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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문
 서울대 정문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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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의 교육 실습생(교생)들이 우리 학교로 실습을 나왔다. 전공 교과도 제각각이었는데, 나와 같은 한국사를 전공한 교생도 있어 그와 짝이 될 생각에 무척 반갑고 설렜다. 바람대로 그는 앞으로 4주의 실습 기간 나와 함께 아이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셋째 주까지는 내 수업을 참관하고, 마지막 한 주는 위치를 바꿔 그가 직접 수업을 하게 된다.

교육 실습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는 연신 부담을 드려 죄송하다고 했지만, 외려 교생을 맡겨줘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솔직히 조금 번거롭긴 해도 해마다 이맘때쯤 내가 교생들을 기다리는 이유가 있다. 그들을 통해 교사로서의 열정을 재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을 참관하면서 어깨너머로 새로운 교수법도 배울 수 있고, 요즘 아이들과의 '젊은' 소통 방식을 익힐 수도 있다. 말하자면 현직 교사들에게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수업이 없는 시간, 우연찮게 휴게실에서 그들과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요즘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값싼 위로라도 전하고 싶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과 지방의 사범대 출신이었는데, 나머지 한 명조차 교직에 뜻을 두고 늦게나마 교육대학원에 진학한 경우였다.

교생들에게 들은 뜻밖의 말

그런데, 그들은 나의 위로를 무색하게 했다. 놀랍게도 지금 임용고시에 '올인'하고 있다는 이가 없었다. 교사가 되겠다는 학창시절의 꿈은 되레 사범대와 교육대학원을 다니면서 시나브로 허물어졌단다. 해마다 졸업생은 넘쳐나고 임용고시는 갈수록 축소되는데, 오로지 교직만 바라보는 건 무모하다고 했다. 학생 수가 급감하는 현실에서 더 이상의 교사 충원은 어렵지 않겠느냐며 되레 담담해했다.

"임용고시를 보려면, 전공 교수님들조차 졸업 후 최소 3년은 각오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남학생들은 목숨 걸고 준비한다 해도 빨라야 서른 줄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나마도 제 주변엔 그렇게 '일찍' 교사가 된 경우는 없어요. 1~2년 정도 휴학은 기본인 요즘에는 여학생들조차 임용고시에 목매다는 걸 주저할 정도예요."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유 중의 하나가 오로지 사법고시 하나만 바라보다 '고시낭인'으로 전락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막아보자는 것이었잖아요. 그렇다면 이젠 임용고시 쪽으로도 눈을 돌려야할 것 같아요. 그나저나, 수없이 낙방하며 똑같은 걸 몇 년째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하는 사범대생들에게, 설령 그들이 교사가 된다 한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과연 남아있기나 할까요?"

그들에게서 차마 젊은 '예비 교사'로서의 열정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순 없었다. 또한 그들로부터 새로운 교수법을 배우고 익히겠다는 바람도 접었다. 그들은 씁쓸하게 웃으며, 4주간의 교육 실습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격증 하나 마련해놓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고백하듯 말했다. 그런 그들에게 교육 실습을 '빡세게' 시키겠다는 건, 어쩌면 학교의 욕심이자 횡포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교사가 되는 부푼 꿈을 안고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안타깝게도 대학은 그들의 꿈을 실현해줄 능력이 없었다. 교사가 되겠다는 꿈도, 대학의 내실 있는 교육과정도, 교수의 헌신적인 의지조차도, 나날이 줄어드는 '수요' 앞에서는 별무소용인 셈이다. 교사 양성이라는 특수목적을 지닌 사범대 출신들에게 교직은 사실상 유일한 진로여서, 예나 지금이나 그 길이 막히면 달리 방도가 없다.

"다른 인문계열 학과 출신들은 그나마 면접관 앞에서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기회라도 주어지지만, 사범대생들에게는 아예 면접장에 갈 기회조차 없어요. 임용고시 안 볼 거면 왜 굳이 사범대에 갔느냐는 등의 질문을 받을라치면 약간 비참해지기도 해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교사가 되기 힘든 현실에 대해선 눈감은 채, 그저 무능한 너희들 탓이라며 꾸짖는 셈이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그 많은 사범대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에게 한두 해 전에 졸업한 대학 선배들의 근황에 대해 물어봤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 모습'일 수 있는 선배들의 삶에 대해 무관심한 듯 보였다. 극소수 교사의 꿈을 이룬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선후배 간 연락이 끊기게 된단다. 자기 주변엔 온통 '취준생' 뿐이라는 한 교생은, 사범대 졸업장이야말로 진짜 '백수 증명서'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일반 기업에 취업한 경우도 아예 없진 않겠지만, 십중팔구는 '전공을 살려서'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을 거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나마 사범대생을 전공 불문하고 우대해주는 곳은 학원뿐이라면서. 이따금 아파트 현관문에 나붙는 강사가 '2급 정교사'라는 학원 광고 전단지의 글귀를 보면,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최후의 보루'다 싶어 안심도 된다며 씁쓸해했다.

