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국 독립영화는 두 번의 축제를 연다. 하나는 새로운 독립영화와 영화인들을 발굴하는 독립영화의 축제 '인디포럼', 또 하나는 한 해 동안 만들어진 독립영화를 결산하면서 독립영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서울독립영화제'가 그것이다.

물론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도 독립영화가 상영되지만 독립영화, 독립영화인들, 그리고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제대로 어울리는 멋진 '난장'은 이 두 영화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이 두 행사를 절대 빼놓지 않는다.

특히 올해 21년이 된 인디포럼은 수많은 영화인을 배출하며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한층 더 높인 영화제로 인식되고 있다. 때로는 재기발랄한, 때로는 심오한, 때로는 함께 생각할 화두를 제공하면서 또 때로는 희망의 웃음을 주는, 이제 막 독립영화에 발을 디딘 젊은 작가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영상에 펼쳐지는 축제가 바로 인디포럼이다.

올해도 인디포럼은 열렸다. 지난 26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오는 6월 2일까지 인디스페이스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지원 중단 문제로 인디스페이스의 존립이 또다시 위태로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적어도 지금은 젊은 독립영화들을 즐기고, 작가들과 함께 호흡하고, 축제를 즐기면 된다. 그리고 인디스페이스와 인디포럼, 독립영화에 박수를 보내고 함께 해주면 된다.

인디포럼은 개막작으로 이나연 감독의 다큐 <못, 함께하는>과 오정민 감독의 극영화 <연지>를 선정했다. 두 단편은 인디포럼이라는 새로운 축제의 장을 여는 데 결코 어색하지 않은, 재미와 여운을 준 작품이었다.

빠지지 않는 못, 카톡방에서 만나는 가족들

 이나연 감독의 <못, 함께하는>은 전등을 갈려는 한 여자를 소재로 삼았다.

이나연 감독의 <못, 함께하는>은 전등을 갈려는 한 여자를 소재로 삼았다. ⓒ 인디포럼




전등을 갈아끼우려는 한 여자, 그러나 못이 빠지지 않는다. 결국 옛 전등은 새 전등에 그대로 매달리고 못도 빠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자리에 누워도 계속 들리는 "카톡" 소리. 카톡엔 계속 사진과 글들이 올라온다.

<못, 함께하는>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이나연 감독의 상황이다. 처음엔 마치 '못을 빼기 위한' 한바탕 해프닝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이야기는 바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카톡방'으로 대화해야 하는 아버지와 세 딸로 넘어간다.

일로 바쁜 아버지, 혼자 사는 나연, 아빠의 새 여자친구와 그녀의 할머니, 함께 사는 동생 자연, 그리고 엄마가 새로 결혼한 남자와 함께 사는 막내 호선. 각자 떨어져 살다 보니 그들의 이야기는 자연히 '카톡방'을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카톡방의 정겨움과 달리, 직접 만나면 이들은 화목하지는 않다.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방황했던 자연, 엄마가 있는 전주를 떠나 서울에서 살고 싶어 하는 호선, 딸들과 함께 살고 싶어도 형편상 같이 살기 어려운 아버지는 살가운 대화를 잘 나누지 못한다. 진짜 가족은 카톡방에 모여 있다.

감독은 앞서 말한 '빠지지 않는 못'을 자신의 엄마와 연관시킨다. 빼고 싶지만 빼기 어렵고, 빼면 오히려 더 상처가 생길 것 같은 바로 그 못처럼, 엄마는 그런 존재다. '카톡방의 정겨움을 현실로 옮기는 것은 과연 빡센 걸까?'라는 감독의 생각은 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이자 화두다.

아이러니다. 흔히 우리는 '기계' 때문에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기계'는 가족을 만들어주려 하는데 정작 인간은 스스로 가족을 만드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래도 '가족'이 되려고 한다. 싸우기도 하고, 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보다 좋다.

<못, 함께하는>은 민감할 수도 있는 개인사를 소재로 하면서도 이야기를 부드럽게 풀어가며 관객을 집중시킨다. 보다 보면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지고 그러다 보면 영화가 32분 만에 끝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자막이 올라가고 나서도 절대 눈을 떼지 말 것.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가 흘러나오면서 영상에는 카톡 창이 나타나고 카톡 글이 올라온다. 나는 이 장면을 '심장이 잠시 철렁거렸다가 결국 미소를 지었고 마지막엔 박수를 치며' 보았다. 그 느낌을 꼭 같이 나누었으면 좋겠다.

혼자 남은 연지의 평범한 이야기에 시선이

 오정민 감독의 <연지>는 혼자 남은 15살 소녀 연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오정민 감독의 <연지>는 혼자 남은 15살 소녀 연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 인디포럼




어느 여름날, 생일을 맞은 15세 소녀 연지는 바닷가에 놀러 갈 준비를 한다. 친구들은 바닷가에서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엄마는 친구들과 먹을 김밥을 싸주고 저녁에 친구들과 같이 오라고 말한다.

홀로 도착한 바닷가. 그러나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연락해본다. 연지에게 날아온 것은 "우리 서울이야"란 답변. 그들은 연지를 조롱하는 카톡을 계속 보낸다. 그렇게 연지는 혼자가 된다.

<연지>는 얼핏 보면 평범한 영화다. 게다가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조금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연지>는 <못, 함께하는>처럼 관객을 집중하게 만든다. 바로 '혼자 있는 연지'에 계속 시선을 맞추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연지가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린 후 건널목을 건너는 장면이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서로 웃으면서 길을 간다. 그 상황에서 연지 혼자 길을 건너는 듯한 모습이다. 평범한 장면 같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혼자 된 연지의 심리를 제대로 보여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행동하는 연지. 다소 끊어지는 듯한 결말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여운이 남게 될 수 있다. 평범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그것을 인물의 심리에 대비시켜 비범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감독의 노력이 돋보인다.

인디포럼은 이처럼 새로운 시선의 젊은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작금의 영화 상황이 좋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영화를 꿈꾸고 그 꿈을 이루려는 젊은이들의 희망을 이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NBS 국민방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디포럼 독립영화 개막작 못,함께하는 연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