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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관련 여론 수렴을 위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이 열리는 지난 2015년 8월 9일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죄수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관련 여론 수렴을 위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이 열리는 지난 2015년 8월 9일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죄수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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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은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날이다. 한국엠네스티에 따르면 현재(2016년 4월) 대한민국의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수감된 인원이 54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자유권위원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권고 받고 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 군대가 가지는 인권적인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군대에 들어가서도 각종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윤 일병 사건, 임 병장 사건, 오 대위 사건 등이다. 은밀히 또는 명백하게 가해지는 폭력, 군기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각종 가혹행위가 현역입대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군대는 외부인에게도, 내부인에게도 인권이란 단어를 보장해주고 있지 않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그저 재판부가 내리는 기계적 형량(1년6개월)을 받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몸의 구속을 선택함으로써 제 양심을 지키고 있다. 헌법 스스로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는 자들은 헌법이 아닌 병역법 위반으로 징벌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병역을 수행하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 또한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어느 어르신의 말마따나 '참으면 윤 일병이 되고,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되는 곳'이다. 징집에 응하지 않아도 벌을 받고, 징집에 응해도 지옥 같은 인권침해를 버텨내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 도대체 국가와 안보의 이름으로 수많은 개인을 억압하는 제도적, 문화적 문제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막스 베버(Max Weber)는 근대 국가의 주요한 요소로 '폭력의 독점'을 손에 꼽았다. 국가가 폭력 행위의 유일한 실행자임을 자처하고 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 근대적 국가의 탄생과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단지 모든 사적 폭력을 공적인 폭력으로 대체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폭력이 민주적 정당성이 있다고 보고 국가가 폭력의 독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폭력의 민주주의적 정당성이라 뭔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회피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안보와 군대라는 철옹성에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단어를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성인 남성을 군대와 전쟁에 동원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응하는 것은 첫 번째 법률로서 징병이 강제되는 것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그 강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세 번째로 그 인정이 정부의 수호가 아니라 가족으로 표상되는 한계점이 있지만, 외적 폭력으로부터 민간인의 보호라는 이유가 정당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 국가의 징병제의 정당성은 '시민이 시민을 보호한다'는 것에서 나온다.

대한민국 군대가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민주공화국의 군대로서 존재의 이유가 나올 수 있다. 간략하게라도 두 가지 주제 군내 인권강화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도가 왜 정당한 요구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적으로 군대의 구성원의 대다수는 '징집에 응한 시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군인에서도 인권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군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폭력은 사기를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에라도 금지하고 막아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계급과 군기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행하는 가혹행위이자 폭력이기 때문에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없어져야 할 일이다.

군인권센터라는 시민단체가 많은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군 형법이라든지 군 내부의 여러 제도들은 군이라는 특수성을 앞세워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군형법과 내부 제도들은 군의 특수성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지, 군의 특수성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라면 시민의 보편적 권리가 인정되는 내부적 제도와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두 번째로 국방의 의무는 시민을 보호하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있으며,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군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군대임을 천명하고 있다. 시민을 보호하는 것에는 다양한 역할이 있다. 대규모 재난재해에 군대가 투입되는 이유가 바로 시민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투입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거대한 재해, 재난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도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빈곤과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들, 물리적 보호를 요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들을 보호하는 일을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복무자가 수행하는 것은 어떤가? 단지 국방의 의무가 전선에서 총을 드는 것만 있다고 생각하는 관료전문가들의 협소한 견해를 벗어난다면 사회가, 국가가, 정부가 사회적 약자인 시민을 보호하는 것도 국방의 의무로 충분히 볼 수 있다.

시민이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의 이념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 군대는 70여 년의 역사에 이르는 동안 민간인 학살의혹, 1만6천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매년 수백명으로 추정되는 가혹한 인권침해피해자를 양산하고, 두 번의 쿠데타에 연루되었다. 그리고 양심적병역거부자의 날 이후에 다가오는 기념일인 518광주민중항쟁에서는 시민들을 폭압적으로 진압했다.

그 뿐인가? 장성들을 위한 골프장에서는 수백억 원을 쓰고, 일선의 병사들에게는 부실한 생존 및 전투장비를 지급하는 등 이래서는 군대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시민들에게 납득되지 않는다. 징병제의 의미가 단순한 병력동원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시민의 연대라는 차원에서 징병제의 의미를 새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민징병제라는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당성이 나오며 저 높으신 분들은 병사들을 소모품으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에 대한 제도설계와 사회적 동의도 확산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은 하나다. 군대를 가지 않으면 배신자, 매국노라는 멍에를 지고, 군대를 간다면 단지 소모품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가기 싫어하지만, 남이 안 가면 미워하는 곳 그곳이 대한민국 군대다. 왜냐고? 거기에는 인권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기 때문이다.

현역입대자들이 자조적으로 말하는 '빈민징병제'가 아닌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자랑스러운 국방의 의무이행을 위해서라도 구성원들의 인권강화와 대체복무자 도입이 시급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장지혁 시민기자는 대구참여연대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태그:#인권, #군, #대체복무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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