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자타공인 명불허전, 조드윅 그가 <헤드윅>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승우 그 이름 세 글자만의 무게로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그. 왜들 그렇게 그의 공연을 애타게 찾는지 궁금하다면, '조언니'의 포스를 직접 느껴보면 된다. 원작을 잘 알지 못하면, 인물들의 전사를 유추하기가 쉽지 않아 스토리가 명쾌하게 다가오지 못하는 게 <헤드윅>의 단점인데 조승우는 이 여백을 자신만의 애드리브와 연기로 메운다. 그는 영리한 배우이며, 관객을 위할 줄 아는 좋은 배우이다.

▲ 자타공인 명불허전, 조드윅 그가 <헤드윅>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승우 그 이름 세 글자만의 무게로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그. 왜들 그렇게 그의 공연을 애타게 찾는지 궁금하다면, '조언니'의 포스를 직접 느껴보면 된다. ⓒ 창작컴퍼니다


"나는 기억해. 두 개로 갈라진 후 너는 나를 보고 나는 너를 봤어. 네 영혼 끝없이 서린 그 슬픔. 그것은 바로 나의 슬픔. 그건 고통. 그건 사랑. 그래 우리는 다시 한몸이 되기 위해 서로를 사랑해. 그건 슬픈 얘기, 반쪽 되어 외로워진 우리 그 얘기." - 뮤지컬 <헤드윅> No.03 '오리진 오브 러브(Origin of Love)' 중에서

플라톤의 <향연>에서 따온 뮤지컬 <헤드윅> 넘버 '오리진 오브 러브'는 사랑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본래 하나였다고. 하나로서 완전했던 우리를 신이 경계하여 갈라놓았다고. 제우스는 번개 가위로 머리 두 개, 팔 네 개, 다리 네 개였던 햇님, 달님, 땅님의 아이를 쪼갰다. 우리는 그 잃어버린 반쪽을 만나 온전한 하나가 될 때,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건 내가 아니라, 너이다. 뮤지컬 <헤드윅> 속 헤드윅은 그 '너'를 찾아 평생을 헤맨 인물이다.

헤드윅의 탄생

자타공인 명불허전, 조드윅 그가 <헤드윅>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승우 그 이름 세 글자만의 무게로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그. 왜들 그렇게 그의 공연을 애타게 찾는지 궁금하다면, '조언니'의 포스를 직접 느껴보면 된다. 원작을 잘 알지 못하면, 인물들의 전사를 유추하기가 쉽지 않아 스토리가 명쾌하게 다가오지 못하는 게 <헤드윅>의 단점인데 조승우는 이 여백을 자신만의 애드리브와 연기로 메운다. 그는 영리한 배우이며, 관객을 위할 줄 아는 좋은 배우이다.

▲ 친절한 조언니 갈망은 상실에서 온다. 사랑이란 감정이 부재 혹은 부족에서 온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건 대체 무엇일까. 인물들의 전사를 유추하기가 쉽지 않아 스토리가 명쾌하게 다가오지 못하는 게 <헤드윅>의 단점인데 조승우는 이 여백을 자신만의 애드리브와 연기로 메운다. 그는 영리한 배우이며, 관객을 위할 줄 아는 좋은 배우이다. ⓒ 창작컴퍼니다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헤드윅>은 사랑에 관한 노래다. 그러나 헤드윅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다. 헤드윅이 평범하지 않으니까. 헤드윅의 본래 이름은 한셀. 베를린 장벽이 탄생하는 날 그가 태어났고, 우연히 동쪽에서 태어난 그는 억압된 공간에 갇혀있었다.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고, 버림받은 그에게 처음 손을 내민 건 미군인 루터였다.

미국은 자유를, 남근은 쾌락을 뜻했다. 루터가 건넨 달콤한 구미 베어에 취해서, 한셀은 루터가 자신의 반쪽인 줄 알았다. 그래서 성전환수술까지 감행한다. 그의 성기를 잘라내고 새롭게 만들어진 갈라진 틈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건 한셀 인생의 첫 생리였다. 그리고 마지막 생리였다. 틈은 막혔고, 6인치 페니스에서 5인치를 잘라내고 남은 1인치의 정체불명 살덩이만 남았다.

