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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포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중
 김포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중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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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 만에 제주-김포 구간 비행기 탑승 횟수가 70회가 넘었습니다. 한 달에 3번 정도는 제주와 육지를 오간 셈입니다. 이 정도면 육지에 살지, 왜 굳이 제주에서 사느냐고 많이 물어봅니다.

맞습니다. 취재나 강의, 방송 등의 일이 매주 있다면 육지에 사는 편이 항공권을 구매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낫습니다. 그러나 제주에서의 삶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제주에 있는 이 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매번 제주에 관한 비판적인 글을 쓰면서 뭐 그리 행복하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제주에 왜 사냐는 물음에 답을 하겠습니다.

교육비가 거의 들지 않는 시골 초등학교

요셉이가 다니는 송당초등학교는 골프와 중국어, 영어, 목관 앙상블 등의 방과후 수업이 있다.
 요셉이가 다니는 송당초등학교는 골프와 중국어, 영어, 목관 앙상블 등의 방과후 수업이 있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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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피터의 아들 요셉이는 초등학교 5학년, 딸 에스더는 유치원생으로 송당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에 다닙니다. 요셉이는 방과후 수업을 통해 영어와 골프,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용은 월 5만~6만 원에 불과합니다.

물론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마다 이 정도 비용으로 방과후 수업을 하고 있으니 제주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 대부분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서울 등의 대도시의 경우 인기 있는 방과후 수업 신청을 위해 줄을 서기도 하지만 송당초등학교는 전교생이 60명에 불과해서 이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시골학교이다 보니 현장학습 등의 기회가 자주 있습니다. 비용도 대부분 무료입니다.

에스더의 경우 소풍 때에 먹는 점심 등을 학교에서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전교생이 적으니 학교 급식도 유기농으로 꽤 잘 나옵니다. 요셉이는 학교 급식이 제일 맛있다고 식단표를 줄줄 외우고 다니면서 맛있는 메뉴가 나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합니다.

학부모를 위한 공개수업에 가보면 학생수가 적어서 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1:1 수업처럼 진행합니다. 시골학교, 작은 학교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친구가 좋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늘 밖에서 노는 아이들. 놀다가 더우면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 아이스크림 등을 마음대로 꺼내 먹기도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늘 밖에서 노는 아이들. 놀다가 더우면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 아이스크림 등을 마음대로 꺼내 먹기도 한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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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년 전에만 해도 육지에 한 번 가려면 힘이 들었습니다. 요셉이와 에스더가 아빠와 떨어지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2년 전에는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서 살아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에 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 앞에 있는 공동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와 마을에서 건립한 공동주택이니 당연히 입주자들은 학생들과 가족입니다. 학교가 끝나도 아이들은 친구들과 노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밖에서 노는 것은 기본이고, 층마다 있는 친구네 집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녁마다 밥 먹으라고 부르러 다녀야 합니다. 연휴나 명절 때 육지에 오면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다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요새 요셉이는 동네 아이들과 야구하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아빠가 어릴 적 아파트에서 친구들과 야구 하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만약 서울에 있었다면 학원에 가야 했을 아이들은 밖이 깜깜해져야 들어옵니다. 육지에서 일하다 아이들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해도 친구들과 논다고 바쁘다며 전화를 끊기도 합니다.

공동주택을 벗어나면 오름과 밭들이라 아이들은 저녁마다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옵니다. 검은색 흙물이 든 (제주 동쪽의 땅은 대부분 검은색이다) 빨래가 지워지지 않는다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훌쩍 바닷가에 가서 놀다가 오는 아이들

바닷가에서 하는 모래 놀이를 좋아하는 에스더
 바닷가에서 하는 모래 놀이를 좋아하는 에스더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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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간지역에 사니 주변에 큰 건물이 없어 옥상에서는 오름과 바닷가가 한 눈에 보인다.
 중산간지역에 사니 주변에 큰 건물이 없어 옥상에서는 오름과 바닷가가 한 눈에 보인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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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는 해변과 1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해가 길어진 요즘은 오후 5시라도 훌쩍 바닷가로 갑니다. 육지에 살았다면 이렇게 쉽게 바다에 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차로 20여 분 정도만 가면 되기 때문에 언제라도 날씨만 좋으면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해변에서 하는 모래 놀이를 좋아하는 에스더는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맨발로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놉니다.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바닷물에 몸을 담그기도 합니다.

지금은 사람이 많아져서 가기가 꺼려지지만, 마을 근처에 있는 비자림은 산책코스입니다. 마을에 있는 미로공원은 공짜라(동네 주민은 무료) 심심하면 가서 한 바퀴 돌고 옵니다. 오름 밑에는 운동기구가 있어 저녁을 먹고 난 뒤에 놀다가 오기도 합니다.

제주 전역이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다행히 아이엠피터가 사는 마을은 아직은 큰 변화가 없어 자연을 즐깁니다. 취재하러 서울에 가서 2~3일만 있으면 창문으로 바라보던 오름이 생각나 미칠 지경입니다. 전국 어느 지역을 가도 풍광이나 공기가 지금 사는 집보다 좋은 줄 모르겠습니다.

