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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낳은 아이 현수와 심경아씨.
 가슴으로 낳은 아이 현수와 심경아씨.
ⓒ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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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이맘때였다. 젊은 부부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남 화순군으로 귀농해서 2000여 마리의 닭을 키우며 억대 매출을 올리며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귀농 성공 신화를 듣기 위해 찾아갔지만, 성공신화보다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입양해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남았다.

요즘 툭하면 들리는 뉴스 중의 하나가 친엄마가 또는 친아빠가, 계모가, 계부가 아이들을 온몸에 피멍이 생길 정도로 때리고 지속적으로 학대했다는 이야기다. 혹자는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사람이 맞냐고. 

아마 그들도 처음에는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며 키우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녹록지 않은 환경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아이들에 대한 학대로 이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을 두둔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뉴스들은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일이, 특히나 남의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들며 크나큰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그 사랑이 부족하고 인내심이 바닥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그래서 김진환(47)·심경아(46)씨 부부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혈족도 아닌, 남남인, 거기에 장애까지 있는 아이를 위해 매월 수백만 원의 병원비를 지출해가면서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아이를 입양해 돌볼 준비를 하고 있는 부부에게 고개가 숙여졌다.

'억대 연봉'이 귀농 결심한 이유

화순으로 귀농해 유정란 생산하며 억대 매출올리고 있는 김진환씨. 부끄러워서 뒷모습만...
 화순으로 귀농해 유정란 생산하며 억대 매출올리고 있는 김진환씨. 부끄러워서 뒷모습만...
ⓒ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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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9년 차인 김진환·심경아 부부는 화순군 춘양면에서 '향상농장'을 운영하면서 2000여 마리의 닭을 방목해 키우며 '흙 사람들' 자연란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서울토박이인 김진환씨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귀농을 결심했다. IT업계에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억대 연봉을 받았지만 허무했다고 한다.

그때 문득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의 꿈이 생각났다, 버림받은 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우겠다는 꿈.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렸으니 앞으로는 주변을 돌아보며 하고 싶은 일,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 삼으며 조금 더 자유롭고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귀농을 결심하고 사표를 던졌다.

아내 심경아씨의 반응은 "NO!"였다. 30대 중반도 안되는 나이에 억대 연봉을 받으며 모든 것이 풍족한 도시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낯선 시골살이를 하자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다. 곧 중학교에 입학할 아이들의 진로문제도 걱정됐다.

설득 끝에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귀농 시기를 늦췄다. 하지만 남편 김진환씨의 마음은 시골로 향해 있었고, 2년여간 '쉼'을 계속하는 남편을 보며 더 이상 도시에서의 삶은 의미가 없겠다 싶어 귀농 시기를 앞당겼다.

심경아씨는 "아이들 고교 졸업 후로 귀농 시기를 늦춘 후 남편이 세계적인 기업에 입사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사표를 던지는 남편을 보면서 '내가 졌다' 생각했다"라면서 "당시 가지고 있던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아까웠지만 지금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진환씨는 귀농을 구체화하면서 직거래와 연중 생산이 가능한 품목이 무엇인지를 놓고 고민한 끝에 달걀을 생산하기로 했다. 대농 위주의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직거래를 통해 고객들과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데다 다양한 농축산물을 꾸러미 형식으로 만들어 고객들에게 판매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김진환·심경아 부부는 그 매개로 달걀을 선택한 것이다.

부부의 농장은 무항생제·동물복지인증 농장이다. 향상농장의 닭들은 산기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이며 곤충을 잡아먹고, 부족한 양은 황토와 버섯배지, 쌀겨, 구운화석, 왕겨, 토착미생물 등으로 만든 황토발효사료로 채운다. 항생제도 맞지 않는다.

부부의 다짐... '2년에 한 명씩 입양하자'

김진환 심경아씨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는 닭들의 산란장
 김진환 심경아씨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는 닭들의 산란장
ⓒ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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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해는 판로를 찾지 못해 힘들었지만 지금은 1000여 명의 고정 고객을 확보하고 연간 2억여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향상농장의 달걀은 한번 맛을 본 고객들을 통해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고 있다. 이 농장은 그 흔한 누리집이나 블로그조차 없다.

부부에게는 연년생 대학생인 지수와 태수 외에 가슴으로 낳은 아이 현수가 있다. 현수는 김진환씨가 지독하게 가난하던 시절, 버림받은 아이를 보살피겠다는 다짐의 실천이다. 농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부부는 2년에 한 명씩 버림받은 아이를 입양해 키우기로 결심하고 현수를 입양했다.

하지만 입양 후 얼마 되지 않아 현수가 뇌기능이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갓난아이시절부터 매일 밤마다 몇 시간씩 큰소리로 울어대는 현수를 보면서 신생아들에게 흔히 있는 배앓이 때문이려니, 잠덧 때문이려니 하다가 정밀검사를 통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수는 현재 7살이지만 18개월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많게는 매월 수백만 원씩, 귀농을 위해 준비했던 자금 중 여유자금으로 생각했던 적지 않은 자금이 수년간 현수의 병원비로 들어갔다. 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부부의 향상농장은 지금 집짓기로 분주하다. 귀농 초기 화순 읍내 아파트에서 거주했지만 매일 밤마다 울어대는 현수로 인해 이웃들의 불만이 빗발치면서 두 번이나 쫓겨나듯 이사를 해야 했다. 지금은 농장 옆 가건물에 거주한다.

덕분에 농장 옆에 지으려던 주택 신축 계획을 앞당겼다. 새집은 방이 여섯 개나 된다. 현수의 장애로 인해 늦춰졌던 계획(2년에 한 명씩 아이를 입양하겠다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한 공간을 미리 만드는 것이다. 농장의 축사와 관리사 등을 부부의 손으로 지었듯이 새집도 부부의 손으로 짓고 있다.

조심스럽게 혹시 현수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냐고 물어봤다. "우리 아들이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친자식도 나 몰라라 내치고 '사랑' 아닌 '증오'로 대하면서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세상인데 부부는 현수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 부부의 모습이 진한 울림으로 남는다.


태그:#화순, #향상농장, #동물복지농장, #김진환, #심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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