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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놀이헌장 제정 1주년 포럼' 기념 인사를 하는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어린이 놀이헌장 제정 1주년 포럼' 기념 인사를 하는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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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주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더욱 더 높은 성적을 올릴 수 있게 할지를 고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더욱 잘 놀 수 있게 할지를 고민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의 이런 고민이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는 상당히 엉뚱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날 이 자리에서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시간 못지않게, 놀이를 하는 시간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공부 시간'과 '노는 시간'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겉도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하나로 연결돼 있어 아이들에게 모두 똑같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28일, 국회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는 '어린이 놀 권리 보장, 학교가 나서자'라는 주제로, '어린이 놀이헌장 제정 1주년 기념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은 아이들의 놀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시에, 아이들의 놀 권리를 주제로 교육계, 학부모, 아동 권리 단체가 함께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포럼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주최하고, 강원도교육청이 주관했다.

포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해 1월 '어린이 놀이헌장'을 제정할 것을 처음 제안했던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인사말을 통해 "한국의 어린이들이 입시 경쟁 위주의 과도한 학습으로 OECD국가 중 행복지수가 가장 낮다는 보고서는 우리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며 "(어린이 놀이헌장 제정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학교 현장과 아이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민 교육감은 "오늘 이 자리는 어린이놀이헌장 제정 1주년을 맞아서, 현실을 진단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제는 학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위한 자리"이라며, "가장 먼저, 우리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학교 현장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권리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주는 일은 우리 어른들의 의무"임을 강조했다.

'아이들 놀 권리 보장, 학교가 나서자', 어린이 놀이헌장 제정 1주년 포럼.
 '아이들 놀 권리 보장, 학교가 나서자', 어린이 놀이헌장 제정 1주년 포럼.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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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는 틀을 벗어나, 아이들이 결정해야 한다

이날 포럼에서 먼저 주제 발표에 나선 황옥경 교수(한국아동권리학회 회장, 서울신학대 교육학과)는 '어린이 놀 권리 보장의 중요성과 교육계에 대한 제언'이라는 제목으로, "놀이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또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놀이와 관련한) 의사 결정을 아이 본인이 할 수 있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피력했다.

황 교수는 "숲 활동과 같은 특정 프로그램들에 대해 사실상 개인적으로 많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숲 활동을 가더라도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그 아이가 체험 활동을 진짜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짜놓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타율적 방식에 의해서 아이들이 그냥 따라가는 것이 과연 놀이일까, 체험일까"하는 의문을 나타냈다.  

따라서 황 교수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지도할 때 정해진 방법대로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놀이를 지도하기 시작하면, 놀이의 본래 의미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놀이를 가르친다, 지도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속해서 "놀이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 절대로 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놀이는 아이들 마음대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놀이는 목적을 가지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황 교수는 또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데 '안전'을 지나치게 의식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놀이에서 지나치게 안전을 강조하다 보면, 놀이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는 기회인데 그 기회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안전을 염두에 두고 놀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나갈 것"을 당부했다.

박미연 교장(경기도 죽백초등학교)은 '놀 권리가 보장되는 학교'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에 나섰다. 박 교장은 죽백초등학교를 올해 6년차 혁신학교로서, '놀면서 배우는 학교, 작지만 충분한 학교'라고 소개하고는 지난 6년 동안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웠고, 행복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박 교장 역시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 놀이를 지도하려고 할 때 아이들이 잘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체득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해맞이 시간(죽백초에서 시행하는 아침 놀이시간)에 함께 어울려 노는 데 어색해 하던 아이들도 학부모들이 먼저 놀이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놀이를) 함께 하게 됐다"며, "아이들이 해맞이를 통해서 너무나 달라졌다"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박 교장은 특히 "찡그린 아이들, 아픈 아이들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학년 학부모 간담회 때, 학부모들이 하신 말씀이 뭐냐 하면, 아이들이 급식을 맛있어 한다는 거였다"면서, "아침에 아이들이 그렇게 노는데, 어떻게 급식이 맛있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박 교장은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 집중력도 늘었음을 확신했다.

죽백초의 아침 놀이시간인 '해맞이'는 아침 자율학습이 과연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율학습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그런 고민 끝에 이 학교 교사들은 아침 자율학습 시간을 "학교 밖에서, 혹은 집에서 제대로 놀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학교 안에서라도 편안하게 놀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주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과감하게 아침 자습 시간을 폐지한 뒤, 그 시간에 해맞이를 시작하게 됐다.

2015년 4월 25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강원도교육청 주관으로 열린 '어린이 놀이헌장 원탁 토론회의'. 이날 모아진 아이들의 의견은 이해 5월 4일에 선포되는 '어린이 놀이헌장'에 반영됐다.
▲ '어린이 놀이 헌장 원탁 토론회의' 2015년 4월 25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강원도교육청 주관으로 열린 '어린이 놀이헌장 원탁 토론회의'. 이날 모아진 아이들의 의견은 이해 5월 4일에 선포되는 '어린이 놀이헌장'에 반영됐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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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놀이터 중에 가장 안전한 곳은 학교

지정 토론에는 앞서 주제 발표를 마친 황 교수와 박 교장과 함께, 송태빈 강원도교육청 장학사, 오강식 전국놀이교사모임 가위바위보 회장, 나명주 참교육학부모회 정책위원장, 오명화 산별아 마을학교 대표 등이 참석했다. 토론회 사회는 김경희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차장이 맡았다.

