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들이 알바하는 20대를 보는 관점은 보통 두 가지다. 무시하거나, 무시당한다는 이유로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어차피 잠깐 하다 마는 것이니 그 정도 대우도 괜찮다거나, 아니면 불쌍한 알바들이 이토록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식.

그동안, 그 누구도 아르바이트 노동 그 자체에 주목하지 않았다. 어떤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었고, 어떤 프랜차이즈 매장의 수가 몇천 개에 달하고, 편의점이 몇십 미터 단위로 줄어 있다는 보도 뒤에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있었다. 만약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없었다면, 그 모든 게 가능하기나 했을까.

<일하는 청춘, 꿈꾸는 노동>이라는 연재를 통해 우리는, 아르바이트 노동과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보다 더 깊이 다뤄보고자 한다. 그들을 무시하거나,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서. 또 자극을 위한 소재로 삼지 않으면서. - 기자 말

"알바도 노동자다!" 노란 조끼를 입은 80여 명의 청년들이 서울 한복판 뙤약볕 아래 자리를 잡았다. 손에는 팻말이 하나씩 들린 채다. 지난 1일 오전 11시, 서울 보신각 앞에서 '제4회 알바데이'가 열렸다. '알바데이'는 아르바이트(알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알바노조'에서 주최하는 노동절 기념행사다.

1886년 5월 1일, 산업화 이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미국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하며 대대적인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은 5월 1일을 '세계 노동자의 날(메이데이)'로 지정하고 기념해오고 있다. 1890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26주년을 맞는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유독 많은 한국에서, 알바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뜨거운 사회 이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22.4%로 28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다. OECD 국가 평균인 11.8%보다는 2배 정도 높은 셈이다.

비정규직 비율은 상위권이지만 알바 노동자의 노동권은 바닥에 머물러 있다. 최저임금, 주휴수당, 야간수당, 휴게시간 보장 등 법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기 일쑤다. 2016년 노동절을 맞아 알바데이에 참가한 알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김승연 (21, 서울)

김승연(21,서울)
 김승연(21,서울)
ⓒ 신혜연

관련사진보기


- 어떤 알바를 하고 있나?
"파리바게뜨에서 10개월째 근무 중이다."

- 왜 알바를 시작하게 됐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알바비는 용돈과 밥값으로 쓴다."

- 몇 시간 정도 일하나?
"일주일에 14~16시간 정도.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고 있어서 주말에만 일한다."

- 어떤 일을 하나?
"빵을 팔고, 포장하기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한다."

-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뭔가?
"1분 1초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게 가장 힘들다. 뛰듯이 일을 해야 겨우 일을 제시간 안에 마칠 수 있다. 바쁘게 일했는데도 일을 제때 못 마치면 스트레스 받는다."

- 오늘 행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최저임금 만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많은 알바 노동자들이 모이는 날이니 같이 플래시몹도 하고 행사도 열면서 사람들에게 이 이슈를 알리고 싶었다. 20대 국회의 주요 의제가 '최저임금 만원'인 만큼, 힘을 보탰으면 하는 마음에 나왔다."

- 최저임금 만 원이 되면 뭘 하고 싶은가?
"일하는 시간을 좀 줄이고 학업에 열중하고 싶다. 또 알바를 하느라 포기했던 일들을 하고 싶다."

서나래(25,부산)

서나래(25,부산)
 서나래(25,부산)
ⓒ 신혜연

관련사진보기


-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시에서 버스점검 개수원으로 일하고 있다. 버스에서 돈을 뺄 때 가져가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시에서 시민단체에 위탁한 일이라서, 시민단체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 시급은 얼마나 받나?
"2~3시간 일하고 일급 3만 원을 받아서, 거의 시급 만 원이다. 늘 최저 시급을 주던 이전 알바들보다 훨씬 낫다."

