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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 '제주 아파트값, 허탈한 웃음만'에서 이어집니다.)

운전문화는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서울에서 살면서 나를 제일 불편하게 했던 건 다름 아닌 운전이었다.

학창 시절만 해도 자동차 잡지를 정기구독하며 하루라도 빨리 나만의 차를 갖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운전에 어려움을 느낀 이유는 서울의 도로사정과 사람들의 운전습관이라는 것이 숨 막히도록 치열하고 답답한 직장과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놨기 때문이다.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사방팔방 꽉꽉 막혀있는 도로에 갇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자리에 주차하려고 머리부터 디밀어 보지만 결국은 얼마 못 가고 제자리인 모습. 그러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면 꽉 막힌 시내에서 쌓인 울분을 토하듯 광란의 질주를 하는 모습. 행여 그 앞에 누구라도 끼어들면 멀쩡한 사람의 입에서 욕설과 폭력부터 튀어나오는 모습.

희뿌연 스모그, 꽉 막힌 도로, 그동안 잘 버틴 내게 상이라도 주고 싶다
 희뿌연 스모그, 꽉 막힌 도로, 그동안 잘 버틴 내게 상이라도 주고 싶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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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에 지쳐 나는 서른이 될 때까지 아예 운전면허증조차 따지 않고(정확히 말하면 수송병으로 근무하며 따놓은 군대 운전면허를 갱신하지 않고) 내 차를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후 차가 없으므로 인해 생기는 결정적인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차를 구입했지만 1년 평균 운행거리가 1000km를 넘기지 않을 정도로 되도록 운전을 멀리했다.

하지만 제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꼽으라면 그중 운전이 꽤나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이 비단 풍광이 좋은 곳을 드라이브하는 즐거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목적지를 정한 후 내 차를 몰고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운전'이라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제주에서의 운전에 '서두름'이란 없다. 포화상태에 달한 제주공항 부근 도로의 번잡함을 제외하면(이것은 화물청사에서 오일장으로 이어지는 우회도로가 완공되기 전까지 계속될 문제일 듯하다) 제주도민들의 차는 서두르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멈추지 않고, 그렇다고 과속하지도 않고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그 상쾌함은 내가 제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성산이나 표선에 볼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지나치는 녹산로
 성산이나 표선에 볼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지나치는 녹산로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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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운전문화가 서울사람들의 생활습관과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듯 제주의 운전문화 역시 그들을 온전히 닮아있다.

처음 제주에 집을 계약 후 이런저런 하자들이 발생해 관리소장님과 현장소장님, 관련 기술자분 등 제주 토박이분들에게 하자보수 요청을 할 일이 많았다. 도시에서의 잘 짜여진 고객응대 프로세스에 익숙한 내게 그들과의 대화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단 무슨 요청을 해도 '안 된다' 혹은 '싫다'고 하는 법이 거의 없다. 1차 대답은 거의 대부분 "알았다"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도대체 언제 올 것이냐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저 "알았으니 가겠다, 다만 언제 갈지는 나도 모른다"가 일반적인 반응이다.

방문하시기 전 꼭 연락을 달라고 해도 도통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대부분은 일단 문 앞에 와서 벨을 누른 후 사람이 없으면 그제야 전화를 하는 게 보통이다. 어떤 경우에는 하자보수를 요청한지 근 한 달 만에 담당 기술자 분이 방문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어 그냥 돌아갔단다. 그런데 육지를 왔다갔다 하는 분이라 다음 방문 예정일은 며느리도 모른단다.

처음에는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꽤나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느끼곤 했지만 이제는 이런 제주만의 불편함이 오랫동안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 제주의 고객 응대 프로세스가 도시의 그것처럼 편리해질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제주의 운전문화가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서울의 그것과 똑같아졌음을 의미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건거를 못타는 사람도 한번쯤 도전욕구가 불끈 솟는 가파도의 해안 자전거 도로
 자건거를 못타는 사람도 한번쯤 도전욕구가 불끈 솟는 가파도의 해안 자전거 도로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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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만의 불편함... 오랫동안 지속됐으면

아침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 얼마 전에 새로 오픈 한 커피숍의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도 마실 겸 동네 산책에 나섰다. 분명히 시작은 동네 산책이었건만 이유로 모르고 바쁘게 움직이던 서울 물이 아직 덜 빠진 탓인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고, 주변의 풍경보다는 발 밑만 쳐다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등교를 하던 중 잠자리에 흥미가 생겼는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손등에 잠자리를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리고 있던 아이가 꾸벅 인사를 한다. 물론 나는 그 아이를 모르고, 그 아이도 나를 처음 볼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아저씨이자 어른이고,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한다고 배웠으니 인사를 한 것이다.

가장 낮은 섬,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와 산방산의 모습은 언제봐도 이채롭다
 가장 낮은 섬,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와 산방산의 모습은 언제봐도 이채롭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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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도시인들이 그러하듯 서울에서 같은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내게 이것은 제주의 운전문화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제주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됐다.

그동안 내 가족, 내 친구, 내 지인이 아니면 철저히 타인으로 생각하고 외면해왔지만 이제 내 눈앞에 넘어져서 울고 있는 동네 꼬맹이가 있다면 안아서 일으켜주고 그 부모님을 찾아주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행동이 그 분들에게 친절함으로 받아들여질지, 혹은 '육지것'의 되도 않는 오지랖으로 여겨질지는 몰라도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제주도의 느긋함과 순박함으로 인한 불편함이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그 불편함이야말로 내가 제주로 이민 온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태그:#제주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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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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