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영화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난 한 달 동안 극장을 찾은 수많은 관객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4월 최대 기대작으로 주목받은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은 개봉하자마자 침몰을 시작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간이탈자> <날, 보러와요> <해어화> 등 한국영화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교적 괜찮은 평을 받은 <클로버필드 10번지> <독수리 에디> <라스트 홈> <트럼보>가 있긴 했지만 이들은 또 다른 시련과 마주해야 했다. 충분한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하고 박스오피스 하위권에 처박히고 만 것이다.

이런 부침 속에서 4월 최고 흥행작 자리는 지난 2월 17일 개봉한 <주토피아>가 차지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다 지난달 27일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개봉하자 이 영화가 최고 흥행작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다. 2016년 한국 극장가에서 이변이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 법이다.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영화긴 하지만 한 영화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상영관에 걸려있는 모습이란 꽤나 괴기하지 않은가. 단 한 곳의 상영관도 간절한 수많은 영화는 언제까지 이를 감내해야 하는가.

다가오는 5월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대항군의 싸움이 될 것이다. 과연 어느 영화가 마블 대작의 아성을 위협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푸른달 10편의 기대작을 꼽아본다.

[하나]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젊은 감독 조성희의 신작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 5월 4일 개봉한다.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돋보이는 시작을 알린 조성희 감독은 2012년 박보영과 송중기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은 <늑대소년>으로 자신의 재능을 입증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청춘스타 이제훈과 함께 찍어낸 신작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지 주목하는 눈길이 적지 않다. 조성희와 이제훈의 만남이라면 성취는 예견된 것과도 같다. 중요한 건 얼마만한 성취인가 하는 것이다.

[둘] <맨 앤 치킨>


덴마크를 대표하는 배우 매즈 미켈슨의 출연작이다. 스릴러물의 주인공 이미지가 강한 매즈 미켈슨이 코미디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부터 기대되는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유전적 생부를 찾아 좌충우돌의 여정을 떠나는 형제의 이야기가 관객의 가슴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전주국제영화제 공식초청작으로 5월 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셋] <45년 후>


결혼 45주년을 맞은 단란한 부부에게 날아든 한 통의 편지. 남편의 첫사랑이 알프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것. 그 날 이후 이들의 관계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도대체 이들에게 지난 45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제65회 베를린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휩쓴 <45년 후>는 데이비드 콘스탄틴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절제된 연출 속에서 탄탄한 각본과 빛나는 연기가 일품으로 평가받았다. 한 해를 통틀어 이 같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요즘과 같은 비틀린 극장가의 지형 가운데선 더욱 그렇다. 알았다면 5일, 극장으로 가라.

[넷] <곡성>


기다리고 기다렸던 나홍진 감독이 5월 12일 돌아온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찍어내는 나홍진 감독의 신작은 그의 팬들에겐 감로수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황해> 이후 무려 6년 만에 내놓은 영화 <곡성>에서 나 감독은 특유의 미스터리, 스릴러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쳤을 게 분명하다. 곽도원, 황정민, 쿠니무라 준, 천우희 등 출연진 역시 어느 때보다 알차다.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완벽을 기했다는 평은 익히 알려진 나홍진 감독의 성격과 맞물려 설득력을 갖는다. 누군가의 5년이 고스란히 투과된 작품을 얼마되지 않는 돈에 앉아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과분하다.

[다섯] <클랜>


아르헨티나 영화를 본 적이 있나? 없다면 지금이 기회다. 5월 12일 개봉하는 <클랜>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재능있는 연출자 파블로 트라페로의 신작이다. 80년대 초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충격적 실화를 더욱 충격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다. 성실한 부모와 사랑스러운 자녀들, 평범하고 단란한 푸치오 일곱식구의 비밀이 108분의 러닝타임 동안 낱낱이 까발려진다.

이 영화로 파블로 트라페로는 제72회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하다.

