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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명 경찰청장이 20일 서울 중구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열린 '학교 밖 청소년 발굴지원 강화를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20일 서울 중구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열린 '학교 밖 청소년 발굴지원 강화를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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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지방경찰청은 브리핑에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이 "정신질환(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범죄"라고 결론 내렸다. 그 다음 날, 강신명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경찰관이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정신병원을 거쳐 지자체에 신청해 '행정입원'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조현병, 과거의 이름은 정신분열증. 정신질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이 조현병에서 기원한다.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망상(사회적 통념상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생각)이나 환각(환청이나 환시 등, 가장 흔한 것은 환청이다)이 있다. 언어능력이 와해되거나 논리,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조현병의 평생 유병률은 전 인구의 1% 정도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이지만 우리나라 인구 전체의 1%면 약 50만 명 정도다. 그들의 가족을 포함한다면 200만 명 정도가 조현병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대략 셈할 수 있다.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질환자들은 소위 '사이코패스'라는 이름으로 미디어에 등장했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으로 종종 그려졌다. 미디어의 모습을 차치하고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나쁘고, 그들을 집단적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정신병원에나 가 봐라"라는 말은, '네 말이 매우 불합리하고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의 공격적 발언이다.

이번 강남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포함해,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나 악한 일이 발생하곤 한다. 23세의 무고한 여성이 범죄를 당해 생명을 잃은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리 애도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필자도 다시 한 번 지면을 빌어 애도의 뜻을 표현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힘든 일이 발생하면 책임자를 찾아내 원망을 전가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원망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는 것보다 남의 흠을 잡아내어 짐을 얹기가 훨씬 쉽고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회적으로 약하고 소수인 사람, 혹은 집단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책임과 분노를 정신질환자에 돌리는 경찰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의전화는 25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살해된 여성의 추모집회에 참석해 차별과 폭력을 말한 여성들의 사진이나 신상정보가 노출되고 이에 대한 악성 댓글 등이 이어지고 있다"며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의전화는 25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살해된 여성의 추모집회에 참석해 차별과 폭력을 말한 여성들의 사진이나 신상정보가 노출되고 이에 대한 악성 댓글 등이 이어지고 있다"며 주장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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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때문에 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경찰관이 발견하면 행정입원 시킬 방안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필자는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 재일조선인들을 몰아세워 학살한 만행이 생각났다. 그리고 청소년 사회에서 늘 문제가 되는 '왕따'에 대해서도 떠올랐다.

관동대지진 때 일본에서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로 인한 분노를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약자인 조선인에게 돌렸다. 청소년사회에서는, 억압된 집단생활의 스트레스와 폭력성을 가장 약한 이들에게 집중시키면서 그 분노를 해소하고 집단의 평화를 유지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안타까운 살인사건과 그로 인한 국민적 공포와 분노를 약자인 정신질환자들에게 전가하려 한다.

이번 일로 특히,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심해지고 정신적 문제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으려는 의지를 더욱 잃게 될까 두렵다. 정신질환자들은 소위 '정상적인'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구별되는, 나와는 전혀 관계없고 정신병원 입원실에 감금되어 있어야 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의 몸이 감기도 걸리고 여러 가지 통증이나 염증이 발생하듯, 마음에도 그러한 병리가 발생하고 겉보기에 어려움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여러 가지 정신적 아픔을 가질 수 있다. 우울할 수 있고, 강박적일 수 있으며, 갑자기 주변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리면 '나를 비웃는 게 아닌가' 하고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될 수 있고, 그들은 보호되어야 할 사람들이지 죄를 뒤집어쓰거나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다른 보도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듯, 이들이 일반인보다 범죄를 더 저지른다는 증거도 없다.

매스컴, 영화, 소설 등에서 정신질환자를 주로 난폭하고 위험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일반인과 비교해서 범죄율의 차이가 없고 더 폭력적이라는 증거도 없습니다. - 세브란스병원 건강칼럼

또 얘기하고 싶은 것은, '치안활동 중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행정입원' 조치하도록 하겠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과거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곳에서 정치적인 대립자나 특정 단체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을 정신질환의 탈을 씌워 감금했던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자에 책임을 돌리는 것 말고, 해야 할 일이 많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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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슬픈 일이 발생했다. 강남역 번화가는 필자도 소싯적에 자주 들리던 곳이고, 참변의 소식을 듣고는 간담이 서늘했다. 이 일의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다. 사회의 약자이자 소수인 정신질환자들에게 그 죄를 돌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보다는 무엇을 앞으로 해나가야 하는지를 더욱 의논해야 한다.

사회의 전반적인 '여성혐오'에 대한 원인을 찾고 시간을 두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범인 본인이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서" 살인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는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유교적인 남성 우위의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 시골도 아니고 강남역 한복판의 공중화장실이 분리가 안 된 공용화장실이었다는 것도  문제다. 화장실은 누구나 알겠지만 문을 닫고 들어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의 공간이 된다. 그 안에 악한 의도를 품은 범죄자가 있다면, 더구나 남녀공용 화장실이라면 너무나 쉽게 범죄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겠지만, 사회적 공포의 확산을 막고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적절한 처벌도 필요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신질환자들은 '나'나 '우리'로부터 동떨어진, 감금해야 할 잠재적 범죄자나 악마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혐오하고, 자신이 소위 '정상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책의 한 글귀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사실 자신의 정신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문제가 클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이 옆 사람을 정신병원에 보내놓고는 자신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병원까지 찾게 만든 원인임을 전혀 모르기 마련인 것이다. - 박은미 저,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2013, 소울메이트 출판사.


태그:#강남역 , #묻지마 살인사건, #여성혐오, #조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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