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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에게 무얼 가르칠까' 요즘 내 뒤통수에 매달린 질문. 잘하고 싶은 욕심만 앞서고 학생들은 따라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자 괴롭기 시작했다. 그날은 '인터뷰 수업'이었다. 칠판에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 인터뷰'라고 적었다. 그리고 인터뷰 글을 적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책을 펼쳐서 꿋꿋하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엔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H야, 책 덮으세요." 덩치가 산만한 학생이 꼼짝도 안하고 있다. 몇 초도 안 되어 큰 소리로 두 번째 대포를 발사했다. "정말 너무하다. 책 좀..." 순간 그 학생이 읽던 책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화가 난 나는 세 번째 대포를 발사했다. "수업 듣기 싫으면 나가세요." 그 학생은 인터뷰 종이를 확 구기고는 나가버렸다.

애써 태연한 척 인터뷰 수업을 진행했다.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하세요." 학생들이 질문을 적은 후 두 명씩 짝을 지어 인터뷰를 해오라고 했다. 다행히 나간 학생과 인터뷰 짝이 된 친구가 H를 찾아오겠다며 나갔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수업이었는데,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모두 나의 욕심이었구나.

인터뷰를 마친 학생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나간 친구도 "죄송합니다" 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들어온다. 화가 풀리지 않아서 그 학생과 눈도 마주치기가 싫었다. 수업을 마치고 억울함이 밀려왔다.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글쓰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글을 쓰라고 한 게 문제인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다음날 H에게 물었다. 내가 싫냐고? 아니면 글쓰기 수업이 싫냐고? 그는 아무것도 싫지 않다고 했다. 다만 내가 소리를 지르는 게 싫다고 했다. 괜찮아 보이려고 애쓰는 나는 사라지고, 밑바닥까지 드러난 나만 남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올 것이 왔다'는 것이다.

글쓰기 수업 분위기가 삭막해서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대신 지리산의 품에 안겨서 위로받았습니다.
▲ 지리산 노고단에서 샨티학교 친구들 글쓰기 수업 분위기가 삭막해서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대신 지리산의 품에 안겨서 위로받았습니다.
ⓒ 조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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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큰 나무는 못 될 지라도 한 사람에게라도
그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 지리산 둘레길 걸으며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큰 나무는 못 될 지라도 한 사람에게라도 그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 조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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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3박 4일 동안 학생들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꽁하게 맺힌 한을 풀었다. 지리산의 품안에서 모든 게(?) 용서가 됐다고나 할까.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들보다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은 건 당연하다. 내가 싫어하는 수학수업을 상상해보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미분, 적분을 풀고 있는 나를 떠올렸다. 그래. 이들에겐 글쓰기 수업이 그럴 수 있을 거야.

내 자신을 향해 쏘았던 화살도 거두었다. '샨티학교는 대안학교이다'를 주문처럼 되뇌었다. 무언가를 질문했을 때 "아무 생각이 없는 데요"라고 답할 때의 괴로움이여.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답답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넘어야 할 산.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글쓰기 수업에 들어갔다.

돌아온 후 수업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봄이 문제였다(봄! 너를 '문제'라고 불러서 미안하다). 나른한 햇살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하나둘씩 졸기 시작했다. 처음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졸지 않기를 부탁해' 수업이 되었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은 사람을 얼마나 졸리게 만드는가. 똘똘한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꾸벅꾸벅. 졸지 말라는 내 목소리가 허공에 떠돌았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들에게 물었다. "다른 수업 시간에도 자나요?" 다들 "네"라고 대답했다. "다행이에요. 제 수업 시간에만 자는 줄 알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학생들이 모든 수업시간에 자서 다행인 현실.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공부를 안 시킨다고, 공부를 좀 시키려고 하면 일반학교와 뭐가 다르냐고 말하는 현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받은 상처가 좋아지면 다시 공부 욕심이 나는 현실.

이 모든 것이 대안학교의 현실이다. 글쓰기 수업 이야기가 다른 길로 흘렀다. 이 글은 나의 부끄러운 고해성사이다. 저마다 색깔은 다르겠지만 모두의 고민일지도 모른다. 글쓰기 수업을 시작할 때 순탄하고 아름답게 흘러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벽이 높다. 잠은 나른한 봄을, 무기력함은 현실을 탓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욕심과 학생들의 욕구가 만나지 못하면 학생들을 탓하다가, 결국 나를 탓하겠지.

수업을 통해 글을 잘 쓰는 학생으로 만들겠다면 나는 논술학원에 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존재'와 '존재'가 벽을 허무는 과정을 목격하고 싶다면, 누군가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싶다면 여기서 꿋꿋이 버텨야 한다. 버티는 동안 그들과 나는 부딪힐 것이고, 그럴 때마다 지겹도록 고해성사를 할지도 모르겠다.

뉴욕타임스 작가 인터뷰 <작가의 책>을 읽다가 이 시를 만났다. 나라는 존재가, 글쓰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럴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헛되이 사는 게 두려워진다.

내가 만약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 에밀리 디킨슨


태그:#샨티학교, #글쓰기, #지리산 , #대안학교, #에밀리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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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쓸 때는 은둔자가 되고 싶으나,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여인. 곧 마흔, 불타는 유혹의 글쓰기를 기다린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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