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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순 볕 좋은 어느날 오후 창밖으로 멀리 백운산을 바라보며 이미 쓴 원고를 가다듬고 있는데 손 전화 진동이 울렸다.

"선생니임! 저 정애예요."
"정애? 김정애? 이정애?"
"김정애예요. 왜 1980년 수학여행 가서 선생님이 저를 업어주셨잖아요."

그 말에 나는 금세 그의 얼굴과 그때 일들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래, 김정애!"
"선생님, 찾아뵙고 싶어요."
"고맙다. 전화만으로도."
"아니에요. 선생님. 선생님이 저를 업어줄 때는 날씬했는데 지금은 많이 뚱뚱해졌어요. 저 뚱뚱해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정수(남편)씨가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대로 같이 찾아뵐게요."
"꼭 만나고 싶다면 너희는 바쁜 사람이니까 시간이 많은 내가 서울로 갈게."
"아니에요. 선생님. 저희가 마땅히 찾아봬야지요."

이런저런 추억담 끝에 그는 신랑 이정수와 5월 12일 내가 사는 원주로 오기로 약속했다.

방학에 수학여행을 갔던 이유

이정수 김정애, 그들은 동창들 사이에서 금실 좋은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행복하단다.
 이정수 김정애, 그들은 동창들 사이에서 금실 좋은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행복하단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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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화가 나를 추억의 세계로 이끌었다. 1980년 여름방학 중에 우리학교(이대부고) 2학년 학생들은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하필 방학 중에 수학여행을 간 사연은 이랬다.

그 무렵 이대부고는 남녀공학 학교로 1학년 네 학급 240명 학생의 자그마한 학교였다. 하지만 남녀공학에다가, 남녀가 반까지 함께 쓴다는 점이 그 당시로선 특이했던 점이다.

나는 1976년 이 학교에 부임했다. 이전 학교와는 달리 여러 모로 이상적인 학교였다. 정말 학생들을 위한, 학생을 존중하는 학교로서, 다양한 교내 행사는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소질과 적성을 발굴케 했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 신입생 환영 구기대회, 합창경연대회, 등산소풍, 생활훈련, 부활절 예배 등의 교내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한 행사가 끝나면 이 학교 최대 축제인 10월 24일 유엔의 날에 치러지는 '모의올림픽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이대부중·고 전교생을 6대 주로 나눠 출전케 하여 이대 대운동장에서 치러지는 이 모의 올림픽대회는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들까지도 참여하는 큰 잔치였다.

그 행사가 끝나면 연말 마무리 겸 성탄예배로, 학교는 1년 내내 크고 작은 행사가 줄을 이었다. 그러자 밖에서 이대부고는 공부는 하지 않고 '노는 학교'라는 비판이 들리기도 했다.

1980년에 부임한 제6대 정식영 교장선생님은 취임 일성으로 교내 전 행사를 대폭 정비한바, 모든 교내 행사는 수업시간과 수업일수를 침해하지 않는 교과시간 내 이루어지게 특단의 긴급조치를 내렸다. 그러자 학생회와 교사들의 학년 담임회에서 일부 행사의 부활을 끊임없이 건의했지만 교장선생님의 방침은 요지부동이었다.

1980년 그해 나는 2학년 2반 담임을 했는데 어느 하루 용감하게 교장실로 갔다.

"교장 선생님 갑자기 학교행사를 대폭 폐지하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마치 숨통을 조인 것처럼 매우 힘들어 합니다. 저희 2학년 가을 수학여행만은 허락해 주십시오."

"안 됩니다. 수업일수를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수학여행도 수업의 연장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기는 모든 학교 행사가 수업의 연장이지요."

그 순간 나는 묘안이 떠올랐다.

"그럼 수업일수는 침해치 않고 수학여행을 가겠습니다."
"네?"
"여름방학 중에 가겠습니다."
"…."
"개학 3일 전에 수학여행을 가면 수업일수도 침해하지 않습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던 교장 선생님은 마침내 입을 여셨다.
"박 선생이 책임지고 갔다 오시오."

한 여학생을 업다

그래서 그해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의 설악산 수학여행이 성사되었다. 그때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통한 산과 바다 등 대자연에 대한 감상보다 여행 중 특히 밤 행사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들은 여행 중 두 밤에 있을 행사 준비로 여름방학 중에도 등교하여 준비를 했다. 조별 장기 대회, 촌극대회, 미스유니버스대회 등과 행사 피날레인 포크댄스 등으로 주객이 전도된 수학여행이기도 했다.

그해 수학 여행 첫날 행사는 조별 촌극 및 미스 유니버스대회로 밤 10시 무렵에야 끝났다. 숙소 아래층은 여학생, 위층은 남학생으로 분류하여 취침을 시켰지만 학생들은 잠자려고 수학여행을 왔느냐며 밤새 노는 바람에 교사들조차도 거의 뜬 눈으로 지샜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궂은비가 쏟아졌다. 오전 비가 잠시 그친 틈에 설악산 비룡폭포를 등반한 뒤, 오후에는 계속 비가 내려 울산바위 등반 계획 중, 계조암(흔들바위)까지만 오르기로 했다. 우산이나 우의를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 계조암에 오르자 갑자기 또 폭우가 쏟아졌다. 잠시 비를 피한 뒤 하산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심한 오한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그새 비를 흠뻑 맞아 입술이 파랬다. 아마도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데다가 오전 등산으로 지친 듯했다.

