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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아마 한국사 수업에서였을 것이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대해 문화통치를 시행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로만 언급될 뿐이다.

이 시기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건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의 민권운동을 흉내낸 인텔리들의, 그들만의 리그일 뿐." 근대 일본의 사상가 하세가와 뇨제칸의 비평은 일본인들 일반의 인식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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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쇼 데모크라시 표지 사진
ⓒ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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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반대의 평가도 존재한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대중에게 뒷받침된 운동." 책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저자 마쓰오 다카요시의 주장이다. 그는 그 근거로 다이쇼 시대 전반에 걸친 주요한 민중운동의 양상을 보여준다.

시작은 러일전쟁 종결 직후에 있었던 강화반대운동이다. 강화조건이 지나치게 러시아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시작된 근대 일본 최초의 민중운동이었다. 제국주의적 인식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으나 그 근간은 정부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 동안 일본 민중들은 15억엔의 전비와 12만명의 전상자라는 희생을 치렀다. 그럼에도 가장 기본적인 의사표현의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인내했음에도 정부가 얻어낸 성과가 보잘 것 없었다고 여겼기에 마침내 폭발했던 것이다.

세금인하와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강화반대운동의 핵심 주장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내내 계속된다. 이후 중소 상인들의 납세 거부운동과 자유주의 언론인들의 정부 비판을 거치며, 단순히 이어지기만 할 뿐 아니라 더욱 심화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금인하는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로, 의사표현의 자유는 보통선거운동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정책에 드는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정부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다. 정부가 민중의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민중에 의해 선출된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역사에서 쌀 소동의 의미는 크다. 그것은 민중들 스스로 일으킨 생활운동이었다.' - 본문에서

일본의 민중운동은 점차 그 범위를 더욱 넓혀 나간다. 상인들의 담합에 항의한 사건인 '쌀소동'을 계기로, 도시를 넘어 지방의 민중들에게도 전파된다. 탄압받던 사회주의자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민주국가의 모든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는 논리로 자유주의자들의 옹호를 받는다.

가장 차별받던 존재인 부라쿠민(일본의 천민 집단)과 재일조선인들까지 자신만의 언론을 만들기에 이른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광범위한 대중을 포괄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허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민주국가가 될 터였다.

1925년에 이루어진 보통선거는 일견 일본 민주화의 정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때부터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몰락했다고 말한다. 새로이 치안유지법이 재정되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더욱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은 비슷비슷한 보수주의 정당들이 이끌고 나가다가, 1932년 5월 최후의 총리인 이누카이 츠요시가 해군 장교들에게 암살당하면서 군부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그 이후로 일본은 일관되게 제국주의의 길을 달리게 된다. 전쟁의 승리라는 대의 하에 부라쿠민과 재일조선인은 물론 일반 일본인들의 인권도 철저히 무시당했다. 태평양 전쟁 내내 일본인들은 무거운 세금과 정부의 억압에 신음해야만 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실패로 끝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 군부의 폭주이다. 대낮에 총리를 암살한 범인들을 사면시킬 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은 강했고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의 민중들 대다수가 반대했다면 군부가 그렇게 막나갈 수 있었을까? 실제로 암살범들이 사면 받은 배경에는 투서만 50만 건이 넘을 정도로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가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일본의 민중운동은 제국주의에 반대했다 했는데, 그 첨병인 군부를 지지한다는 건 모순이 아닌가. 사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그에 대한 힌트들을 던져준다.

'그러나 미우라 등은 주로 경제적 득실이라는 관점에서 조선포기론을 논한 것이지, 민족독립을 향한 열망을 존중하는 입장에 서있던 것은 아니었다.' - 본문에서

미우라는 잡지 '제3제국'의 필진 중 한 사람이다. 제3제국은 주권재민론이 실릴 정도로, 당시 일본에서 가장 진보적인 언론이었다. 그런 언론조차도 경제적인 득실을 따져 제국주의를 반대할 뿐,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성찰하지는 못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경제적인 득실을 따지는 게 왜 문제인가.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거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닌가. 왜 굳이 제국주의의 본질에 대해 성찰해야 하는가? 그 해답을 보여주는 책이 있다.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왕도의 개>이다. 다음 회에 일본의 농민반란인 치치부 사건부터 청일전쟁까지, 다이쇼 직전의 시대를 다룬 이 작품을 통해 그 이유를 말해보고자 한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마쓰오 다카요시 지음, 오석철 그림, 소명출판(2011)


태그:#다이쇼 데모크라시, #인권, #제국주의, #일본,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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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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