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는 지난 1일자 <한겨레> 칼럼 '언론도 소통합시다'를 통해 관성에 젖은 행태를 꼬집는다. 강 교수는 "각자 당파성에 기인해 반대 정당이 압승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캠페인성 기사를 양산해 내거나, 각 정치 세력과 정치인들의 유불리나 이해득실을 분석하는 일에만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고 지적한다. 독자가 그런 기사를 좋아한다며 독자의 뒤에 숨지만, 결국 "싸움과 당파성을 파는 상인에 불과"하다는 게 요지이다. "당장 여기서"라는 목전의 사태에만 집중하느라 10대 재벌 사내 보유금 분석 같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소통'의 방식을 놓치고 있다고 통탄한다.

그렇다면 강 교수가 주장하는 '소통 불능'에 빠진 언론이, 스스로를 '언로의 죽음'에서 구제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 가능성을 지난 3일 방영된 <시사기획 창>이 보여준다.

샅샅이 훑어 본 19대 정치 자금 보고서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마련된 정치자금, 하지만 상당수 국회의원은 이 정치자금을 자신들의 쌈짓돈으로 쓰는 데 급급했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마련된 정치자금, 하지만 상당수 국회의원은 이 정치자금을 자신들의 쌈짓돈으로 쓰는 데 급급했다. ⓒ KBS


외람되게도 2016년 정치 개혁을 내건 이 다큐는, 이제 새롭게 열릴 20대 국회가 아니라 조만간 폐업할 19대 국회를 조망한다.

<시사 기획 창>(아래 <창>) 탐사팀은 지난 4년간 19대 국회의원들이 쓴 정치자금 1448억 원을 탐구대상으로 삼는다. 국회의원은 한 명당 1년에 1억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엔 최대 3억 원의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다. 지난 4년간 19대 국회의원 292명이 쓴 정치자금 내역서인, '정치자금 수입 지출 보고서'를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 지난 3개월에 걸쳐 5만3000여 페이지, 52만4000여 건의 정치자금 내역을 데이터화하여 분석했다.

도대체 이런 긴 시간을 들인 정치자금 분석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건 다큐의 내용을 통해 명확해 진다.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한다. 국회에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실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십시일반 모아진 돈이 정치자금이다. 그래서 정치 자금은 국민의 의혹을 살 일이 없이 공명정대하게 운영되어야 하고, 사적인 혹은 부당한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창>을 통해 살펴본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사용 내역은 웃프다. 가깝게는 자신의 아들과 딸, 혹은 아내 등 가족들이 벌이는 사업을 돕기 위해 사용된다. 멀리는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빵집에서 빵을 사고, 새로 산 와이셔츠와 넥타이 값에 동창회비까지 정치 자금으로 유용된다. 심지어 과속 벌칙금까지 이 돈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엄연히 정치자금법을 통해 사용될 수 없다고 명시된 동창회비까지 버젓이 정치 자금으로 낸다. 이런 국회의원이 292명의 19대 국회의원 중 204명이나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부적절한 사용 내역에 대해 제작진이 문의를 하면, 그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응이 여야를 막론하고 똑같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같이 '몰랐다'거나, '실수'이거나, 해당 관계자의 업무가 '미숙'해서라고 답을 하는지…. 국회의원들만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의 정치자금을 감독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는 탐사보도팀이 데이터화한 내용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다. 아니 뒤늦게라도 알게 된다 하더라도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거나, 취해진다 해도 '경고' 등의 말뿐이다. 이제 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는 해인 19대 국회의원의 자금 문제가 이제서 밝혀지고 경고를 받는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사후 약방문, 20대 국회의 개혁 방향을 제시하다

 <시사기획 창>은 왜 20대 국회 개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19대 국회를 파헤쳤을까?

<시사기획 창>은 왜 20대 국회 개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19대 국회를 파헤쳤을까? ⓒ KBS


그런데 왜 뒤늦게라도 19대 국회의원의 정치자금을 들여다보아야 했을까? 19대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사용 내역을 통해, 20대 국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고비용'의 정치자금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치자금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국회의원과 일부 언론들은 현재의 정치 자금이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한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이상적 제도가 결국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만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국회의원 한 사람이 쓰는 세비는 한 달에 1000만 원이 넘는다. 사무실, 보좌관 심지어 집기 사용에 필요한 비용까지 국가가 지원해준다. 영국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사물실을 운영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과는 완연히 다른 형편이다.

무엇보다 정치 선진국이라 하는 영국은 2009년 정치 자금과 관련된 스캔들 이후, 국민들이 국회의원의 정치자금을 감시할 수 있도록 각 국회의원이 쓴 자금들이 상시적으로 공개된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쓴 자금을 데이터화 하여, 국회 내 윤리위원회에 제출하고 이 윤리 위원회는 이를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하여 감시를 일상화한다.

이런 제도라면, 주차하기 편하다는 핑계로 대부분의 만남을 호텔에서 하는 '갑질' 행태도 사라질 것이다. 4년 동안 쓴 자금을, 차기 국회의원 선거 관리에 정신이 없는 선관위에 보고하는 형식이라면 '눈 가리고 아웅'의 행태가 얼마든지 방조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다큐는 지적한다.

19대 국회의원 정치자금 보고서를 통해 <창>이 말하고자 하는 건 20대 국회의원의 활동 방향이자, 고비용 정치자금을 종용하는 현재의 구조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갑질' 행태가 문제가 되자,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세비를 비롯한 항목을 삭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여타 정치적 사안이 등장하자, 세비 삭감은 어느새 없었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런 몰지각한 행태가 여야를 막론하고 벌어지고 있지만, 현재의 국회 관습, 국회법, 그리고 선관위법 하에서는 이러한 관행을 없앨 수 없다고 <창>은 지적한다.

결국, 정치 개혁의 시작은 지금껏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갔던 '정치자금'에 대한 새로운 입법, 즉 '봉사'하는 존재로서의 국회의원에 대한 새로운 규정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3개월에 걸친 정치자금 보고서 분석은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사 기획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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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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