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들>중 한장면

<양치기들>중 한장면 ⓒ CGV아트하우스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은 의외로 강하다. 문제는 정작 당사자가 이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자신이 털어놓은 진심이 상대방을 어떻게 움직일지, 거짓말을 늘어놓는 와중에 누가 벼랑 끝에 서게될지 결코 알 수가 없다. 한번 뱉으면 끝이지만, 입 밖을 떠난 말은 이미 '내 것'이 아닌 채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말은,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는 건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영화 <양치기들>은 이러한 말의 '나비효과'를 다룬 작품이다.

과거 연극배우였던 완주(박종환 분)는 배우로서 빛을 보지 못한 채 역할대행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인물. 어느날 완주가 살고있는 동네에서 군대 선후임 관계였던 네 남자가 연루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한 여자가 그를 찾아온다. 죽은 남자의 엄마를 자처한 여자는 완주에게 '피해자가 용의자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았다'고 경찰에 증언해달라며 거액의 사례금을 제시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완주는 이를 수락하고 경찰서를 찾아가 거짓 진술을 하지만, 이후 석연찮은 점들을 발견하면서 점점 사건의 숨겨진 진실에 다가선다.

<양치기들>에서 완주가 각종 역할대행을 맡는 초반부 에피소드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 꿀리지 않으려는 한 여자의 애인 역할을 하고, "젊은 여자들과 놀고 싶다"는 40대 남자와 함께 나이트클럽에 간다. 의뢰인들은 타인의 시선이나 자신의 욕망에 매몰돼 기꺼이 자존감을 버리는데, 다분히 풍자적인 이 장면들에는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진다.

거짓 진술 이후, 완주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도 일종의 역할극처럼 보여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완주는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준호(이가섭 분)을 비롯해 사건 당일 함께 있었던 광석(송하준 분)과 동철(류준열 분), 영민(윤정일 분)을 각각 만난다. 이때 완주는 이전에 맡았던 어떤 역할대행보다도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경찰 수사를 연상시키는 말투로 상대방을 심문하거나, 실제로 경찰을 사칭하기도 하는 그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자신의 거짓말을 돌이키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연기)을 하게 되는 셈이다.

진범을 추적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수면 위에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은 완주의 내적 갈등과 맞물려 내내 긴장감을 자아낸다. <양치기들>이 스릴러 장르 영화로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이유다. 이에 비하면 후반부에 이르러 결국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과 인물들 간의 갈등은 오히려 단편적이어서 다소 맥이 빠진다. 범인과 목격자,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뒤섞인 네 사람의 관계와 입장 차이가 '양치기들'이란 제목과 맞닿아 있지만, 영화는 내내 완주의 시선에만 치중한다. 그러다 보니 사건이 지닌 본질과 당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점은 아쉽다. 6월 2일 개봉.

 영화 <양치기들> 공식 포스터.

영화 <양치기들> 공식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양치기들 역할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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