범죄법을 증오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에만 초점을 맞춰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가중처벌을 통해 증오범죄를 '가시화'시키고 국가의 '의지'를 확인시키고, 다양한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증오범죄는 편견과 혐오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편견과 혐오를 제거하는 '포괄적인 접근'(comprehensive approaches)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증오범죄 문제에 대한 국제 보고서들을 보면, 반차별/평등을 위한 학교교육과 문화/스포츠 프로그램, 시민사회 전반의 의식 제고, 인터넷과 방송 등에서의 혐오표현 대책, 극단주의 단체에 대한 대책, 피해자 보호 및 지원 프로그램 등이 제시되어 있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꼭 필요한 중장기적인 사회정책들이다. 증오범죄법은 이러한 대책들을 추동해내는 기제로서 의미가 있다."

-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강력범죄에 대해 소위 '강성형벌'로 대응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흐름을 '형벌 포퓰리즘'(penal populism)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분노하고, 언론은 여기에 불을 붙이고, 국가는 강경대응으로 답하고, 시민들은 그 대응에 안심하지만....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범죄는 또 반복되는 것이다.

형벌포퓰리즘은 시민들이 적절히 협력해야 작동한다. 여기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주체도 시민이다. 정부에서 나름대로 치안대책을 내놓았는데, 강남역 사건에 분노한 여성들이 '치안대책 마련하라고 나선 것이 아니다, 혐오와 차별이 진짜 문제다'라고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금까지 강력범죄가 발생했을 때의 반응하고는 다르다. 언론도 예전에는 무책임하게 분노만 부추기는 선정적인 보도 일색이었는데, 이번에는 차분하게 근본적인 문제를 짚는 기사가 늘었다. 형벌포퓰리즘을 작동시키는 언론, 정치권, 시민의 삼각연대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상당히 의미 있는 지점이다."


태그:#강남역,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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