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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풍경
 교실 풍경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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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노동계에서는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고 있고, 교육계에는 성과상여금(성과급) 차등지급률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12일 교육부는 최고 S등급과 최저 B등급 교사 간 금액 차이를 168만 원(차등지급율 기존 50% → 70%)으로 확대하는 '교육공무원 성과상여금 지급지침'을 전국 교육청에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또한 성과급을 재분배하여 똑같이 나누어 가지는 교원은 '파면'에 이르는 중징계를 하도록 공무원징계령을 개정하고, 이런 학교에는 성과급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한다.

사실 교사들에게 교원 성과급은 모욕과 분열의 아이콘이다. 최고 등급인 S등급 교사가 자랑스럽지도 않으며, 최저 등급인 B등급 교사가 반성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교원 성과급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성과급을 모욕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로 인한 교직사회 분열을 우려한다. 박근혜 정부의 교원성과급 확대를 전교조뿐 아니라 보수적 교원단체인 교총마저도 기피하는 이유이다.

어떤 기준으로 교사를 평가할 건가?

교육부 건물.
 교육부 건물.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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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성적, 출석률, 진학률, 수업 시간, 공문 수, 여론조사... 무엇으로 교사를 평가할 건가? 교사들이 차등성과급을 반대하는 것은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의 본질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은 본질적 특성상 너무나 많은 변수로 인하여 과정이 결과로 직접 연결되지도 않고, 또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때가 많다.

1년이라는 단기간의 교육 과정으로는 교육의 성과가 제대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1년 단위로 교원의 성과를 평가하여, 임금을 차등으로 지급한다는 발상에 찬성하는 교사들은 거의 없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성과급이라는 제도를 찬성하는 극소수의 교사들도 '무엇으로 교육의 성과를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에서 결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은 학생의 성적(향상률을 포함하여), 출석률, 상급학교 진학률, 교사가 처리한 공문의 숫자, 그리고 교사나 학생, 학부모의 여론조사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 평가 지표가 될 수 없다.

학생 성적은 교사 요인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교육학의 기초 중의 기초이고, 학생 출석률 역시 교사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처리한 공문서의 숫자로 평가하자니 공문 처리가 교사의 교육 활동의 중심 영역도 아니며, 또 공문 하나하나의 난이도를 따지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등 여러 맹점이 있다.

그렇다고 동료교사나 학생, 학부모의 여론조사로 등급을 매기는 것도 교육적이지도 않으며 동의할 수도 없는 평가 방식이다. 또, 영어 선생님과 음악 선생님은 어떻게 비교 평가할 것인가? 결국 교사의 열정이나 교사의 능력을 점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표와 판사 성과급의 교훈

2002 월드컵, 미국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오노 액션 세리모니를 하는 안정환 선수
 2002 월드컵, 미국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오노 액션 세리모니를 하는 안정환 선수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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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온 국민을 즐겁게 했던 월드컵 4강 진출 때 선수들의 성과급 지급 방침이 논란이 되었다. 축구협회는 선수들의 출전 시간, 공헌도 등을 따져서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려 했다.

선수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반발했다. 전 경기를 뛴 선수이든,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한 선수이든 23명은 모두 한 팀에서, 똑같이 고생한 동료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것이다. 연습하고 훈련받으면서 함께 울고 웃었는데, 누구는 1등급이고, 누구는 3등급으로 나누는 것도 문제거니와, 이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 선수가 모든 선수들을 불러모아서 "똑같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선수들이 직접 똑같이 나눠 가지자"는 제안을 했고, 누구 하나 이 제안에 반대하는 선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축구협회도 항복하여 성과급을 모든 선수들에게 똑같이 지급해야 했다.

이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함께 고생한 선수들을 챙기는 선수들의 의리와 동료의식에 박수를 보냈으며, 반대로 성과급 차등 지급 방침을 세웠던 축구협회를 비난했다.

그나마 스포츠는 교육보다 훨씬 더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쉬운 영역이다. 그런 스포츠에서도 선수들이 성과급을 똑같이 나누어 가지기로 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데, 교사들에게 등급을 나누어서 성과급을 차등지급한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비슷한 사례가 판사들에게도 있었다. 2008년 판사들에게도 성과급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되기로 결정되었다. 문제는 판사들의 성과를 어떻게 등급으로 매길 것인가였다.

