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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잡을 착용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메흐라바드 공항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히잡을 착용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메흐라바드 공항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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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정상회담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하며 히잡을 착용했다. 이슬람권이 아닌 국가의 여성 정상이 히잡을 쓰고 이란을 방문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여성 억압의 상징인 히잡을 여성 대통령이 꼭 써야 했느냐는 비판부터 타국 문화를 존중하기 위한 외교적 차원에서 나온 행위라는 해석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히잡이 '여성 억압의 상징'만은 아니다

그러나 히잡을 단순히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는 식으로 편하게 단정 짓는 것은 이슬람계 사람들을 오랫동안 차별해 온 서구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히잡은 현재 이슬람 국가 안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구속하는 장치로 작용하지만(과거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히잡이 외세에 맞선 정치적 진보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서구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이슬람계 사람의 경우 히잡은 출신 문화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이슬람계 사람을 테러리스트로 몰기 일쑤인 미국과 유럽에서 여성이 히잡을 쓰고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경우 히잡은 여성 스스로 여성 억압을 긍정하는 표시가 아니라 이슬람계를 차별하는 서구 사회에 대한 항의의 표시가 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히잡을 개인의 취향이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진해서 착용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여성 정치인의 '히잡 거부'와 '히잡 착용'

그리고 히잡 착용을 거부한 여성 정치인들의 사례가 반드시 여성 억압 장치로서의 히잡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이슬람권 국가를 방문한 비 이슬람권 여성 정치인들 중 히잡을 거부한 사례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 그리고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치인에 준하는 미셸 오바마 정도다.

그러나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줄리 비숍 호주 외교부 장관은 히잡을 착용하고서 지난해 이란을 방문했다. 미셸 오바마는 앞선 경우와 반대로 2010년 인도네시아 방문 때는 히잡을 착용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 역시 2009년 파키스탄 방문 시 히잡을 착용했다. 2010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아랍에미리트에서 히잡 대신 스카프를 마치 히잡처럼 머리에 둘렀다.

즉, 이슬람권 국가를 방문하는 '비 이슬람권 국가의 여성 정치인'의 히잡 착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페미니즘적 입장이라기보다는 국가들 사이의 국력 차이 혹은 이해득실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외교 전략이라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슬람교 신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 히잡을 쓰지 않았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이슬람 사원에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이 잠깐 히잡을 착용했다고 하지만 그 외 일정에선 한 번도 착용하지 않았다.)

 2015년 아랍에미리트 방문 시 히잡을 쓰고 사원을 둘러보는 박근혜 대통령.
 2015년 아랍에미리트 방문 시 히잡을 쓰고 사원을 둘러보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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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히잡 착용'

히잡을 둘러싼 논의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리고 한 나라의 수장이 장신구처럼 착용하는 히잡과 어느 이슬람계 사람이 서구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쓰는 히잡, 이슬람권 국가에서 여성 억압의 장치로 쓰이고 있는 히잡은 저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강대국의 정치인들은 히잡을 쓸지 말지 편리하게 결정해 해당 이슬람권 국가를 방문할 수 있지만, 강대국이 아닌 국가의 정치인들은 자기 나라와 방문할 나라의 국력을 열심히 저울질하고 히잡을 썼을 때와 쓰지 않았을 때의 장단점을 계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히잡 착용을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보면 아주 간단한 결론이 나온다. 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히잡을 여성 억압의 도구로 보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슬람권 출신자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여성 대통령의 몸으로 직접 히잡을 착용함으로써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억압보다는 '국익'이라 불리는 추상적이고 국민들조차 체감하지 못하는 이득을 우위에 놓았다.

국가라는 '젠더'

타국의 문화적인 요소를 고려했다는 정부의 입장은 인도네시아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이 히잡을 쓰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이슬람권 출신도 아니고 이슬람교 신자도 아니므로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이슬람계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의도 또한 여기서 고려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히잡이 지닌 여성 억압적인 측면과 종교적 신념의 측면을 모두 은폐하고 외교 전략상의 소도구쯤으로 이용한 것은 물론 박 대통령의 잘못도 한국 정부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국가라 일컬어지는 주권은 국가의 지도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저마다 남성의 젠더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의 히잡은 시사한다.

모든 남성 지도자들은 히잡을 써야 할지 쓰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히잡은 오직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관습이자 굴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지도자라 해도 히잡을 써야 할지 쓰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지도자의 젠더는 외교 임무를 수행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지도자의 고민거리는 젠더가 아니라 해당 이슬람 국가와의 정치적 관계와 국력 차이가 전부다.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남성 젠더는 언제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모든 국가의 젠더는 필연적으로 남성이고 이는 국가주의가 언제나 남성 중심주의로 흐르는 보편적인 현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젠더가 삭제된 히잡은 '정치적 책략'

요컨대 이슬람권 출신도 아니고 이슬람교 신자도 아닌 박 대통령의 히잡 착용은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보면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 장치 자체를 정치적 책략으로 환원한 행위라 볼 수 있다. 즉, 박 대통령은 스스로 히잡을 뒤집어쓰는 행위를 통해 이슬람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여성 억압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국의 추상적인 '국익'의 하위에 놓으려 한다고 전 세계적으로 선언한 꼴이 된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세월호나 국정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 등 주요 국정 이슈에 대해 국민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다가 정작 다른 국가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히잡을 착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그동안 소통 부재에 답답해하던 국민들에게 또 다른 박탈감을 안겨 줬다는 사실은, 덤이다. 아마 박 대통령에게 여성 억압이나 페미니즘은 전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도 차리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페미니즘적인 섬세함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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