교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영어와 국어를 복수 전공하며 임용고시에 매달렸던 한 선배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한 명이라도 더 뽑는 교과의 임용고시에 응시하기 위해 기꺼이 대학을 한두 해 더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수차례 낙방 끝에 결국 여느 선배들처럼 학원으로 흘러들어갔고, 삼십대 중반인 지금 아예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단다. 상경해 노량진에 칩거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줄 알았다면 입시에만 매달리지 않았을텐데

내친김에 그들의 향후 계획을 물었다. 대화가 오갈수록 그들이 직면한 참담한 현실과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대학이 '큰 배움터'라는 존재 이유를 이미 상실했다고 단언했다. 이구동성으로 고등학교 때 어느 누구도 그걸 말해주지 않았다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다면 맹목적인 입시 공부를 하진 않았을 거라고 후회했다.

"지성과 낭만은 개나 줘라"면서, 대학에 남은 건 오로지 취업에 관한 이야기뿐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는 것도 내심은 취업할 때 이력서에 '스펙' 한 줄 더 넣기 위해서라며, 우리나라 대학을 한마디로 이렇게 규정했다. '취업을 위한 각자도생의 전쟁터.' 배움이 사라진 대학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성을 잃고 파편화된 개인들만 부유하는 공간이 됐다.

학과 공부부터 취업 준비까지 대학생활 모든 게 '개인 플레이'라고 했다. 채 30명도 안 되는 학과 동기들끼리도 서로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가 거의 없다면서, 취업과 관련한 '스터디'조차 잘 꾸려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어차피 공유하는 시험 정보라 해봐야 다 인터넷을 통해 얻은 것들이고 보면, 굳이 만날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필요할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면, 그들에겐 손 위의 '스마트폰'이 유일하다시피 한 가장 소중한 친구인 셈이다.

학군단(ROTC) 2년차인 한 교생은 장기 복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 눈치였지만, 졸업 후 일단 장교로 근무하면서 적성을 따져본 후 선택하겠다는 거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아무렴 임용고시만큼 어렵겠느냐며 반문했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자면 적어도 사범대보다 학군단(ROTC)을 내세우는 게 여러모로 더 유리하다는 생각인 듯했다.

그런가 하면 유학 경험을 살려 해외 취업을 고려하고 있는 교생도 있었다. 외국에서 영주권을 얻는 것을 목표로 아예 삶의 터전을 옮길 작정이라고 했다. 낯선 언어와 이질적인 문화에 적응하기란 만만치 않겠지만, 그 어디든 이곳 '헬조선'보다는 나을 거라며 자신을 다독이고 있었다. '백수'라는 현실적 공포 앞에 대한민국 '국적'은 그에게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불안에 잠식된 영혼들이어서일까. 구체적인 취업 계획이 있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대개는 찬 밥 더운 밥 가릴 신세가 아니라며, 일단 어디든 취업하고 나서 미래를 차분히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될 곳은 소나기 피할 요량으로 잠시 거쳐가는 장소일 뿐 그들이 꿈꿔온 '온전한 미래'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학벌, 학벌' 하는 곳은 고등학교일 뿐

그들 중에는 내로라하는 명문대 출신도 있었다. 높아만 가는 취업의 문턱 앞에서는 그도 별반 다를 바 없어보였다. 만시지탄이지만, 교직을 꿈꾼다면 애초 '간판'을 따지지 말고 가까운 지방의 사범대에 진학해 신입생 때부터 마음 다잡고 임용고시에 '올인'하는 게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같은 세상엔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대비할 게 아니라 차라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도 했다. 대학은 그런 후 가도 늦지 않다면서.

아닌 게 아니라, 명문대 출신이라는 '간판'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했다. 기존의 사회적 평판이 알게 모르게 작용할 테니 아무래도 취업에 유리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지만, 후배들을 밀어주고 끌어주던 잘 나가는 선배들조차 제 앞가림하기 버거운 요즘엔 사정이 달라졌다는 거다. 여전히 학벌, 학벌 하는 곳은 고등학교뿐일 거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여태껏 뭐니 뭐니 해도 학벌이 최고라 여겼는데, 요즘처럼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인 시대에는 그 잘난 학벌조차도 별 수 없구나 싶어요. 그 덕에 학벌 구조가 점점 완화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SKY' 나온 친구들도 지금 취업을 못해 애면글면하고 있고, 더 공부하겠다는 의지도 없으면서 대학원을 향하는 경우도 허다하죠. 애먼 시간만 벌고 있는 셈이죠. '금수저' 외엔 답이 없는 세상이에요."

그들은 더 이상 명문대 간판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더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며 모두가 '흙수저' 서울대생보다 '지잡대'에 다니는 '금수저'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 중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을 거라며 자신했다. 요즘 대학생들에겐 'SKY서성한중경외시국숭세단'이라는 학벌 서열보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저 기준표'가 대세라면서 서로 맞장구치며 웃었다.

그들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려니 뒤통수가 따가웠다. 교사에 대한 꿈도 접고 알량한 취업에 대한 희망조차 품지 못하는 그들 앞에서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나는 그 흔한 위로조차 건넬 수 없었다. "자나 깨나 취업 걱정에 다른 사람들의 선의조차 의심하는 등 마음마저 악해지는 것 같다"는 한 교생의 말에 나는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떨궜다.


태그:#금수저 흙수저, #임용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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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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