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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일~5월 15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독일,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 벨기에,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 도시를 방문해 세월호 참사를 알리고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촉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방문 기간 동안 스웨덴 에스토니아 호 참사 유가족, 영국 힐스버러 참사 유가족, 파리 테러 피해자 모임 등을 만나 재난참사에 대한 국제연대의 장을 열었습니다. 유럽에 울러 퍼진 세월호 유가족들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총 5회에 걸쳐 유럽 방문 이야기를 전하는 기사를 게재합니다. - 기자 말

1994년 9월 28일 새벽 1시, 989명의 승객과 선원을 태운 한 선박이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스웨덴 스톡홀롬으로 항해하던 중 발트해에서 침몰했다. 852명이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가장 끔찍한 선박사고로 불리는 이 사건이 바로 에스토니아호 참사다.

세월호 유가족 예은 아버지, 시연 어머니와 함께 유럽 방문을 준비하며 조사한 에스토니아호 참사는 세월호와 비슷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두 선박 모두 복원력이 취약한 로로선이었으며 자동차와 승객을 실어나르는 카페리였다. 두 선박 모두 선박 크기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급속도로 침몰했다.

에스토니아호 참사가 일어난 후 UN 국제해사기구의 선박 건조 기준이 바뀌었지만, 세월호는 에스토니아호 참사 불과 몇 달 전에 건조되어 새로운 기준을 적용 받지 못했다. 또한 선원들의 위기관리 훈련, 자동 비상 위치 지시용 무선 표지국 (EPIRB) 설치, 항해자료 기록장치(VDR) 시스템 등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있어 중요한 지점들이 에스토니아호 참사 이후에야 의무적으로 적용된 사안들이었다.

에스토니아 유가족들과의 만남, 그리고 알게 된 진실

독일 베를린에서 함께 거리 캠페인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과 에스토니아 유가족
 독일 베를린에서 함께 거리 캠페인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과 에스토니아 유가족
ⓒ Tsukasa Y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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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에스토니아호 유가족을 만나는 것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중요한 활동이었다. 독일 베를린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Sewol Berlin(세월 베를린)' 교민들이 발 벗고 나서서 에스토니아호 참사 유가족을 세월호 유가족의 베를린 방문에 맞춰서 초청해주셨다. 베를린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거리 행진과 캠페인, 기자간담회, 다큐멘터리 상영회 등을 진행했다.

첫 일정인 브렌덴베르크 문이 있는 광장까지의 거리 행진과 캠페인을 준비하는 중 에스토니아호 참사 유가족이신 레나르트 노드씨와 그의 부인 마리 노드씨가 도착했다. 두 분과 예은 아버지, 시연 어머니는 악수하며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노드씨는 에스토니아호 참사 당시 어머니를 잃었다. 노드씨의 어머니는 정년 퇴직 후 첫 여행으로 에스토니아호에 탔고 30분 만에 침몰해버린 에스토니아호에서 돌아오지 못하셨다고 했다.

노드씨 부부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손에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노드씨 부부의 이러한 자연스러운 모습에 '이런 캠페인을 많이 해보셨냐'고 물었다. 지난 22년간 행진, 캠페인, 성명 발표 등을 하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를 알기 위해 싸웠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제까지 우리가 에스토니아호 참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에스토니아호 유가족들도 진실을 위한 지난한 싸움을 계속해 오고 계셨다.

