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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오후(현지시각) 테헤란 밀라드 타워에서 '한-이란 문화공감' 공연과 'K-Culture' 전시를 관람한 뒤 행사장을 떠나며 이란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알리 자나티 문화이슬람지도부 장관. 오른쪽은 에브테카르 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오후(현지시각) 테헤란 밀라드 타워에서 '한-이란 문화공감' 공연과 'K-Culture' 전시를 관람한 뒤 행사장을 떠나며 이란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알리 자나티 문화이슬람지도부 장관. 오른쪽은 에브테카르 부통령.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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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을 국빈 방문한 박 대통령이 연일 화제다. 방문 첫날 박 대통령의 '히잡' 착용이 누리꾼의 관심을 불러 모으더니, 다음날은 사상 최대 규모의 '세일즈 외교'를 선보이며 화제의 중심에 우뚝 섰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인 이란으로부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 것도 주목을 받았지만, 그보다 더 강조된 부분은 '경제적 성과'다.

청와대는 2일(현지시각) 오전 박 대통령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30개 프로젝트에서 총 6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42조 원(최대 52조 원) 규모의 경제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관련 사실은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됐다. 대다수 언론은 박 대통령이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적 성과를 달성했다며 치켜세우는 기사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철도, 공항, 수자원 관리, 석유, 가스, 병원,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MOU 및 가계약이 체결되었고, 이를 통해 최대 52조원 규모의 '잭팟'이 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1년 전과 너무 비슷해... 중동 특수의 실체, 불분명하다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딘가 모르게 대단히 낯이 익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불과 1년 사이에 두 번이나 똑같이 반복되는 장면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이 정도면 '싱크로율' 99%에 가깝다. 시기와 방문국가, 수주액만 다를 뿐 대통령과 청와대의 멘트, 그리고 이를 기막히게 포장하는 언론의 찬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이 너무나 똑같다.

박 대통령의 중동 지역 순방은 이번이 두번째다. 그는 지난 2015년 3월 1일부터 7박 9일간의 일정으로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UEA, 카타르를 차례로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에너지, 원전 건설, 플랜트, 투자, 보건 의료, ICT, 건설 인프라 협력, 교육, 농업,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 협력을 통해 양국 관계가 증진되고, 동반 성장 잠재력 역시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은 정부의 발표를 모국의 국민들에게 곧이곧대로 전달해 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현지시각) 쿠웨이트 국제공항에 도착해 알-이브라힘 왕실부 국왕자문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현지시각) 쿠웨이트 국제공항에 도착해 알-이브라힘 왕실부 국왕자문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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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가 중동순방길에서 각국과 체결한 수주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특히 쿠웨이트 국왕과의 정상회담 직후에 발표된 수주액은 이번에 이란과 체결한 1단계 사업의 수주액과 동일한 약 42조 원이었다. 정부는 양국간의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교통 협력 MOU 체결 등을 통해 우리 기업의 수주가 기대되는 사업은 모두 381억 달러(약 41조9595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액만 놓고 보자면 당시 쿠웨이트와 맺은 수주액은 이란과 맺은 수주액과 맞먹는다.

박 대통령은 중동 순방 이후 중동예찬론자가 되어 돌아왔다. 가는 곳마다 '제2의 중동 붐'을 일으켜 경제위기 극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악으로 치닫던 청년 실업 문제 역시 중동진출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각종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당시 정부와 언론이 경쟁하듯 토해냈던 수많은 청사진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냐는 거다. 중동 산업 재편이 '하늘의 메시지'라 극찬했던 중동 특수의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박 대통령의 이란 순방 성과를 깎아내리려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부와 언론이 발표한 내용의 실체를 따져보려는 것이다. 철도 계약 53억 달러, 고속도로 건설 10억 달러, 플랜트 공사 20억 달러, 해저 파이프 라인 프로젝트 15억 달러, 수력 발전소 건설 19억 달러 등, 제시되는 금액의 크기만으로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양해각서에 불과한 MOU와 확정되지 않는 가계약이 대부분인 박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론, '숫자'에 매몰된 보도 하면 안 돼

게다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와 언론의 태도다. 언론이 정부가 말하는 '조' 단위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다면 저 숫자는 왜곡되거나 악용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오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는 이를 입증하는 명징한 사례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MOU 96건 중 본 계약으로 이어진 것은 16건에 불과했다.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란에서 체결한 MOU 66건이 실제 얼마나 52조 원의 경제 성과로 이어질지 의문스러운 이유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의 성과를 '뻥튀기'하는 데 집착했고, 언론은 이를 열심히 받아 적기에 급급했다. 현 정부와 언론의 태도는 이명박 정부 당시와 전혀 차이가 없다. 정부는 의미 없는 숫자의 홍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고, 많은 언론들이 정부의 강력한 확성기를 자처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 정부와 언론이 홍보하는 숫자는 박 대통령과 정부의 치적을 위한 도구일 뿐 대다수 서민들의 삶과는 별다른 연관이 없다. 마치 각종 거시경제지표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딴나라 이야기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숫자에 매몰되다 보면 본질은 휘발된다. 우리가 정부와 언론이 남발하고 있는 숫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태그:#박근혜 이란 방문, #MOU 양해 각서, #박근혜 제2의 중동붐, #이란 방문 경제적 효과, #이란 방문 효과 뻥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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