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빛가람은 축구계의 풍운아중 한 명이다. 한번 들어도 잊기 힘든 그의 이름만큼이나, 축구인생도 모두 남들보다 조금은 더 특별한 삶을 살았다.

다만 한동안 윤빛가람은 잊힌 이름이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화제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3일 발표한 스페인(6월 1일)과 체코(6월 5일)전에 나설 20명의 대표팀 명단 속에 윤빛가람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윤빛가람이 태극마크를 다시 달게 된 것은 2012년 9월 우즈베키스탄과의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이후 무려 3년 8개월 만이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로는 첫 대표팀 합류다.

이번 대표팀에는 이용-윤석영 등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선수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윤빛가람을 주목해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윤빛가람의 발탁 배경을 '구자철의 대체자'로 규정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구자철은 4-2-3-1 전술을 구사하는 슈틸리케호 부동의 주전이자, 올해 다소 부진했던 한국인 유럽파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시즌 내내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에는 시즌 말미 당한 부상으로 아깝게 합류가 불발됐다.

지목의 이유

 윤빛가람.

윤빛가람. ⓒ k 리그 홈페이지


이미 남태희-지동원 등 구자철의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는 대안들이 있음에도 유독 윤빛가람을 지목한 것은, 슈틸리케 감독이 그의 능력에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실제로 슈틸리케 감독은 윤빛가람을 K리그 제주 시절부터 주목해왔으며 그가 현재 활약 중인 중국 슈퍼리그 연변 FC의 경기도 여러 차례 관전하며 기량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사령탑으로 부임한 약 2년간 한국축구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수많은 선수들을 발굴하여 '슈카우터'라는 애칭을 얻을 만큼 선수 보는 안목을 인정받았다. 이정협, 김진현, 이재성, 권창훈 등 그가 발탁한 선수들은 처음엔 의문부호를 자아냈지만 결국은 하나같이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바 있다.

스페인-체코라는 유럽 강호들을 상대하는 이번 A매치 2연전은 슈틸리케호 출범 이후 가장 강한 상대들과의 대결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일찌감치 이번 2연전에서 최상의 전력을 꾸려서 당당히 정면승부 하겠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이번 대표팀에서는 평소 23인 엔트리보다 3명이나 더 줄인 20명만을 발탁한 것도, 새로운 선수점검이나 잉여 자원을 남기기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최상의 전력'을 2연전에 모두 투입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만큼 중요한 경기에서 부상에 빠진 주전급 자원의 대체자로 윤빛가람을 중용하겠다는 것은 선수에게는 특별한 기회인 셈이다.

윤빛가람은 흔히 한국형 플레이메이커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다. 유망주 시절부터 공격적인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정확한 슈팅과 창의적인 패스, 넓은 시야, 프리킥 능력 등을 두루 갖췄다. '제 2의 윤정환 혹은 최문식'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윤빛가람은 2007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이래, 연령대별 대표팀에서도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2011 호주 아시안컵을 거치며 주전급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윤빛가람과는 청소년대표부터 K리그 제주 시절까지 오랜 세월 끈끈한 인연을 이어온 박경훈 전 제주 감독도 "세계적인 선수가 될수 있을만한 재능을 지녔다"고 극찬한 일도 있다.

하지만 윤정환이나 최문식같은 플레이메이커형 선배들이 흔히 그러했듯, 윤빛가람의 경기스타일도 비슷한 이유로 종종 혹평을 들어야했다. 수비력과 활동량이 부족하다, 투지가 없다. 공을 예쁘게 차려고만 한다는 지적 등이 대표적이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도 어떤 전술적 성향의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윤빛가람의 가치는 극과 극이었다.

극과 극의 가치

한편으로 윤빛가람은 한국축구에서 '천재' 소리를 듣던 어린 유망주들이 흔히 그러했듯, 이른 나이부터 지나치게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손해를 본 측면도 많은 선수다.

윤빛가람이 처음 주목받던 U-17 월드컵 당시 그의 이름이 대중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K리그 비하 발언이었다. 당시 윤빛가람은 "K리그는 안 본다. 한국 선수 중 롤모델은 없다"는 발언으로 엄청난 구설수에 시달려야했다.

앞뒤 문맥을 다 짜르고 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선수의 경솔한 발언을 선정적으로 침소봉대한 언론의 영향으로 졸지에 윤빛가람은 건방진 문제아로 낙인찍혔고 프로에 데뷔하기도 전에 제 2의 이천수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 사건은 훗날 윤빛가람이 K리그에 데뷔한 이후에도 종종 회자되며 윤빛가람을 깎아내리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윤빛가람은 2010년 경남을 통하여 프로에 입단했다. 당시 경남에 이어 A대표팀에 이르기까지 끈끈한 인연을 맺었던 조광래 감독과 좋은 궁합을 이루며 상종가를 달렸다. 윤빛가람은 2010년 K리그 신인왕에 이어 2011년 상반기 '경남 유치원' 돌풍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대표팀에서도 2011년 호주 아시안컵 8강 이란 전에서 후반 조커로 출전하여 연장전에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당시 조광래호에서의 윤빛가람은 대표팀 중원을 책임지던 기성용-구자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선수였다. 경남과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 진출설까지 나오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1시즌이 끝나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남으로 이적하게 된 것을 기점으로 윤빛가람의 축구인생은 또한번 꼬이기 시작했다. 이적 이후 왠지 나사 빠진듯한 플레이가 계속되며 끝없는 부진으로 태업 의혹을 사기도 했으며, 그해 성남의 성적이 수직추락하면서 졸지에 윤빛가람은 팀 부진의 원흉으로 성남 팬들에게 단단히 미운 털이 박혔다. 윤빛가람은 2012년 런던올림픽 대표팀에서도 탈락하고 A대표팀에서도 점점 멀어졌다.

당시 신태용 성남 감독과 윤빛가람의 '멘탈'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신감독은 현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수석코치겸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이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운명이다.

환상 궁합 보일까

윤빛가람은 이후 2013년 청소년대표팀 시절부터의 스승인 박경훈 감독이 있는 제주로 이적하며 조금식 예전의 기량을 되찾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중국 슈퍼리그의 연변 푸더 FC로 이적하며 (유럽은 아니지만) 해외파의 반열에 접어들었다. 윤빛가람은 현재 한국인 박태하 감독이 이끄는 연변의 주전 미드필더이자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10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윤빛가람에 주목한 이유는 분명하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로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는 선수다. 찬스에 강하고 정교한 왼발 슈팅 능력도 수준급이다. 윤빛가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전술적으로 잘 녹여낼 수 있다면 일시적인 구자철의 대체자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권창훈이나 기성용의 경쟁자 혹은 대안이 될수도 있다.

윤빛가람도 어느덧 20대 중반의 성숙한 프로 선수가 됐다. 축구선수로서 이제 나이와 경험이 이제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고 정점을 향해 달려갈 시기다. 부침은 있었지만 윤빛가람은 아직 충분히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과의 만남이 윤빛가람의 못 다 한 잠재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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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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