"운명의 수호천사 한눈팔 때, 내 성전환 수술은 개판 되고 잘려진 살덩이 흔적 남겨. 남은 건 앵그리 인치. 엄마가 만들어준 가짜 가슴, 애인이 만들어준 가짜 여권, 의사가 해준 가짜 전환수술. 원래 페니스가 있던 자리, 여자의 그것도 아닌 것이 일 인치 살덩이." - 뮤지컬 <헤드윅> No.04 '앵그리 인치(Angry Inch)' 중에서

미국으로 간 한셀에게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루터는 한셀을 버렸다. 한셀에게 남은 건 가짜 여권과 가짜 가슴 그리고 화가 난 1인치 살덩이뿐. 그 끔찍했던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한셀은 가발과 화장 그리고 록을 택한다. 헤드윅 탄생의 순간이다.

반쪽이 떠나갈 때

정통 로커의 힘, 윤드윅 2016 뮤지컬 <헤드윅>에 합류한 윤도현. 여러 뮤지컬에 도전해온 그이지만, 역시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본업에 가장 가까운 <헤드윅>에 합류할 때였다. 아직까지 연기에 있어서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지만, 노래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특히 커튼콜 때의 포스는 모든 헤드윅 중에서도 톱에 꼽을 정도이다.

▲ 정통 로커의 힘, 윤드윅 2016 뮤지컬 <헤드윅>에 합류한 윤도현. 여러 뮤지컬에 도전해온 그이지만, 역시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본업에 가장 가까운 <헤드윅>에 합류할 때였다. 아직까지 연기에 있어서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지만, 노래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특히 커튼콜 때의 포스는 모든 헤드윅 중에서도 톱에 꼽을 정도이다. ⓒ 창작컴퍼니다


헤드윅이 된 한셀은 밴드를 만들어 노래한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한 소년이 다가온다. 토미. 헤드윅은 토미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래서 음악을 가르쳐준다. 토미 역시 그런 헤드윅을 사랑한다. 아니 사랑했다. 둘이 입을 맞추다가 그 정체불명의 살덩이를 들키기 전까지는. 헤드윅은 자신의 일부인 그 살점마저 사랑해달라고 애원하지만, 토미는 그런 헤드윅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놀라서 토미는 도망가고, 헤드윅은 또 버림받았다.

더 울화통이 터지는 건, 토미가 아주 유명한 록스타가 됐다는 점이다. 헤드윅이 가르쳐준 덕분에 계발할 수 있었던 음악적 재능을 토대로, 헤드윅이 작곡한 노래를 마치 자신이 쓴 곡처럼 가장하고 다니면서 말이다. 헤드윅은 록스타가 된 토미를 쫓아다니며, 토미가 콘서트를 여는 그 근처 공연장을 빌려서 노래한다. 토미가 콘서트 때 혹여나 자기 얘기를 하는지 안 하는지 귀 기울여 듣고,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마치 토미가 쓴 곡인 양 소개할 때는 길길이 날뛴다.

매력 터지는 뽀드윅 역대 헤드윅 중 조정석의 헤드윅을 '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정석만의 '특별한' 헤드윅임은 분명하다. 조정석이 이해하고 토해내는 헤드윅에게는, 조정석만이 담아낼 수 있는 오묘한 마성이 있다. 조정석의 헤드윅을 오래오래 무대에서 보고 싶다.