그는 내 반 학생은 아니었지만 등에 업었다. 다행히 그는 몸집이 가벼웠다. 그의 담임선생님이 뒤따르면서 서로 교대하여 우리 두 사람은 설악산 소공원 평지까지 그를 업고 내려왔다.

다행히 이튿날은 날씨가 화창하여 여정대로 전 코스를 답사한 뒤 무사히 귀가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해단식을 하자 남학생들이 몰려와 나를 번쩍 들어 헹가래를 쳤다. 하지만 나는 그 일로 한 사흘 종아리 근육통을 앓았다. 아무튼 악천후 속에 강행한 수학여행이었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온, 참 즐거웠던 수학여행이었다.

제자 둘, 잉꼬부부로 나타나다

이정수 김정애 부부가 학창시절을 얘기하고 있다.
 이정수 김정애 부부가 학창시절을 얘기하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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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오전 11시 30분, 내가 원주공항 버스정류장에 내리자 그가 달려와 나를 껴안았다. 이어 그의 남편 이정수도 나를 껴안았다. 그들 부부는 고1때 한 반이었던 급우였다.

"선생님, 미안해요. 늦게 찾아봬서 죄송해요."
"아니다. 그동안 열심히 사느라고 그랬을 테지."
"늘 마음에는 있었지만... 이제 딸이 대학생이 되자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사실 제 딸은 바이올린을 전공하는데 그동안 저는 딸의 로드맨 역할을 했거든요."
"이제라도 찾아줘서 고맙다. 너희를 만난 지가 어느덧 36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찾아준 것만으로도."

우리 세 사람은 신록이 눈부시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만발한 강원 산골 속살을 헤집고 둔내로 가서 한 밥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그런 다음 내가 6년 남짓 살았던 안흥산골 마을로 가서 안흥찐방을 사먹은 뒤 거기서 가까운 자작나무숲미술관에 가서 차담을 나눴다.

"너희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됐니?"

남편 정수가 말했다.

"제가 중학교 졸업 후 수술 후유증으로 고교 입학이 두 달 늦었습니다. 5월에야 등교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운동장에 있는 한 여학생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한, 온몸이 오싹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여학생 스커트의 빛깔을 보니까 같은 고1이었어요(그때 여학생 스커트는 체크무늬로 학년마다 색깔이 달렸음).

그런데 그 여학생이 다행히 우리 반에 있었어요. 고1생활훈련 때 처음으로 손을 잡게 되었고... 고1가을부터 10년 동안 거의 날마다 제가 정애네 집까지 바래다주었어요(그들은 같은 대학교를 다녔다). 그때부터 이제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는 정애와 살고 있습니다."

그 말에 이어 그의 아내 김정애가 말했다.

"제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은 지난 26년 동안 시부모를 모시고 산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아 재차 확인했다.

"정말입니다. 두 분은 평생 큰소리 한 번 없이 사시고, 손자 손녀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십니다. 이즈음 시아버지는 분당에서 저희와 같이 사시며 친손녀를 돌보아 주시고, 시어머님은 대구에서 외손녀를 돌보아주십니다. 제가 모시는 시아버님은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한 분으로 하루하루 일과가 시계 시침과 같은 분이십니다."

마지막 만남일 것 같아, 정장을 입다

30여 년 만에 이정수 김정애 부부를 만나다( 자작나무숲 미술관).
 30여 년 만에 이정수 김정애 부부를 만나다( 자작나무숲 미술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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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 부부와의 만남을 앞두고, 우선 옷장의 양복을 세탁소에 맡겼다. 아무래도 그들과 마지막 만남일 것 같은 예감에서였다. 그의 방문 선물로 내가 강원도 안흥산골에서 고양이와 살았던 이야기를 쓴 <카사, 그리고 나> 산문집을 꺼낸 후 속지에다가 만년필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일필휘지로 썼다.

그 책을 그들 부부에게 건네자 정수가 말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부부가 직장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지요."

내가 군말로 부부 해로의 비결은 '한 눈만 뜨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저는 정애씨를 처음 만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날 남편 정수의 눈길에서도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들 부부에게 내 말은 그야말로 골동품 같았기에 그만 입을 닫았다. 정애가 말했다.

"선생님 정장을 하신 모습이 좋아요."
"어쩌면 오늘 너희와의 만남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그랬다."
"선생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내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더 늙으면 내 편에서 만남을 거부할 거다. 그건 나의 자존심이다."

그들 부부가 헤어진 뒤 3시간 후 내 손전화에 문자가 왔다.

"선생님, 오늘 하루도 수학여행 때처럼 즐겁고, 신나는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맑은 날들이기를 기도합니다! 저희 안전 귀가했습니다. 정수·정애 올림."


태그:#스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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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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