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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돌발적인 제안

사실 갈 마음을 먹지 않고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추모 열기가 뜨거워진다는데 나의 마음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서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줄어들었다는 건 아니다. 열기 고조와 존경심은 적어도 내겐 크게 관련이 있는 게 아니었다.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무현 7주기 추도식에 그래서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추도식 당일인 23일,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아내가 나에게 긴급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여보,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오늘 봉하에서 열리는 노무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에 다녀옵시다."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은 5월 25일이다. 이럴 때는 내적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는 결혼 25주년 기념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가 2박 3일 일정으로 대마도를 다녀오는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경비가 소요되는 대마도 여행에 비해 당일 치기 봉하마을 행은 얼마나 경제적인가.

노무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장에서의 우리 부부 아내는 결혼 25주년 기념일을 대신하여 노무현 대통령 7주기를 다녀오자고 했다. 아내의 의미 있는 제안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추도식이 끝나고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 노무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장에서의 우리 부부 아내는 결혼 25주년 기념일을 대신하여 노무현 대통령 7주기를 다녀오자고 했다. 아내의 의미 있는 제안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추도식이 끝나고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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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7주기 추도식'으로 대신한 결혼기념일

23일 ​오전 10시에 김천에서 출발했다. 11년, 30만km 넘게 굴린 승용차 조수석 쪽 유리창이 고장 나서 닫히지 않는 바람에 두 시간 반 동안 고속도로 위 온갖 매연을 마시면서 달려야 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마스크를 사서 입과 코를 가렸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피해로 치면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더 했을 테지만 그는 유구무언이었다.

낮 12시 30분에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물밀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너나없이 햇볕가리개용 노란색 종이모자를 쓰고 있었다. 오늘 점심은 권양숙 여사가 대접하는 것이라고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추모객들이 좌우 양쪽으로 길게 줄을 서야 했다. 대충 잡아 6000여 명이라고 했지만, 규모로 보아 그것 훨씬 이상인 것 같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날 참석한 추도객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날 참석한 추도객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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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으로 물결 치다

​그러니 음식의 양도 양이지만 점심을 준비하고 배급하는 자원봉사자의 숫자도 음식의 양에 비례해서 엄청 났다. 이들의 봉사는 밀려드는 추모객들 속에서도 결코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음식을 다량으로 준비하다 보면 마음 줄 데가 많아 정작 사람들에게 소홀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았다. 메뉴는 우거지국밥. 거기에 딸려 나온 것들이 김치, 수육, 풋고추, 수박이었으니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었다. 충분히 요기가 됐다.

상설무대가 있는 생태문화공원 잔디광장이 오늘의 추도식 장소. 식장까지 300m 대로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명예회복, 불법을 밥 먹듯 자행하는 대법관 소환, 선거 수개표 청원 등 10여 개 종류의 서명대가 마련돼 왜곡된 구조를 바꿀 것을 호소하면서 서명을 받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추도식이 예정돼 있었다. 30분 전인데도 3000여 개의 의자엔 빈자리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 주위에 무리를 지어 선 채로 함께 하고 있을 정도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 '임을 위한 행진곡'에 입 다문 정진석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공식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마친 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맨 오른쪽)가 입을 다문 채 이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공식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마친 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맨 오른쪽)가 입을 다문 채 이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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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

​아나운서 박혜진의 사회로 추모식이 시작됐다. 사회자가 각 정당 대표들을 중심으로 내빈 소개를 했다. 이어 노무현재단 이해찬 이사장이 묘역 건너편과 서울 중심지에 노무현기념관 건립 계획을 보고했다.

노무현재단 제1호 후원회원 최수경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멘토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식지 않는 그리움(최경미)과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유지인 통합의 정치(김원기)를 역설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회고했다.

유족을 대표해서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씨가 더운 날씨에도 먼 길 달려와 주신 추모객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중간에 가수 장필순이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라는 추모곡을 불러 식장의 분위기를 애절함으로 이끌었다.

또 "깨어 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추모 동영상을 보았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두 전직 대통령의 음성은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행동하는 양심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것은 7주기 추도식 주제이기도 했다.

식을 마치고 묘소로 옮겨 헌화 참배하는 순서를 가졌는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일대가 무척 혼잡했다. 유족과 재단 관련자들 그리고 정당 대표들이 먼저 참배했다. 거기엔 야당 대표들 외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포함돼 있었다. 협치는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자리에 함께 해 마음을 모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공식 추도식
에 수많은 추모객들이 참석해 노 전 대통령의 넋을 기리며 추모하고 있다.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공식 추도식에 수많은 추모객들이 참석해 노 전 대통령의 넋을 기리며 추모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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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먼저 생각한 대통령

​추모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전국 각지에서 이 많은 사람들을 스스로 오게 하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것은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했던 한 정치 지도자에 대한 그리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개인의 영달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당의 이익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진영 논리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에 앞서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정치 발전이라는 것. 그렇다면 노무현은 이 나라의 정치 발전을 위해 애쓴 대통령으로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상한 것보다 일이 빨리 진행되고 또 끝났다. 근처 친구에게 들려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노무현 7주기 추모식 참석으로 결혼기념일을 대신한 아내다. 거기에 가까운 친구 부부와 같이 식사까지 했으니 내용이 더 알찼다며 고마워 한다. 수년 째 잊고 그냥 넘기다가 올해 의미 있게 결혼기념일을 보냈다. 밤이 꽤 깊어져 있는 시각에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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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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