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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정신병원 입원자의 자발적 입원은 24.1%(2012)에 불과하다. 입원환자 10명 중 7명이 폐쇄병동에 격리된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정신병원 병상 수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답게 살 환경, 치료를 제대로 받고 타인과 교류해도 되는 환경이지만 사회는 그들을 기꺼이 곁에 두고 감당할 맘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정신병원 입원자의 자발적 입원은 24.1%(2012)에 불과하다. 입원환자 10명 중 7명이 폐쇄병동에 격리된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정신병원 병상 수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답게 살 환경, 치료를 제대로 받고 타인과 교류해도 되는 환경이지만 사회는 그들을 기꺼이 곁에 두고 감당할 맘이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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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 한국 장애계는 이동권 운동과 자립생활 운동으로 집과 시설에만 살아야 했던 재가장애인이 대거 탈재가·탈시설에 성공하였다.

불과 10여 년 전에는 지금 지역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장애인들보다 경증인 상태에도 전동휠체어나 지하철 편의시설 같은 시스템이 부재했기에 집과 시설에서만 머물러야 했다.

이동수단의 보급과 함께 2008년 시작된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는 신체적 활동지원을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중증의 장애인도 사회활동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장애인시설 거주인의 80% 이상이 최중증의 장애인과 지적·발달 장애인으로, 아직 지역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이슈가 경증장애인에서 중증장애인으로, 이제 정신적·지적장애 유형과 최중증장애인으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이동보조수단과 활동보조인만으로는 정신적 장애인과 최중증장애인의 탈시설을 유도할 수 없었고 결국 시설에는 더욱 어려운 장애인만 남았다.

2009년 시설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와 지역사회에 안착한 한 장애인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자립 생활해서 좋은데, 시설에서 같이 나오고 싶은 언니가 있어요. 그런데 그 언니는 너무 중증이라 아무도 자립생활 하자는 얘기를 건네지 않아요. 저야 전동휠체어도 있고, 집도 얻었고, 활동보조 시간도 많이 필요 없으니까 저한테는 얘기하는 것 같아요. 그 언니한테 같이 나가자고 얘기해봐야 그 언니가 타고 다닐 만한 전동휠체어는 엄청나게 비싸고, 활동보조도 온종일 누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누구하나 책임질 수 없으니까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언니는 아마 평생 시설에서 나오지 못할 거예요."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의 당위성으로 지지받았던 탈시설 정책은 최중증장애인과 중복장애인, 지적·발달장애인만 남은 상황에서 그들을 위한 새로운 공공서비스로 확대되지 않았다. 결국 장애인시설의 최중증장애인과 지적·발달장애인들만이 남았다.

이들은 지체장애인들과는 달리 자립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로 분류됐다. 그래서 시설은 필요하다는 논리가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는 중증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립생활지원 정책보다 소규모나 그룹홈으로 전환하는 시설의 탈바꿈이라는 새로운 의미의 탈시설 정책으로 귀결되고 있는 듯하다.

대단한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정책의 효과가 어디까지인지, 그 이후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정도의 간단한 미래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장애인정책의 현실이다. 좋은 말로는 단계적 발전이라고 하겠지만, 결국은 권리에도 순번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단계적 발전이라도 제대로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19대 국회가 닫히기 직전 정신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정식명칭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현재 논란에 휩싸였다. 한 측에서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설립되는 등 보호의무자 입원 요건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한 측에서는 경찰에 의한 정신장애인 입원 요건 규정 등이 포함되어 있어 강제입원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졌다고 한다. 물론 불안감을 호소하는 쪽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다.

'길에서 혼잣말하지 마, 멍 때려서도 안 돼, 한 군데를 응시해서도 안 된다고. 왜? 이제 경찰이 다시 잡아 갈 거야. 난 안 미쳤다고 해야지. 그러면 더 잡아가. 음 대응 매뉴얼이 있어야겠다.'

이 알 수 없는 대화들은 조울과 망상을 가지고 계신 분과 나눈 최근 대화이다. 이 분과 대화를 통해 비자의적 입원 요건의 강화라는 주장에 의문을 품게 된다. 당사자가 불안해하는 법 개정, 당사자가 왜 불안해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최근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입장발표를 보면 당사자들의 불안이 우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강남역 살인 사건은 관리되지 않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매듭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의 문제를 개인에게 돌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우리는 지겹게도 보아왔지만, 그 결과로 인해 20~30년 전처럼 사회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할 우려가 있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 이 문제는 정신장애인뿐 아니라 지적·자폐성 장애인들 또한 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오늘도 살아남은 여성과 아직 잡혀가지 않은 정신적 장애인들의 안전을 지켜줄 국가가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정지영 씨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강남역 장애인 구금, #재가 장애인 탈재가, #정신보건법, #정신적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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