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오직 한 방향으로 흐른다. 때로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우리 삶보다 빠르면 어떤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과거에 갇혀 응고돼 버리기도 한다. 한 시기에 해결되었어야 하는 과제가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면 우리의 성장도 꼭 그만큼 부족한 미완성으로 남는 것이다.

여기 어느 한 시절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찾아 시간을 거꾸로 헤엄치는 이야기가 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급격한 산업화 가운데 사라지는 무언가에 주목하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학창 시절 겪은 교우관계의 단절에 고뇌하는 중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로서 한 평생을 회고하는 위치에 선 윤후명은 오래 묵어 잊힌 설화를 펜 끝에서 되살린다.

이제 그들의 작품을 하나씩 소개한다.

리처드 브라우티건,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책 표지
▲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책 표지
ⓒ 비채

관련사진보기

<미국의 송어 낚시>, <워터멜론 슈가에서> 같은 작품으로 1960년대 미국 젊은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비인간성을 비판하고 자연적이고 목가적인 것들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품을 집필해 현대 미국 진보적 생태주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한국에서는 그 자신의 소설보다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차례 언급해 더욱 유명하기도 하다. 이는 그가 일본의 선 사상에 큰 관심을 가졌을뿐더러 하루키 역시 일본의 유명작가보다 스콧 피츠제럴드, 데릭 하트필드, 레이먼드 카버, 리처드 브라우티건 등 서구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은 정해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뻗쳐나가면서도 사회 문제를 소설 안에 흥미로운 은유로써 펼쳐낸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대표작 <미국의 송어 낚시>가 출간된 뒤 1962년부터 1970년 사이에 쓴 62편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원제는 첫 단편 제목인 <잔디밭의 복수>인데 이것이 어째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로 바뀌었는지는 짐작할 바 없다.

실린 단편은 보통의 단편보다 훨씬 짧은 분량으로 짧은 글은 3분 내외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소설이라기보단 습작에 가까운 작품이 많아 개중 몇 편은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주제나 표현, 재미 등에서 작가가 목적한 바를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다만 책 가운데 순간순간 빛나는 에피소드와 문장들이 숨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데 이를 하나둘 발견하는 게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읽는 재미라 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자기가 여섯 살이고, 비가 막 오려는 흐린 날씨에 엄마가 초콜릿 케이크를 굽고 있다고 믿었다. 1930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에게는 매일이 1872년 5월 3일이었다. 초콜릿 케이크가 다 구워지기까지 무려 17년이나 걸린 셈이다. -잔디밭의 복수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책 표지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책 표지
ⓒ 민음사

관련사진보기

철도회사 직원으로 근무하는 서른 여섯의 사내 다자키 쓰쿠루는 자신의 삶이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벌어진 한 사건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려져버렸다고 믿는다. 그 사건이란 그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네 명의 친구로부터 절교를 통보받은 일로, 당시 스무살이던 다자키 쓰쿠루에겐 죽음까지 생각해야 했을 만큼 힘든 기억이다.

놀랍게도 그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이 친구들로부터 절교를 통보받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너무도 큰 충격이었던 나머지 드러내 살필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워낙 가까운 친구들이었던 만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로부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단절이 남긴 커다란 구멍도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들로 메워진 듯 보였다.

다자키 쓰쿠루가 그 구멍을 돌아보게 된 건 새로 만나게 된 여인 기모토 사라를 통해서다. 어느날 그녀는 다자키 쓰쿠루가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내면에 난 상처를 드러내 살피지 않으면 더는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선포한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딱지 아래 상처에서 여전히 피가 흐를 수도 있다는 게 그녀의 판단이다. 이때문에 그와 그녀의 관계가 방해받을 수 있다는 것. 결국 다자키 쓰쿠루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왜 친구들로부터 버려졌는지 그 이유를 찾아 떠난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다소 괴상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방황과 고독, 상실감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바 있는 하루키가 잊힌 청춘의 한때를 찾아 순례를 떠나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완벽하다고 여겼던 관계가 무너지며 찾아온 박탈감, 너무나 아름다웠던 순간이 깨지고 남겨진 상실감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훌륭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는 없다. 상실을 주제로 한 그의 소설은 현실 속에서 크고 작은 상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음에 분명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갖는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그것은 올바른 가슴 아픔이며 올바른 숨 막힘이었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앞으로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 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388쪽