- 이전에 다른 알바를 많이 해봤나?
"전에 파리바게뜨에서 일했었다. 주휴수당을 달라고 했다가 사장에게 '뒤통수치지 마라, 이딴 식으로 살지 마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주휴수당을 안 주려고 근로계약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근로계약서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고, 노동청에 신고하겠다고 해서 받아냈다."

- 알바노조 조끼를 입고 있는데, 조합원이 된 계기가 있나?
"옛날에 고깃집에서 일할 때 최저임금 미만으로 받으면서 일했다. 그때는 근로계약서가 있는 줄도 몰랐다. 면접 볼 때는 자정이 넘으면 택시비를 주겠다더니 '야간버스 타라'고 말을 바꾸더라. 돈 문제보다도 약속을 안 지키니까 많이 화가 났다. 알바노조가 있다는 걸 듣고, 이 사람들은 나랑 같이 싸워주지 않을까 해서 가입하게 됐다."

- 알바데이 행사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얼마 전에 친구들과 주꾸미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1인분이 9000원이었다. 공깃밥 하나 시키니까 만 원이더라. 최저 시급 받으면서 사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사실 6030원으로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부산에서는 국밥을 많이 먹는데, 작년에 6000원이던 국밥이 올해 6500원으로 올랐다. 최저임금보다 늘 비싸니까 마음 편히 사 먹을 수가 없다."

- 최저임금으로 생활하기가 무척 어려워 보인다.
"돈이 없으니까 '밥버거' 같은 걸 먹는다. 양이 적으니까 포만감을 느끼려고 꼭꼭 씹어 먹는다. 차비랑 식비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식비뿐 아니라 다른 생활비도 많이 든다. 자취하면서 방세도 내야 하고, 알바 면접을 보려면 휴대폰이 있어야 하는데, 휴대폰 요금을 못 내서 끊긴 적도 있다. 부산 지역은 최저임금 안 지키는 곳도 많다. 오늘 행사에 함께 참여한 부산 친구는 아직도 4000원대 시급을 받고 일한다. 이런 현실을 좀 바꿔보려고 참여했다."

김지수 (22, 서울)

김지수(22,서울)
 김지수(22,서울)
ⓒ 신혜연

관련사진보기


- 어떤 알바를 하고 있나?
"일주일 전쯤에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해고됐다. 지금은 구직 중이다."

- 해고 사유가 뭔가?
"근무 중에 휴대전화를 많이 본다는 게 이유였다. 주말에만 알바를 하고 있는데,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두 번 빠질 일이 생겼다. 두 번째 빠진다고 했을 때 사장님 표정이 굉장히 안 좋았다. 그 후로 CCTV를 계속 지켜보신 것 같다. 휴대전화 자주 보고, 매대 위에서 컵라면 먹고, 일을 대충 한다 등등의 이유를 들면서 문자로 해고했다."

- 시급은 얼마를 받고 일했었나?
"최저 시급이었다. 한 주에 16시간 일했지만, 주휴수당은 안 줬다. 카운터를 보면 정산이 얼마씩 비는데, 그 액수만큼 내 월급에서 빼갔다. 물론 정산이 남는다고 월급을 더 주는 건 아니었다.(웃음) 몇백몇십 원까지 정확하게 빼가더라."

- 갑자기 생계가 끊겨 막막하겠다.
"알바비가 보통 일하고 나서 다음 달 15일쯤에 들어온다. 다시 알바를 구해도 45일 넘게 기다려야 하니 걱정이다. 해고된 곳에서 그동안 했던 알바비를 줄지도 좀 걱정된다."

- 오늘 행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1학년 말부터 알바를 해왔는데, 처음엔 '최저임금 만원'이란 이슈에 그다지 동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바를 계속해가면서 점점 공감하게 됐다. 예전에 PC방에서 일했었다. 거기서 파는 500원짜리 껌을 보고 "이거 불량식품 아니냐"고 사장님께 물었다가 "네가 뭘 알고 함부로 말하냐"며 해고 당한 적이 있다. 석 달 넘게 일한 곳인데 말 한마디로 잘린 거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알바 노동자의 삶이 정말 불안정하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알바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나오게 됐다."

