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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추모글과 국화꽃 컵라면 등을 놓고 추모를 하고 있다.
▲ 추모글과 컵라면 시민들이 추모글과 국화꽃 컵라면 등을 놓고 추모를 하고 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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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오후 5시 57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보수하던 19살 김아무개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값싼 외주 업체를 통해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보수하는 서울메트로 1~4호선 중 2호선에서만 벌써 세 번째(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 사고라고 합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이후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온종일 마음이 심란하고 서글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청년의 유가족이 넘겨받았다는 갈색 가방에 들어 있던 유품. 빡빡한 일정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청년이 잠시 틈이 나면 먹으려고 준비한 컵라면 한 개와 나무젓가락, 그리고 숟가락 한 개가 들어있더군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2003년 지하철에서 무가지 신문 배포 도우미를 할 때 길에서 라면을 먹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노동은 왜 하고 사는 것일까요? 사람답게 먹고, 최소한의 인간의 품위를 지켜가며 살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요?

지난 28일 오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아무개씨(19)의 소지품.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작업 공구 등이 들어있다.
 지난 28일 오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아무개씨(19)의 소지품.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작업 공구 등이 들어있다.
ⓒ 유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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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청년이 남긴 유품입니다.

컵라면과 숟가락을 보니 또다시 눈물이 납니다. 올 2월 졸업해 취업 7개월 차였다던 19살 앳된 청년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을'의 인생은 이렇게 허망하게 스러져도 되는 사회인 것일까요?

서울메트로 측은 청년의 과실이 있었다며 청년의 부모님에게 합의하자는 말을 꺼냈다고 하지요. 차마 눈 감지 못했을 푸른 청춘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입니다. 지난 5월 31일, 서울메트로는 뒤늦게 "이번 사고의 원인은 고인의 잘못이 아닌 관리와 시스템의 문제가 주원인"이라며 사과했습니다.

스크린도어 설치와 정비를 맡을 업체를 선정할 때 최저 입찰가의 값싼 외주 용역 업체를 선정하고, 사고 당일 김씨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서울메트로에서 도대체 누구의 과실을 논하겠다는 것인지요.
역사에 마련된 추모공간
▲ 구의역 추모의 공간 역사에 마련된 추모공간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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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강남역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시 열차 감시자를 동행해 2인1조로 출동하고, 출동 사실을 역무실과 전자운영실로 통보하라는 매뉴얼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30~50건의 고장 신고가 접수됩니다. 고작 6명이 지하철 49개 역을 담당하는 구조에서 2인 1조 출동이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가장 값싼 외주 업체를 사용하면서 관리 감독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서울메트로가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고 당시 구의역에 근무하던 역무원은 수리하러 작업자가 왔다는 말만 듣고 현장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았으면서 사실 확인조차 안 한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 아니던가요? 매뉴얼은 전혀 소용이 없었던 셈입니다. 외주업체를 쓰는 서울메트로의 인명 피해가 잦습니다. 반면 정식 직원을 채용하고 2인 1조 작업 규정을 지키며 보수 공사에 참여한다는 5~8호선은 지난 2012년 이후 스크린도어 수리로 인한 인명 사고가 단 한 건도 없다고 합니다.

마음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구의역에 가봤습니다. 청년들이 와서 메모를 붙이고 국화꽃을 놓으며 추모하더군요. 한 청년이 컵라면을 가지고 와 메모와 함께 놓고 갔습니다.

그대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가 구조가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이번 사고를 통해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던 송경동 시인의 절규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나라 전체가 여전히 세월호 속에서 침몰 중입니다. 열아홉 청춘, 기억하시나요? 스크린도어에 끼어 숨진 열아홉 청년이 세월호가 수장시킨 단원고 아이들과 같은 나이라는 사실을요.

세월호로 희생된 아이들이 살아있었더라면 올해 2월 졸업을 했을 겁니다. 구의역에서 희생된 청년은 올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 7개월 차인 새내기 하청업체 노동자였습니다. 책임감 강한 맏이였던 그 청년은 임금 144만 원에서 동생에게 용돈도 주고 지난 1월부터 한 달에 100만 원씩 적금을 부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의 호소문을 옮깁니다. (관련 기사 :"산산조각 난 아이에게 죄 뒤집어 씌웠다")

"우리 아이를 기르면서 책임감 있고 반듯하라고 가르쳤다. 우리 아이 잘못 큰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둘째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책임감 있고 반듯하게 키우지 않겠다. 책임자 지시를 잘 따르면 개죽음만 남는다. 산산조각 난 아이에게 죄를 다 뒤집어 씌웠다. 둘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첫째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미칠 듯이 후회된다.

우리 아이 겉모습은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착한 아이였다. 그 나이에도 엄마에 뽀뽀하며 힘내라고 말하는 곰살맞은 아이였다. 대학을 포기하고 공고를 가며 돈을 벌겠다고 스스로 선택했다. 장남으로 책임감으로 공고를 가서는 우선 취업해 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대학은 나중에 가겠다고 했다."

어쩌면 이리 세월호와 닮았을까요. '선생님과 어른들 말 잘 듣고 가만히 있으라' 가르침 받았던 아이들이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스크린 도어의 문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스크린 도어에 쓰인 문구 스크린 도어의 문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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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도어에는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고객을 쾌적하고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희생당한 19살 청년도 분명 서울메트로의 고객이었을 것입니다. 고객으로, 또 노동자로, 인간으로 대접받아야 했습니다. 고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서울메트로는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서울메트로는 유사한 사고를 두 번이나 겪고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또다시 사고를 불렀습니다. 우리가 세월호를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대한민국 전체가 세월호에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침몰 중인 세월호를 탈출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잊지 맙시다. 제가 구의역 사고 현장 스크린 도어에 노란 리본과 함께 아래와 같은 메모를 붙여 둔 이유입니다.

세월호를 잊었나요?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세상이
19살 청년을 희생시켰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같은 나이입니다.

사회가 만든 죽음입니다.
▲ 그 청년은 19살 청년이었습니다. 사회가 만든 죽음입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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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구의역 청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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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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