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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프로축구 리그에 '북한 호나우두'가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현지에 거주하는 교민들조차 대부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북한 호나우두라고 불리는 최명호 선수(28)는 같은 북한 출신 동료 김경훈 선수(중앙 미드필더)와 함께 캄보디아 국방부 소속 '아미(Army) FC' 중앙 공격수로 맹활약 중이다. 1988년생인 그는 우리나라 축구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국제축구무대에서는 꽤나 유명했던 선수다.

'홍명보호'에 패배를 안긴 신예

캄보디아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북한 호나우두' 최명호 선수.
 캄보디아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북한 호나우두' 최명호 선수.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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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수는 지난 2005년 페루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에 북한 대표로 출전해서 4경기에서 3골을 터뜨렸다. 당시 주목 받았던 유망주였다. 특히 16강전 코트디부아르 전에서는 전반에만 2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코트디부아르를 3-0으로 꺾은 뒤 이탈리아와 1-1로 비겨 8강행 고지에 올라섰다.

8강전에서는 최강 브라질과 만나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3으로 석패했지만, 대회가 끝난 후 최명호 선수는 FIFA로부터 '미래를 빛낼 13인 스타'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그해 그는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올해의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바로 전년도 수상자는 한국의 박주영 선수였다.

5년 후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로 단연코 최명호 선수를 꼽았다. 대회를 앞두고 우리나라 언론도 기사 제목을 "홍명보호, '북한의 호나우두' 최명호 경계령"이라고 뽑을 정도였다.

결국 우려한 결과가 나타났다. 북한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한국팀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수비축구'의 북한을 맞아 0-1로 패하고 말았다. 북한이 전반전 내내 효율적인 역공을 펼칠 수 있었던 중심축에 바로 중앙 미드필더 최명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민첩하게 한국 선수들의 볼을 빼앗아내며 수차례 역습을 이끌어냈고, 폭넓게 움직이면서 공격의 방향도 다양하게 이끌어갔다. 북한 입장에서는 단연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던 셈이다.

이 경기에 앞서 최명호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러시아 서부도시 사마라를 연고로 하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해 뛰었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던 그해였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해 유럽으로 진출한 북한 선수는 최명호 선수 외에도 여럿이 있다. FC 바젤 박광룡과, FK베자니아 베오그라드 홍영조 그리고, 스위스 FC빌 차정혁 등이 그들이다. 이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유럽리그에 입단해 활약했다.

최명호 선수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사마라 FC에서 등번호 53번을 배정받고 이듬해 2007 시즌 1군 명단에 오르며 큰 주목을 받았지만 선수로서 부상이 겹치는 등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컵 대회에 한 차례 풀타임 출전한 것을 제외하면 주로 2군 리그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2군 리그에 내려가서도 최선을 다했다. 모두 29경기에 주전 출전해 5골을 터뜨렸다. 러시아에서도 열성적인 것으로 이름난 사마라축구 팬들은 인터넷 투표에서 최명호에게 몰표(1124표)를 던져 결국 '올해의 2군 MVP'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겨주기도 했다.

러시아 리그 진출 당시 한국 출신 오명석 선수와 같은 팀에서 한솥밭을 먹기도 한 그는 결국 양쪽 발목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는 불운으로 해외에서의 선수생활을 포기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 후 기량을 회복해 평양시 체육단 소속으로 다시 들어가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뛰다가 올해 초 캄보디아 프로리그 개막과 함께 캄보디아 국방부 소속팀에 입단해 현재 맹활약 중이다.

솔직히 이렇게 화려한 경력을 가진 북한 국가대표선수가 축구변방 캄보디아까지 와서 축구를 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 그는 만 28세로, 은퇴를 고려하기에도 이른 나이다.

어쩌면 큰 부상을 입어 재기가 불가능하거나 능력이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단소식을 듣자마자 구장으로 달려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북한 호나우두' 직접 눈으로 봤더니...