윤후명, <강릉>

책 표지
▲ 강릉 책 표지
ⓒ 은행나무

관련사진보기

크고 화려한 것들의 세상이다. 큰 것은 더욱 커지고 화려한 것은 갈수록 화려해진다. 폴리스는 메트로폴리스가 되고 미디어는 매스미디어가 됐다. 성공한 음식점은 체인이며 프랜차이즈가 되고 사람들은 이미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향한다.

도심 곳곳 광고판에는 인기 많은 스타가 더욱 큰 관심을 구하고 섰다. 커다란 영화에 더 많은 관객이 들고 예쁘고 잘 생긴 남녀에겐 구애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반면 작고 질박한 것들은 설자리를 점점 잃는다. 작고 질박한 것들에겐 작고 질박하게 남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실상은 다양성이란 말 자체를 지키기도 급급하다.

많은 가수가 하나의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고 많은 작가는 하나의 스타일로 글을 쓴다. 거리엔 비슷한 차림의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식당이며 카페는 저마다 비슷한 맛을 내는데 열중한다. 도시는 더 큰 도시와 합쳐지거나 더욱 작아지거나 둘 중 하나다. 사람도 더 크고 화려해지거나 더 작고 초라해지거나 둘 중 하나다. 크고 화려한 것들의 세상이다.

내년이면 등단 50주년을 맞는 윤후명은 평생을 작고 질박한 것들 사이에서 글을 써온 작가다. 그는 시적인 문체로 도무지 소설인지 수필인지 이도저도 아닌지 확인할 길 없는 독특한 글을 쓴다. 대체 이런 작품을 소설이랍시고 내놓는 작가를 나는 그 말고 더는 알지 못한다. 요컨대 형식을 탈피해 자유로운 글을 쓴다는 것인데 내용만 다를 뿐 비슷비슷한 경향성을 내비치는 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그가 특별한 이유다.

<강릉>은 등단 50주년을 앞두고 윤후명이 내놓은 전집 첫 번째 권이다. 작가 자신의 고향인 강릉을 모티브로 삼은 신작들과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산역'을 함께 묶었다. 흔히 연대순으로 편찬하는 소설 전집의 경향이며 관행을 깬 것인데 이 역시 윤후명이란 작가의 색채를 드러낸다.

강릉, 그것도 오늘의 강릉에선 잊힌 지 오래일 옛 설화를 모티브로 한 그의 소설은 크고 화려한 글에 익숙한 많은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게 분명하다. 더욱이 데뷔작격인 '산역'과 근래에 쓴 다른 작품들 사이의 커다란 격차는 과연 윤후명이란 작가가 평생에 걸쳐 무엇을 지향해 왔는지를 애매하고 모호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크고 화려한 것들의 세상에서 만나는 작고 질박한 것의 감동에 있다. 오늘날 대체 어느 작가가 호랑이가 처녀를 잡아먹고 머리만 바위 위에 놔뒀다는 기이한 설화를, 잊혀 이제 기억하는 이조차 몇 남지 않은 설화를 모티브 삼아 여러 편의 소설을 쓰겠는가. 대체 누가 북방 알타이 지역에서 온 젊은이를 매개로 민족의 뿌리라 할 만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나 말이다.

윤후명 전집 첫 번째 권, <강릉>이 지닌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민음사(2013)


강릉

윤후명 지음, 은행나무(2016)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비채(2015)


태그:#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 #강릉, #김성호의 독서만세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