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3 : 화성에서 온 소녀>  영화 포스터

▲ <무서운 이야기 3 : 화성에서 온 소녀> 영화 포스터 ⓒ 수필름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는 한국 영화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여고괴담> 시리즈와 <고사> 시리즈가 몰락해 한국 공포 영화가 위축되고 있는 지금, <무서운 이야기>는 시리즈로 명맥을 잇고 있다.

<무서운 이야기>는 한국영화아카데미 3D 영화와 인권 영화 <시선> 시리즈처럼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제작했던 <신촌 좀비 만화>(2014)와 <방 안의 코끼리>(2015)는 3D 기술 발전을,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영화 프로젝트인 <시선> 시리즈는 다양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몇 개의 에피소드와 그것을 하나로 잇는 브릿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는 기존의 공포 영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재를 찾으며 색다른 공포를 발굴한다.

<무서운 이야기>(2013)와 <무서운 이야기 2>(2013)에 이어 <무서운 이야기 3 : 화성에서 온 소녀>(아래 <무서운 이야기 3>)의 브리지 에피소드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는 단편들의 조합이라 시공간과 장르의 제한 없이 무한히 확장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장점을 설명한다.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부제를 단 이유에 대해선 "복수이면서 동시에 단수인 하나의 이야기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 첨언한다.

 먼 미래 어떤 행성에 불시착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는 <무서운 이야기3>

먼 미래 어떤 행성에 불시착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는 <무서운 이야기3> ⓒ 수필름


<무서운 이야기>에선 납치된 여고생이 납치범에게 시간을 벌기 위하여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무서운 이야기 2>는 보험회사의 창고에서 상사가 신입 사원에게 보험 사기가 의심되는 사건을 조사하라고 지시하며 기이한 사건을 풀어갔다. <무서운 이야기 3>은 머나먼 미래, 어떤 행성에 불시착한 소녀(김수안 분)가 기계(차지연 분)에 자신이 인간들을 피해 이곳으로 오게 된 사연을 말하면서 시작한다.

소녀가 기계에 들려주는 이야기로 펼쳐지는 <무서운 이야기 3>은 설화를 바탕으로 한 '여우골', 도시 괴담 '로드 레이지', 로봇이 주인공인 '기계령'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라는 시간대로 묶였던 전편들과 달리, <무서운 이야기 3>은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룬다. 다양한 시간대를 관통하는 전체 이야기의 주제는 '혐오'다. <무서운 이야기 3>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다른 존재들에게 얼마나 혐오스럽게 보일 수 있는지를 그리면서 인간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여우골'은 선비 이생(임슬옹 분)이 살아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여우골에 들어가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전설의 고향>을 연상케 하는 익숙한 설화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생과 "인간은 기생충"이라 쏘아붙이는 여우골의 백발노인(김종수 분)의 대립을 보여주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전설의 고향>에서 출발해 서구의 <환상특급>을 떠올리게 하는 서사로 과감히 도약하는 <여우골>의 연출을 맡은 백승빈 감독은 "이 이야기가 내가 알던 그 <전설의 고향>이 아니고, 저 여우가 내가 짐작하던 그 여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본다면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부연한다.

 설화를 다룬 단편 '여우골'은 과연 <전설의 고향>과 얼마나 같거나 다른가.

설화를 다룬 단편 '여우골'은 과연 <전설의 고향>과 얼마나 같거나 다른가. ⓒ 수필름


'로드레이지'는 연출을 맡은 김선 감독이 몇 년 전 겪었던 경험에서 기인한다. 그는 앞서 달리던 대형 화물 트럭이 10분여간 앞에서 길을 막은 적이 있었는데, "저기에 탄 운전사가 작정하고 쫓아온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경험은 한밤중 고속도로를 달리던 동근(박정민 분)과 수진(경수진 분) 앞에 끼어드는 수상한 덤프트럭의 이야기로 발전한다. 보복운전과 묻지마 살인의 공포가 배어 있는 '로드레이지'는 멈추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폭주를 겨냥한다. 쫓고 쫓기는 긴장감이 가득하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경수진의 연기는 몰입을 더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대결>(1971)의 영향이 짙기에 신선도는 떨어진다.

'기계령'은 버려진 로봇 둔코(이재인 분)가 주인이었던 예선(홍은희 분)과 진구(송성한 분)에게 한을 품고 돌아오는 이야기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로봇을 다루었던 영화 <에이 아이>(2001)에 '인형'을 살인귀로 삼았던 <분노의 인형들>(1986)이나 <사탄의 인형>(1988)을 붙인 느낌이다. 둔코가 다른 로봇(박솔로몬 분)의 몸으로 돌아와 "둔코는 진구의 영원한 친구입니다"라고 내뱉는 장면은 실로 오싹하다. 버려진 로봇이 원귀가 되어 인간에게 복수하는 '기계령'의 내용은 그 자체로 새롭다. 연출을 맡은 김곡 감독은 "인간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또 쉽게 버려지는 존재이기에 기계도 원한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기계령'은 새로운 것을 계속 원하면서 빨리 소비하고, 잊어가는 요즘 세태를 강하게 꼬집는다.

소녀가 기계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입장과 인간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갈린다. 영화 <숨바꼭질> <카트> <차이나타운> <협녀> <해어화> <부산행>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미래로 자리매김한 김수안과 뮤지컬에서 스크린으로 무대를 넓힌 차지연은 따뜻함과 차가움이란 상반된 연기 온도로 재미를 준다. 하지만 둘의 입으로 전해지는 인간과 기계의 입장이 피부에 닿지 않고 공허하게 메아리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서운 이야기 3>는 한국 공포 영화의 생태계를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한국 영화에서 매우 드문 SF란 씨앗을 과감히 공포 장르에 배양한 시도 역시 주목받아 마땅하다. <장례식의 멤버>란 걸출한 작품을 내놓았던 백승빈 감독과 한국 영화에서 가장 먼 지점에 도달한 <고갈>을 만든 영화 집단 '곡사'의 신작을 오랜만에 만난 사실도 기쁘다. 다음 <무서운 이야기>는 어떤 감독의 손길에서 다른 '무서움'을 지닌 흥미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벌써 기대된다.

<무서운 이야기 3 : 화성에서 온 소녀>  무서운 이야기의 다음 편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무서운 이야기 3 : 화성에서 온 소녀> 무서운 이야기의 다음 편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수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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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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