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미인>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나요? 이미 폐지된 프로그램이지만 방송 내용의 일부를 편집한 자료가 '렛미인 레전드 모음' 등의 이름으로 지금도 SNS에서 돌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다시 편성해 달라는 요구 또한 여전히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렛미인>은 '못생긴' 외모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 뒤 성형외과 의사들이 총출동해 여성을 '미녀'로 탈바꿈시키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여성은 수술 후 몰라보게 달라진 자신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울음을 터트립니다. 여성의 부모님도 울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MC들도 방청객도 웁니다. 전과 달리 당당한 태도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여성의 스토리는 여느 '불우이웃 돕기'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인간승리'의 드라마와 비슷합니다.

 SNS에서 돌고 있는 <렛미인> 방송 캡쳐 중 일부.

SNS에서 돌고 있는 <렛미인> 방송 캡쳐 중 일부. ⓒ 스토리온


외모지상주의로 외모지상주의를 치료하다?

그러나 <렛미인>은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인 여성을 '구제'하기 위해 외모지상주의적 기준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외모를 여성에게 제공합니다. 이는 그 여성을 괴롭혀 온 것이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라 여성의 '못생긴' 외모 그 자체라는 진단에서 나온 해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여성에게 가해진 멸시와 혐오의 책임이 오롯이 해당 여성에게 있다는 편리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렛미인>의 메시지는 '인간승리'가 아니라 '사회 부적응자에 대한 교정'이 됩니다. 외모지상주의는 이미 충분히 사회적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언뜻 보기에 <렛미인> 출연 여성은 결핍된 것이 채워져 한층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못생긴' 외모로 살던 시절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라는 위치에 있었던 그 여성은 '아름다운' 외모로 변한 뒤에도 여전히 피해자로 남게 됩니다. 외모지상주의는 '못생긴' 여성을 배제하고 소외시키지만 '아름다운' 여성은 성적으로 대상화된 이미지를 통해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즉 '아름다운' 외모는 외모지상주의적 착취의 또 다른 시작점이 됩니다. <렛미인> 출연 여성은 달라진 외모가 주는 행복과 함께 '성형괴물'이라는 비아냥, 남성들의 크고 작은 성추행과 끈적한 시선, 성적인 의도가 다분한 찬양을 감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방송에선 결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렛미인> 방송 캡쳐.

<렛미인> 방송 캡쳐. ⓒ 스토리온


<렛미인>은 남성을 위한 '외모지상주의 판타지'

<렛미인>의 가장 의미심장한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삶을 살아온 여성에게 <렛미인>은 지극히 외모지상주의적인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럼으로써 해당 여성을 끝끝내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로 존재하도록 합니다. 애초에 이 모든 판은 누가 짰을까요?

여성을 사람으로 대하기 전에 오직 외모로만 값을 매기는 외모지상주의, 그리고 외모지상주의를 통해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렛미인>이라는 프로그램. 여성을 외모지상주의로 옭아매기 위해 만들어진 정교한 덫과도 같은 이런 일련의 과정은 과연 누가 기획했을까요?

<렛미인>은 출연자도 여성이고 MC들도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여성이며 방청객도 시청자도 주로 여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방송 내내 화면 속 여성들을 좇고 있는 시선은 다름 아닌 '남성'의 시선입니다. '못생긴' 여성을 소환해 '연민'의 대상으로 만든 다음 사회적으로 더 '비싼' 값이 매겨지는 외모로 개조한 뒤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이끌어 내는 과정은 남성들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가부장적 권력을 사용해 여성들을 '외모로만 평가받는 대상 혹은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해 온 역사와 매우 흡사합니다.

따라서 <렛미인>은 여성의 이야기처럼 포장되지만 알고 보면 남성을 위한 외모지상주의 판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청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남성의 외모지상주의적 시선으로 여성을 보는 데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형외과를 위한 광고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렛미인>

성형외과를 위한 광고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렛미인> ⓒ 스토리온


외모지상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다행히도 <렛미인>은 지난해 시즌 5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습니다. <렛미인>을 두고 '수술 협찬 성형외과를 위한 광고 방송'이라 꾸준히 비판해 온 여성단체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는 지금도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얼굴과 몸을 집요하게 핥고 있습니다. 여성을 향한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 역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성의 기준에 철저히 복무하는 외모지상주의가 존재하는 한, 여성은 '아름답다'고 인정받든 '추하다'고 여겨지든 똑같이 외모지상주의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기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남성이 설정해 놓은 기준들을 의도적으로 허물어트리는 것 말고는 없을 텐데, 물론 이는 궁극적으로 남성들이 틀어쥔 가부장적 권력과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렛미인 외모지상주의 성형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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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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