요셉이와 에스더는 점점 육지에 가기 싫다고 합니다. 가서 짜장면이나 치킨을 시켜 먹는 순간 빼고는 마음껏 뛰놀고 즐겁게 친구들과 노는 제주가 좋다고 합니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오름까지 오르는 스피드를 즐기기도 합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서울에 가서 살까?' 물어보면 손으로 X자를 그리면 '싫어'를 외칩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꼭 잘 사는 것일까?

전업 정치블로거로 사는 필자의 수입 중 출연료와 강의료는 대부분 취재 등에 필요한 교통비로 지출하고, 생활비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전업 정치블로거로 사는 필자의 수입 중 출연료와 강의료는 대부분 취재 등에 필요한 교통비로 지출하고, 생활비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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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피터는 전업 정치블로거입니다. 수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후원자분들의 후원금과 방송이나 강의 등을 통해 들어오는 강사료나 출연료입니다. 사실 강사료나 출연료는 항공권을 구매하는 등의 교통비로 대부분 소진됩니다. 강의나 방송을 해서 나오는 수입은 생활에 보탬이 되지는 않습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방송이나 강의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취재 때문입니다. 1인 미디어라 취재에 들어가는 비용을 스스로 충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강의나 방송 스케쥴이 있기에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도 국회에 가서 인터뷰도 할 수 있고, 취재도 합니다.

강의나 방송 등을 하는 비용은 한 마디로 적자만 겨우 면하는 정도라 실제 가족이 살 수 있는 생활비는 후원자분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수준이지만, 제주에 사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서울에 있었다면 철마다 아이들 옷을 해주거나 외식, 교육비, 주거비 등으로 돈이 더 많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주택에 사니 주거비는 월 5만 원에 불과합니다. 옷은 서울의 지인들이 보내주고 교육비는 학원이 없으니 거의 들지 않습니다. 시골에 살다 보니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없고 외식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장을 봐서 집에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정도입니다.

서울에 살았다면 교통비가 많이 들지 않으니 수입은 더 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주거비와 교육비, 외식으로 지출되는 비용도 늘어납니다. 서울에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강의나 방송, 모임이 생겨 아이엠피터도 대한민국의 보통 아빠들처럼 아이들 자는 모습만 보고 나오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

요셉이에게 팔베개를 해주면 에스더는 오빠만 좋아한다고 삐친다.그래서 꼭 팔베개는 함께 해줘야 한다.
 요셉이에게 팔베개를 해주면 에스더는 오빠만 좋아한다고 삐친다.그래서 꼭 팔베개는 함께 해줘야 한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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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화, 수, 목요일은 육지에서 취재나 강의, 방송 녹화를 하고 목요일 저녁부터 월요일까지는 집에 있습니다. 매일 글을 쓰지만,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에는 글쓰기 작업을 멈춥니다. 요셉이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야구 동영상을 보거나 에스더의 두시럭 떠는 모습을 지켜봅니다(저희 입에서는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가리켜 두시럭 떤다고 합니다).

누가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하고, 오늘 학교에서 무슨 반찬이 나왔는데 맛있었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이 어떻게 놀았는지 얘기를 나누며 속상해하기도 웃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목욕을 도와주고 머리를 말려주기도 합니다. 옷을 입혀주면서 얼마나 아이들이 컸는지 눈으로 확인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서울에서 있다가 한 달에 한 번만 제주에 내려가라고 합니다. 교통비가 많이 들지 않으니 낫지 않느냐고 합니다. 만약 매주 제주와 서울을 오가지 않고 서울에만 있으면 교통비 지출은 줄었을 것입니다.

잠옷 입고 하루종일 나가 놀았던 에스더가 저녁 밥도 친구 집으로 갔다 달라고 했다가 끌려와 혼나고 있는 모습 (좌) 밖에서 놀다가 다쳐서 엉엉 울고 들어온 에스더(우)
 잠옷 입고 하루종일 나가 놀았던 에스더가 저녁 밥도 친구 집으로 갔다 달라고 했다가 끌려와 혼나고 있는 모습 (좌) 밖에서 놀다가 다쳐서 엉엉 울고 들어온 에스더(우)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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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서울에 계속 있으면 돈은 절약될 수 있겠지만 에스더가 엄마에게 혼나는 모습, 밖에서 놀다가 넘어져 엉엉 울고 들어오는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요셉이와 야구 얘기도 자주 못하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아빠 혼자서 서울에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지금뿐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빠 품을 떠나야 하는 아이들이기에 지금 아이들이 울고, 웃고, 노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주를 비판하면서 제주에 산다고 욕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즐기는 제주에서의 삶을 아빠는 지켜주고 싶습니다. 돈은 나중에라도 벌 수 있겠지만, 아이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하는 이 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정치미디어 The 아이엠피터 (theimpeter.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제주, #정치블로거, #1인 미디어, #저녁이 있는 삶,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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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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