▲ 토미를 연기하는 뽀드윅 우연히 재회한 헤드윅과 토미. 자동차에서의 밀회, 교통사고 그리고 모르쇠. 다시 만났을 때, 토미는 확실히 깨달았다. 헤드윅이 자신한테 어떤 존재인지. 역대 헤드윅 중 조정석의 헤드윅을 '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정석만의 '특별한' 헤드윅임은 분명하다. 조정석이 이해하고 토해내는 헤드윅에게는, 조정석만이 담아낼 수 있는 오묘한 마성이 있다. ⓒ 창작컴퍼니다


하지만 사실 토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헤드윅의 반쪽이 자신이고, 자신의 반쪽 역시 헤드윅임을. 그때는 너무 낯설어서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한 번도 헤드윅의 존재를 잊은 적이 없다. 그가 수많은 팬 앞에서 먼저 헤드윅의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헤드윅이 지어준 곡의 가사를 바꿔, 헤드윅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어디에선가 헤드윅이 분명히 듣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의 고백이 무대 위를 울린다.

"용서해요, 난 몰랐어. 나는 너보다 어린 아이였잖아. 너무나 크고 특별한 여자도 남자도 아닌 신비한 신의 창조물 같은 당신. 남김없이 모든 걸 주고 따뜻한 온기를 불어 차가운 도시를 녹인 아름다운 너." - 뮤지컬 <헤드윅> No.11 '위키드 리틀 타운(Wicked little town) Reprise' 중에서

토미의 노래를 들은 헤드윅은 드레스를 벗는다. 가슴 대용으로 달고 있던 토마토를 짓이겨 버리고, 맨몸으로 마이크 앞에 선다.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가발마저 벗어 던진 채. 그리고 자신을 향해 노래하는 반쪽, 토미가 있는 무대 쪽으로 향한다. 빛이 쏟아지는 문밖으로, 벌거벗은 상태로 걸어나간다.

가발을 벗다

문드윅, 깊이 있는 연기 대학로에서 탄탄하게 내공을 쌓아 온 정문성 배우가 이번 <헤드윅>에 함께했다. 정문성의 헤드윅에게는 정문성만의 깊이 있는 연기가 돋보인다. <캠퍼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전체가 느낄 수 있는 연기"를 한다.

▲ 문드윅, 깊이 있는 연기 대학로에서 탄탄하게 내공을 쌓아 온 정문성 배우가 이번 <헤드윅>에 함께했다. 정문성의 헤드윅에게는 정문성만의 깊이 있는 연기가 돋보인다. <캠퍼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전체가 느낄 수 있는 연기"를 한다. ⓒ 창작컴퍼니다


사실 헤드윅에게 가발은 피난처였다. 가발만 쓰면 "미인대회 여왕님"이자 "영화 속의 올린 머리 공주님"이 될 수 있었으니까. 토미가 그녀를 부르는 순간, 더는 가발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가발을 벗어 던지는 순간, 헤드윅은 진짜 헤드윅이 된다.

수술에 실패한 트랜스젠더였던 헤드윅은 그냥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동과 서, 속박과 자유, 남자와 여자, 위와 아래"에 있는 경계인이었다. 그가 걸어나가는 모습에 우리가 울컥하는 건, 사실 우리 모두 역시 경계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도 사랑하자. 혐오와 증오가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건 우리보다 약한 누군가에게 혐오를 퍼붓는 것이 아니라, 역시나 우리처럼 불완전한 반쪽을 안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나가 되어, 완전한 내가 되는 것이니까. 헤드윅처럼.

다섯 언니들의 <헤드윅> 포스터 지난 3월 1일,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헤드윅>의 폐막이 벌써 가까워오고 있다. 본래 오는 29일 막을 내릴 예정있던 <헤드윅>은 관객 성원에 힘입어 6월 5일까지 연장 공연에 들어선다. 6월 25일과 26일에는 경기도 수원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 다섯 언니들의 <헤드윅> 포스터 베를린 장벽은 혐오와 증오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 상징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헤드윅은 사랑이다. 지난 3월 1일,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헤드윅>의 폐막이 벌써 가까워오고 있다. 본래 오는 29일 막을 내릴 예정있던 <헤드윅>은 관객 성원에 힘입어 6월 5일까지 연장 공연에 들어선다. 6월 25일과 26일에는 경기도 수원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 창작컴퍼니다



뮤지컬 헤드윅 이츠학 경계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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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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