한국에서는 마치 에스토니아호 참사 이후 많은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사실 에스토니아호 참사 유가족들은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에스토니아호 참사의 진실과 선체 인양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놀랍게도 스웨덴 정부를 필두로 한 관계국들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850구가 넘는 시신을 찾지 못했음에도 인양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선박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려는 시도까지 했으나 유가족들의 강력한 반대로 선박 주변을 자갈로 덮어 시체 유실을 막는 수준에 그쳤다. 인양과 선체 조사도 없이 엄청난 대형 참사의 원인을 결론짓고, 3년간의 조사를 종결시킨 것이었다. 에스토니아호가 침몰한 장소는 현재 스웨덴, 에스토니아, 핀란드 3개국의 협정에 의해 항해 및 잠수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시연 어머니와 악수하는 에스토니아호 참사 유가족 노르드씨
 시연 어머니와 악수하는 에스토니아호 참사 유가족 노르드씨
ⓒ Tsukasa Y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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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캠페인 이후 한국 언론사의 유럽 특파원 기자들과 현지 언론사 기자들이 함께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노드씨는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가족들의 반 이상이 에스토니아호 인양을 원하고 있으며, 침몰한 선체를 콘크리트로 덮으려 했던 스웨덴 정부의 시도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에스토니아호 참사가 일어나고 3년 뒤에 발표된 최종 조사 보고서는 불완전하고 사실을 오도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완전히 거짓"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에스토니아 유가족들은 새롭고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만들려고 한다, 이것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독립적인 조사 단체에는 꼭 피해자 가족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유가족은 "가족들이 지난 2년 동안 한결같이 바란 것은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과 책임, 구조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가족들을 정부가 탄압하고 방해한 이유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유럽 방문을 통해 에스토니아호 참사 유가족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도움을 주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이 직접 '진실이 밝혀졌다'고 선언한 영국 힐스버러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27년의 싸움 끝에 승리한 경험을 듣고 용기와 힘을 얻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미리 준비해 온, 세월호 유가족들의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가 적힌 현수막을 에스토니아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노드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길에 필요한 모든 지지를 보낼 것이며,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부탁하는 모든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슈피겔> 기자 "결국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다"

에스토니아호 유가족에게 전달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응원의 메세지가 적힌 현수막
 에스토니아호 유가족에게 전달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응원의 메세지가 적힌 현수막
ⓒ Tsukasa Y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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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유럽 방문은 교민들의 도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기회였다. 베를린에서의 행진, 길거리 캠페인, 기자 간담회, 스웨덴 에스토니아호 유가족 초청 그리고 영화 상영회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교민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기자 간담회 이후 이어진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 상영회에도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독일 유명 언론사인 <슈피겔>지의 수잔네 쾰블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관객과 대화에서도 에스토니아호와 세월호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세월호 침몰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예은 아버지는 "급속한 침몰을 볼 때 선체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퇴선 명령만 했더라면 전원이 7분 만에 탈출 가능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언급하며, "퇴선 명령이 없었던 것이 304명이 죽은 이유"라고 말했다.

노드씨는 "에스토니아호가 30분 만에 침몰했는데, 물이 열린 선수 문으로 밀려들어 와도 그렇게 빨리 침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10여 년 전에 세관에서 일하다가 은퇴한 한 사람의 폭로로 에스토니아호가 군수 물품을 밀반입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쾰블 기자는 "결국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세대(Generation Sewol)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올해 입학한 대학 새내기들이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이다. 예은 아버지는 "지난 2년간 말을 하지 못한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 말할 수 있게 되었다"며 "특히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대학에서 세월호 간담회를 매일같이 요청하는 등 관심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업사이드다운 상영회 후 관객과의 대화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업사이드다운 상영회 후 관객과의 대화
ⓒ Tsukasa Y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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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정부가 언론사에 보도지침 문건을 내려보냈다는 이야기에, 노드씨는 "에스토니아호 참사를 심층 취재하던 기자들이 해고되는 일들이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세월호처럼 에스토니아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도와주는 시민들이 있는지 물어보자 노드씨는 "참사 후 5년마다 진행하는 추모제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그뿐"이라고 말했다.

많은 일정을 함께하고 난 후 노드씨는 예은 아버지, 시연 어머니와 악수하며 "앞으로도 연대를 이어나가자"고 말했다. 예은 아버지와 시연 어머니도 "연대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며 연대할 것을 약속했다.

22년이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세월을 가족이 왜 죽었는지 명확히 밝혀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에스토니아호 참사 유가족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 그들을 만나고 나니 마음이 벅차는 기분이었다.

또 유럽의 수많은 교민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길에 함께 싸워주는 사람이 많아 외롭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 많은 사람이 2년이 되었든, 22년이 되었든, 진상규명이 되는 그 날까지 긴 시간을 함께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박현주 4.16연대 간사입니다.



태그:#세월호, #에스토니아,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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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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