지난 3월 열린 캄보디아 정규리그 경기에서 상대 골키퍼를 제치고 헤딩슛을 날리고 있는 최명호 선수(국방부 ARMY FC)의 모습.
 지난 3월 열린 캄보디아 정규리그 경기에서 상대 골키퍼를 제치고 헤딩슛을 날리고 있는 최명호 선수(국방부 ARMY FC)의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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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연습경기이기는 했지만, 축구에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도 그의 실력과 기량은 놀라웠다. 중앙미드필더에서 중앙공격수로 전환한 그는 여전히 빠른 발을 앞세운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수들을 제쳤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강력한 왼발슛과 골 결정력도 일품이었다. 함께 뛰는 선수들은 경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명호는 이번 시즌 총 6경기에 모두 출전해 무려 9골을 넣어 현지 축구관계자를 놀라게 했다. 현재 리그 득점 단독 선두다. 지난 달 6일 웨스턴FC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4골을 쏟아 넣어 현지 축구팬들을 열광케 했고 지난 4월 23일 열린 강력한 우승 후보 벙켓FC와의 친선경기에서도 결승골을 기록했다. 중앙공격수로 나서 빠른 발로 여러 수비수를 제치고 강력한 왼발슛을 날리는 모습은 그가 어떻게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경기시작 전 동료선수들의 격려를 받고 있는 2명의 북한 출신 프로축구선수들 .앞쪽 등번호 31번 김경훈선수 바로 뒤로 최명호 선수가 보인다.
 경기시작 전 동료선수들의 격려를 받고 있는 2명의 북한 출신 프로축구선수들 .앞쪽 등번호 31번 김경훈선수 바로 뒤로 최명호 선수가 보인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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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총괄매니저 차이씨는 "최명호는 체력과 스피드는 물론 정신력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할 정도로 대단한 선수다, 중장거리 슛으로 골을 넣을 수 있는 강한 왼발을 갖고 있고 득점력도 매우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다른 팀 축구 관계자들의 의견도 그가 매우 훌륭한 기량을 가진 선수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캄보디아 프로리그에서 뛰는 한국 출신 선수들도 최명호 선수를 높이 평가했다. 발이 빠르고 골 감각이 매우 뛰어나다는 게 한국선수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입단 전 아미팀 훈련캠프에서 일주일간 북한선수들과 훈련을 한 적이 있다고 밝힌 오주호 선수(폴리스 FC)는 "최명호 선수가 평소에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훈련 도중 먼저 말을 걸어 올 만큼 친근감을 표시하고 성격도 매우 활달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침 천금 같은 결승골을 기록해 경기를 승리로 이끈 지난 4월 2일, 경기를 마친 후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는 최명호 선수에게 다가가 악수를 권하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 적이 있다. 그는 기자가 남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란 듯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총총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자신들을 지켜보는 누군가를 의식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날이면 북한 출신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들이 교대로 따라다닌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이 매니저인지 감시자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들은 경기가 끝나면 늘 선수 곁에 붙어 있다. 기자가 선수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선수들도 기자를 의식한 듯 카메라를 들면 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해 버린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만큼이나 더욱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인터뷰는 나중에 다시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캄보디아 국방부 산하 아미 FC 소속 선수들이 단체기념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부터 두번째 김경훈 선수, 세번째 최명호 선수)
 캄보디아 국방부 산하 아미 FC 소속 선수들이 단체기념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부터 두번째 김경훈 선수, 세번째 최명호 선수)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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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북한선수들이 받는 월급은 대략 400불 수준이다. 우리 돈으로 따져 45만 원 정도다. 두 선수 모두 비슷한 급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뛸 당시 받던 급여와는 비교 대상도 되지 못할 정도로 낮다. 그럼에도 축구선수로서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그의 모습에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지난 4월 29일에는 캄보디아 프로리그에서 '남북대결'이 펼쳐지기도 했다. 최명호 등 북한 선수가 소속된 국방부 아미 FC와 한국 출신 이종호 선수가 뛰는 스와이 리엥 FC와의 경기가 스와이 리엥에서 열렸다. 이 경기에서 최명호는 전반 26분 첫 골을 기록한 데 이어 동료 북한 선수 김경훈이 후반에 연거푸 2골을 몰아 넣으며 5-1 완승을 거두었다.


태그:#캄보디아, #최명호 선수, #북한 출신 축구선수, #캄보디아 프로축구리그, #2005 아시아축구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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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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