재판 건수를 기준으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죄 선고율(형사사건)과 기각율(민사사건)을 기준으로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판사의 등급 평가를 재판이 아닌 다른 것으로 한다는 것은 더 이상하다.

대법원은 결국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되 판사의 성과를 나누는 기준을 '직급'과 '근무 연수'로 정했다. 결국 판사들의 성과급은 직책과 근무 연수에 따른 '보너스'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이런 대법원의 결정을 쉽게 비난할 수 없다. 그만큼 판사의 재판을 평가하여 등급을 매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재판이 판사의 양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처럼 교육도 교사의 양심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재판 결과로 판사의 성과에 등급을 매기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교육 결과로 교사의 성과에 등급을 매기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판사의 성과급이 직급과 근무연수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교사의 성과급 역시 직급과 근무 연수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맞다.

교원 차등성과급제... 그렇게 좋으면 정치권부터 하시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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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진행된 20대 총선거에서 '총선교육연석회의'는 각 정당에게 교육정책 제안서를 보냈다. 여러 항목 중 교원 성과급제와 교원평가 제도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것이 있었다.

교원 차등성과급제의 폐지에 대해서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주요 야당이 모두 찬성하고 오로지 새누리당만 반대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을 제외한 정당들이 성과급 차등 지급을 반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총선 패배 이후에도 오히려 교원성과급 차등폭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좋은 제도면 박근혜 대통령과 이준식 교육부 장관, 그리고 국회의원들부터 차등성과급을 도입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은 2억1200만 원, 장관은 1억2천만 원, 20대 국회의원은 1억38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 대통령부터 국민들로부터 직무평가를 해서, 예를 들어 국민 지지율이 50% 이하면 연봉의 절반을 반납하고, 30% 이하는 아예 연봉 전액을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민이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뭐라고 말할까?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인 이준식 장관을 비롯하여 장관급 공무원들도 모두 직무평가를 하여 1등부터 꼴찌까지 등수를 매겨 국민에게 공개하고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는 것은 왜 안 할까? 300명 국회의원들도 득표수나 지지율, 법안 발의 수 등에 따라서 성과 평가하여 성과급을 차등지급하자는 국회의원은 왜 없을까?

교사들의 직무 성과에 꼭 등수를 매기고 차등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해야겠다면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들, 그리고 국회의원부터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스승의 날, 최고의 사기 진작 방안은 따로 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의 한 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 일부이다.

"올해도 S등급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동료들의 시선에 불안할 것이고, B를 받게 되는 사람들은 **을 읊조리며 S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겠지. 균등분배의 전통이 널리 퍼진 곳은 좀 덜하려나?

스승의 날이다. 대통령부터 교육부 장관, 그리고 시도교육감까지 스승의 날을 축하한다며 교사들에게 편지를 쓰고, 축하 인사를 한다. 교사들의 사기 진작 방안이랍시고 이것저것 또 정책을 발표한다. 그러나 교사들은 솔직히 스승의 날을 축하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특히, 올해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고 발표된 교원성과급 차등 폭 확대, 성과급 균등분배 교원 파면 방침을 보면서 교사들은 씁쓸함을 느낀다. 교사들의 등급을 매겨 돈 몇 푼으로 차등하겠다는 것도 싫은데, 똑같이 성과급을 나누겠다는 교사들을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파면하여 교단에서 쫓아내겠다는 방침에 분노가 치민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배우는 것이 교육이라면,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들끼리의 협력은 살아있는 교육 실천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교사들끼리의 이 소중한 협력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성과급이라는 괴물로 교사에게 모욕감을 주고, 교단을 분열시키고 있다.

단언컨대 교사들에게 차등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사기진작 방안이 아니라 사기를 저하하는 정책이다. 2016년 스승의 날에 교사들이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은 카네이션 100송이가 아니다. 제자들이 불러주는 백번의 스승의 날 노래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교원성과급을 폐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교사들에게 최고의 스승의 날 선물이자 최고의 교원 사기 진작책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김행수 시민기자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태그:#교원성과급, #스승의 날, #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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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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