이한결(24,대구)

이한결(24,대구)
 이한결(24,대구)
ⓒ 신혜연

관련사진보기


- 어떤 알바를 하고 있나?
"식당에서 서빙 알바를 한다. 한 달 반 정도 됐다. 대구에 소문난 맛집이라서 굉장히 바쁘다. 오픈이 낮 12시인데, 10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다. 시급은 7000원이고, 평일에 주4일로 12시부터 4시까지 4시간 동안 일한다. 하지만 보통은 12시가 되기 10분 전에 출근해서 늘 4시를 넘겨 퇴근한다. 주휴수당도 안 준다."

- 오늘 행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최저임금 만원 의제에 동감한다. 주 4일로 일하는데 생활비로 충분하지 않다. 44만 원을 받는데, 집세랑 교통비, 적금을 빼면 남는 돈이 5만 원 내외다. 생활이 불가능하다. 또 10분 전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하고 싶어서 나왔다."

- 최저임금 만 원이 되면 뭘 하고 싶은가?
"우선 4~5시간만 일해도 되니까,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 악기를 늘 배우고 싶었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못 배웠던 게 아쉽다. 여행도 가고 싶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생활비가 모자라 돈에 인색했었는데 좋은 선물도 챙겨주고 싶다."

맥도날드 크루(20대 초반) *'알바데이' 행사에서의 발언 내용을 재구성

맥도날드 크루(20대 초반)
 맥도날드 크루(20대 초반)
ⓒ 신혜연

관련사진보기


"생활비, 등록금, 집세를 마련하려고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알바를 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맥도날드는 알바계의 '삼성'으로 불린다. 최저임금, 주휴수당, 휴업수당을 챙겨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오늘 같은 주말은 맥도날드가 장사가 가장 잘 되는 날이다. 주말에 출근하면 쉴 틈이 없다. '45초 햄버거'(맥도날드에서 알바 노동자들에게 단시간 내 햄버거를 만들도록 강요하는 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알바노조에서 만든 용어)를 만드느라 그릴 판에 손이 데고, 끊는 기름 옆을 뛰어다닌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맥도날드에 '45초룰'은 없다"는 기사를 썼다. 매장에 직접 가보니 45초 햄버거 규정이 없다고 했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맥도날드에는 '서비스 타임'이 있다. 주문받는 시간부터 햄버거 만드는 시간, 포장하는 시간 등 모든 시간이 책정되고, 이 시간의 평균은 본사로 보내진다. 시간에 민감한 매니저는 알바를 압박한다.

빨리 주문을 처리하려고 서둘러 감자를 튀김기에 담다가 손이 데는 건 일상이다. 매니저는 화상 입은 동료를 보고 "맥도날드에서 화상 입는 건 훈장이지"라는 말을 했다. 동료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전 장갑만 하나 있었더라도 손에 입는 화상은 막을 수 있었을 거다.

맥도날드에서 최고는 고객이다. 우리는 진상 손님이 와도 참아야 한다. 회사는 "손님에게 불친절하다"며 우리를 혼낸다. 손님이 막말을 해도 참아야 한다. 나는 이 상황이 참 억울하다. 그래도 참으면서 일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주는 곳은 맥도날드밖에 없으니까.

우리가 바라는 건 큰 게 아니다. '인간은 존엄하다'는 한마디가 듣고 싶다. 맥도날드에서 크루는 노동자가 아니라 '애들'이다. 매니저는 '애들아 빨리하자'라고 말을 낮추고 독촉한다. 일을 빨리해야 우리 받는 돈도 늘어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시급은 늘 6030원 최저임금이다.

맥도날드에는 청년, 주부사원, 노인사원 등 다양한 알바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모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최저임금을 주는 맥도날드로 온 사람들이다. 맥도날드는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면서 알바 노동자와의 대화는 피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언제까지 우리 존재를 외면할 건가."


태그:#알바, #알바데이, #노동절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