[여섯] <싱 스트리트>


<원스> <비긴 어게인>을 만든 존 카니 감독의 신작이 오는 19일 개봉한다. 음악영화라는 흔치 않은 장르에서 신뢰할 만한 브랜드로 자리잡은 존 카니의 작품이란 점에서 <싱 스트리트>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존 카니가 연주하는 건 청춘의 특권과도 같은 매혹적인 순간들이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학생들이 밴드를 결성하고 그로부터 사랑과 우정, 도전의 짜릿한 드라마를 써나가는 모습을 영화 한 편에 고스란히 녹였다. 존 카니와 같은 검증된 연출자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장르로 찍어낸 작품이란 점에서 품질은 보증된다 하겠다.

[일곱] <테일 오브 테일즈>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동화가 영화로 태어난다. 19일 개봉하는 <테일 오브 테일즈>는 이탈리아 유명 동화작가 잠바비스타 바실레의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역시 이탈리아 출신의 색깔있는 감독 마테오 가로네가 연출했다. 전작 <박제사> <고모라> <리얼리티: 꿈의 미로> 등을 통해 세계 영화팬들에게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 마테오 가로네가 자신의 색채를 유감없이 발산한 작품을 찍어냈을지 자못 기대된다.

셀마 헤이엑, 뱅상 카셀, 토비 존스, 존 C. 라일리 등 어느 때보다 쟁쟁한 출연진이 영화에 힘을 더한다. 그림 형제와 안데르센 동화의 원형이 되었다고 알려진 잠바비스타 바실레의 동화가 무한한 생명력을 얻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여덟] <미라클 프롬 헤븐>


멕시코 출신의 1970년생 여성 감독 패트리시아 리건은 역경 가운데서 빛나는 휴머니즘을 매력적으로 표현해온 연출자다. 2007년 찍은 <언더 더 쎄임 문>은 오직 엄마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으로 밀입국한 9살 소년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2015년 미국에서 만든 <33>은 무너진 광산에서 69일을 버텨 구조된 33인의 광부 이야기를 그렸다. 신작 <미라클 프롬 헤븐>은 이 같은 필모그래피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불치병에 걸린 딸과 그 가족이 맞닥뜨린 기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패트리시아 리건이 찍어내는 영화라면 '감동 실화'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되는 뻔하디 뻔한 영화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번 믿어봐도 좋겠다. 26일 개봉.

[아홉] <오베라는 남자>


2014년 개봉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기대해볼 만한 영화 한 편이 26일 개봉한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마찬가지로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스웨덴 영화라는 점에서 <오베라는 남자>는 관심을 끈다. 독특한 캐릭터가 마주하는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렸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상당하다. 이미 국내 마케팅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진행 중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성패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과 강정호가 한국선수들에 미치는 영향 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열] <엑스맨 : 아포칼립스>


마블-디즈니 연합군의 히어로 영화가 전 세계 극장가를 호령하는 오늘, 연합군 밖에서 드물게 제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시리즈 한 편이 5월 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역시 마블 원작을 바탕으로 하지만 폭스가 판권을 지키고 있는 <엑스맨> 신작이 개봉하는 것이다.

연출은 2014년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로 시리즈의 세계관을 되살리는데 성공한 브라이언 싱어가 맡았다. 26살이던 1995년, <유주얼 서스펙트>로 세계 영화팬을 놀라게 했던 그 시절에 비한다면 다소 평범한 재능으로 평가되지만 아직 브라이언 싱어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영화팬도 적지 않다.

제임스 맥어보이, 마이클 패스벤더, 제니퍼 로렌스, 니콜라스 홀트 등 무게감 있는 스타들도 총출동한다. DC코믹스 기대작 <슈퍼맨 대 배트맨 : 저스티스의 시작>이 참혹한 평가를 받고 물러난 상황에서 <엑스맨 : 아포칼립스>가 거둘 성과에 전 세계 영화팬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어쩌면 마블의 대항마는 오직 마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