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흘간의 연휴에다 이틀간의 체육대회까지 겹친 탓에 5월 초에 치렀던 중간고사 성적표가 이제야 나왔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시험을 치를 때보다 성적표를 받아들 때가 더 긴장되는 순간이라 말한다. 시험 직후 정답이 공지되어 이미 가채점을 한 터라 제 성적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다들 점수가 또렷이 적힌 성적표를 받아들 때의 느낌은 그와는 또 다르다고 한다.

우선 아이들에게 보내는 건 과목별 채점 정오표다. 어떤 문제가 틀렸고, 잘못 마킹했는지를 자신의 시험지와 대조해보도록 확인시키는 절차다. 선다형 OMR 카드를 컴퓨터가 처리하는 방식이라 오류의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은 아이들이 부러 찾아와 확인한다. 자신의 시험지와 답안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일일이 맞춰보는 모습에선 절박함이 느껴진다.

"1등급 받기 틀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등급제를 실시하는 한국 교실에서 학생들은 '0점 대' 점수 차로 희비가 엇갈린다.
 등급제를 실시하는 한국 교실에서 학생들은 '0점 대' 점수 차로 희비가 엇갈린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열이면 열 다 결과에 수긍하며 잔뜩 풀이 죽은 채 되돌아가게 되지만, 사연마다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다 풀어놓고도 정작 답안지에 마킹하지 않은 아이도 있고, 어려운 문제를 나중에 풀겠다고 비워놓았다가 실수로 다음 문제부터 앞당겨 마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시간이 모자랐다며 맨 뒤 문항 몇 개를 그냥 같은 번호로 죽 그어버린 아이도 있다.

답안을 밀려 썼다는 한 아이는 순간 "1등급은 틀렸다"며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기도 했다. 불과 한두 문제 차이로 등급이 나뉘는 살벌한 내신 경쟁에서 그렇듯 사소한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부교과전형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 대학입시의 대세로 자리 잡은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에서도 내신 성적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 아이 앞에서 "찍어서 맞히는 것도, 실수하지 않는 것도 다 실력"이라고 나무라지만, 고개 숙인 아이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점수가 대체 뭐고, 등급이란 게 다 뭔가 싶은 생각도 든다. 달랑 한두 문제 차이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등급제가 과연 교육적으로 온당한 방식인지 의문이다. 교육이 쇠고기처럼 부위별로 가격 매기는 것도 아니고, 애초 '등급'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사실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점수보다는 석차와 동점자 수다. 등급이 결정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과목별로 1등급이 되려면 같은 계열에서 전체 석차 4% 이내에 들어야 한다. 석차나 동점자 수가 4% 비율을 넘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없다. 아무리 '물수능'이 대세라고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이 마냥 시험 문제를 쉽게 출제할 수 없는 이유다.

과목별로 1등급이 나오지 않으면 'SKY' 등 명문대 진학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시험 문제가 너무 쉬우면 불리하다고 느끼는 건 그래서다. 100점을 맞았다 해도 그 수가 많으면 1등급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대로라면 성취기준과 그에 따른 학습목표가 수업과 시험 출제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과 원칙 사이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점수보다 등급에 더 관심을 갖는 건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개중에는 공공연히 점수 따윈 볼 필요 없으니 과목별 등급과 석차 백분율이 표기된 성적표만 건네 달라고 말할 정도다. 교사들에겐 아이들과 상담을 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통계 자료다. 기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내신 관리와 수능 준비 등을 빼면 담임교사가 아이들과 만나 상담할 만한 꺼리가 딱히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의 과목별 성적표를 읽어내려 가다보면 '아까운'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과목 석차 백분율이 4.28로 1등급 턱밑에서 2등급으로 밀려나거나, 11.14로 11%까지 받게 되는 2등급을 놓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또, 아이들 스스로 성적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4, 5등급 이하 중하위권에서도 '조금만 더 분발했더라면' 싶은 사례가 여럿이다.

물론, 그 반대로 '천만다행'인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3.83로 간신히 1등급을 받거나 10.72로 2등급에 턱걸이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이도 있다. 아직 기말고사가 더 남았으니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겠지만, 그때도 아이들마다 다행과 안타까움이 뒤바뀔지언정 비슷한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4%, 11%와 같은 등급을 가르는 백분율 기준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3.83과 4.28, 10.72와 11.14는 그야말로 단 한 문제를 더 맞히고 틀린 차이다. 만약 이로 인해 대학입시와 미래의 삶이 결정된다고 한다면 아이들에겐 너무나 잔인한 일이 될 것이다. 더욱이 꽤나 벌어져 있는 4.28과 10.72는 같은 2등급으로 한데 묶이지만, 차이가 고작 0.42에 불과한 10.72와 11.14 사이를 두고 우열을 나눠 평가하는 건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다.

경쟁을 위한 공부, 재미있을 리 없지

교실풍경.
 교실풍경.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그런데도 소수점까지 따져 당락을 결정하던 과거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교사들이 여전히 많다. 대학 입시에서 내신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등급제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현행 9등급으로는 변별력이 없으니 조금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교사들도 더러 있다. 내신 무서운 줄 알아야 아이들이 수업 때 졸지 않는다면서.

"기말고사 때 조금만 더 노력하면 1등급을 받을 수 있겠다. 불과 0.몇 퍼센트 차이로 등급이 밀린다면 어디 억울해서 잠이 오겠니?"

실수로 답안을 밀려 쓴 걸 확인하고 울먹이는 아이에게 위로해준답시고 건넨 말이다. 그렇잖아도 해당 과목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될 테지만, 등급을 빌미 삼아 매질하듯 공부를 채근하는 내 모습이 순간 초라하게 느껴졌다. 밑도 끝도 없는 경쟁을 대놓고 부추기는 꼴이니 말이다. 그렇게 하는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고, 공부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다.

고백하건대, 학창시절 나 역시 요즘 아이들처럼 내신 성적에 목매달았고 천신만고 끝에 1등급을 받았지만, 정작 지금 그때 뭘 배웠는지 기억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오로지 1등급을 위해 무작정 열심히 공부했다는 기억뿐이다. 이따금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바로 어릴 적부터 초인적인 인내력을 시험해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 교육은 대학 입시와 맞물려 등급제라는 계량화된 수치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관찰한 뒤 기록한 행동발달상황이나 특기사항은 교사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며 백안시하는 것과 대조된다. 결국 이는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들 스스로의 성찰을 방해하고, 무조건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맹목적인 동기 부여만 횡행하도록 조장하게 된다.

대학 입시에 종속된 채 전가의 보도처럼 등급제에 매몰된 인문계 고등학교의 평가 방식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수업권과 함께 평가권을 온전히 교사에게 돌려주는 것이 우리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첫걸음이라고 한다면, 이는 시급하고도 절실한 문제다. 예컨대, 모든 교과목에 합불 방식이나 초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서술식 평가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흔히 교육에서 우열을 가리려는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선다형 '객관식'보다는 서술형 '주관식'이 더 어울리는 영역이다. 답안을 밀려 쓴 아이의 성적표를 다시 들여다보니, 그의 이름 바로 옆에 적혀있는 등급을 나타내는 아라비아 숫자가 유난히 매몰차게 느껴진다.


태그:#내신 등급제, #서술식 평가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