지정 토론에서 송태빈 장학사는 먼저 "역시 모든 문제는 개별적이고 독단적인 사고가 아니라 죽백초와 같이 학부모, 교사, 학생 또 지역 공동체 이런 분들의 집단 지성, 여러 가지 사고가 모였을 때 대단한 파급 효과를 발휘하는 걸 알 수 있었다"며, "이런 사례가 다른 학교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놀이공간으로서) 운동장뿐만 아니라, 교실과 복도도 놀이 친화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교실도 사각형의 흰 색과 검은색이 아니라 좀 더 입체적인 교실로, 복도도 일자로 만들 것이 아니라, 놀이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감성과 인성 발달에 맞는 그런 공간 디자인을 겸하면 상당히 좋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나명주 정책위원장은 2년 전부터 '마음밥 어머니회'가 주체가 돼서, 아이들의 방과 후 놀이공간으로 "학교운동장을 뚫어보자"는 운동을 펼쳐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이들 놀이 공간으로 학교운동장만큼이나 적당한 곳도 없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놀이는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하면 된다'거나 '안전은 누가 책임 질 거냐'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어머니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유현초등학교 등 세 곳의 학교에서 '방과 후 놀이터로 학교 운동장을 개방하자'는 학부모들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어머니들은 이 세 곳의 학교에서 '와글와글놀이터'라는 이름의 방과 후 놀이터를 열 수 있었다. 학부모들이 갖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금은 이런 학교 놀이터가 10개로, 마을 놀이터는 7개로 늘어났다.

나 위원장은 이날 토론에서 "(안전 문제에서) 선생님들이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며 "학교 운동장은 지켜보는 어른도 있고, 주변에 친구들도 있어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 중에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결국 방과 후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이 자본이 잠식한 상업적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며, "학교 운동장은 반드시 개방돼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나 위원장은 또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그런 교훈을 얻었다"며, "속도보다는 방향을, 성장의 크기보다는 행복의 크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청 등에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놀이터가 시끄러워야 세상이 평화롭다' 같은 작은 캠페인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오명화 대표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는 연습을 한다"며 "놀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을 기르는, 민주시민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이자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어른들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 대표는 이날 토론에서 학교와 교육청 등에 ▲인권 혹은 놀 권리란 측면에서 학교의 전반적인 환경을 일관성 있고, 심도 있게 다루는 전담 기구를 구성할 것 ▲전국 어디나 똑같은 학교 놀이 공간과 학교 디자인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어 줄 것 ▲놀이 공간에서 위험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작은 위험을 경험하고 극복할 수 있게 해줄 것 등을 제안했다.

2015년 4월 25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강원도교육청 주관으로 열린 '어린이 놀이 헌장 원탁 토론회의'에 참석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왼)과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오른).
▲ 아이들의 바람을 전해받은 교육감들 2015년 4월 25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강원도교육청 주관으로 열린 '어린이 놀이 헌장 원탁 토론회의'에 참석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왼)과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오른).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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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놀이헌장 제정 1주년 기념, 다양한 행사 개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어린이 놀이헌장' 제정 1주년을 맞아 28일 기념 포럼 외에, '대한민국 어린이 놀이 한마당', '학교장 300인 원탁회의' 등을 연이어 개최할 예정이다. 놀이 한마당에서는 5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대전엑스포시민광장에서 다양한 놀이와 공연이 진행된다. 원탁회의는 5월 4일, 대전 ICC호텔에서 열린다.

어린이 놀이헌장은 지난해 5월 4일 제정됐다. 송태빈 장학사에 따르면, 어린이 놀이헌장 제정은 "어린이 놀 권리에 대해 여러 일반 시민단체에서 주장했지만 교육계가 논의의 중심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자성에서 비롯됐다. 이후,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이 지난해 1월 신년사를 통해 어린이 놀이헌장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작년 이맘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어린이 원탁회의'를 개최했다.

그 결과, 어린이 원탁회의에서 아이들로부터 주로 '우리에게 편히 쉬고 놀 수 있는 시간을 좀 달라', '지나치게 무거운 공부 부담을 덜어 달라', '우리를 믿고 존중해 달라'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 의견들을 반영해 그해 어린이 놀이헌장을 제정하고 선포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에는 또 어린이 놀이헌장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각 시도교육청 별로 실천 가능한 정책들이 마련됐다.

<어린이 놀이헌장> 전문

모든 어린이는 놀면서 자라고 꿈꿀 때 행복하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는 어린이의 놀 권리를 존중해야 하며, 어린이에게 놀 터와 놀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 주어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놀이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놀이의 주인은 어린이이다.

어린이는 차별 없이 놀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성별, 종교, 장애, 빈부, 인종 등에 상관없이 놀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놀 터와 놀 시간을 누려야 한다.
어린이는 자유롭게 놀거나 쉴 수 있도록 놀 터와 놀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어린이는 다양한 놀이를 경험해야 한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는 어린이의 발달 단계에 맞는 풍부한 놀이 환경을 만들어주고, 다양한 놀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는 놀이에 대한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는 어린이의 놀이를 존중하고 가치를 인정해야 하며, 안전하고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2015년 5월 4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2015년 5월 4일 오전 국회에서 어린이들과 시도 교육감들이 '어린이 놀이헌장'을 선포하고 있다.
 2015년 5월 4일 오전 국회에서 어린이들과 시도 교육감들이 '어린이 놀이헌장'을 선포하고 있다.
ⓒ 시도교육감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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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어린이 놀이헌장, #민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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