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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우도 장날> 프리마켓입니다. 집에서 안쓰는 물건들 모두 갖고 나오세요. 여행 중 불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여기서 팔고 홀가분하게 다닐 수 도 있어요. ⓒ 고성미
제주도의 작은 섬 우도에서는 2014년부터 '프리마켓 우도 장날'이 열려왔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몇몇 주민들이 프리마켓 형식으로 장을 열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은 매주 금요일 우도의 천진항 근처에서 열릴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우도면에서도 장날이 열릴 수 있는 장소 섭외를 도와줬고 얼마 전, 우도 장날의 전용으로 쓰일 판매 테이블 10개를 일괄 구매해 주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도 장날의 시작은 소소했다. 2014년 우도의 소라축제 행사에 '우도 창작스튜디오' 멤버들이 '초록빛우도만들기'라는 이름의 바자회를 준비한 것이 계기가 돼 앞으로도 이런 형식의 프리마켓을 계속 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서 출발하게 됐다.

프리마켓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집에서 안 쓰는 옷이나 생필품 혹은 책 등을 들고 나와 서로 필요한 사람들과 물물교환하는 장으로 시작했다가 누군가 우영팟(집 주위에 있는 텃밭)에서 키운 유기농 오이 등 채소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어떤 이는 집에서 키우는 닭의 유정란을 가지고 나와 단 1시간도 안 돼 완판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고소한 파전에 막걸리도 등장하고 향긋한 커피와 머핀 그리고 발효원액도 인기품목 중 하나가 됐다.

작은 규모의 장날이 꾸준히 계속되면서 우도의 숨은 예술가들도 조심스럽게 참여했다. 직접 만든 도기와 천연염색 의상이 등장하고 우도의 풍경을 나무에 그려 넣은 작품도 선보였으며 수제 기념품숍 '우도i'에서는 우도 뿔소라, 석고 방향제, 향초와 같은 기념 제품도 내놨다. 또한 손글씨로 직접 만든 부채와 함께 무료로 가훈을 써주는 캘리그래피 자원봉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올해로 3년을 맞는 우도 장날의 꾸준한 활동은 주민들 간의 소규모 물물교환에서 만족하지 않고, 소문나지 않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매달 한 번 장날에서 거둔 수익금을 모아 작은 기부의 행렬을 시작한 것.

2014년에는 장날에서 모은 기부금 60만 원을 우도 중학생의 교복 구입비로 기부했고, 2015년에는 우도 새마을 도서관이 주최한 '도서 축제'에 30만 원을 소리소문없이 살짝 전해줬다. 그리고 2016년에는 우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에게 40만 원의 장학금을 익명으로 선뜻 내놓기도 했다.

우도 주민으로서 조금이라도 섬마을에 기여하고 싶은 이들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돈이 마음을 온전히 채워줄 수 없는 그 작은 빈틈을 메우기 위해 그들은 '찾아가는 작은 봉사 활동'을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은 우도 장날의 회장, 하이디님과의 말이다.

"우도 장날에 참가하는 셀러(판매자)들에게 매회 3000원의 참가비를 받는데요. 그 돈을 모아 우도의 독거노인, 복지의 사각지대에 계신 할머니·할아버지 댁을 방문하여 도배·청소를 해드리는 '우도 장날, 찾아가는 봉사활동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건강하신 독거 노인분들은 그런대로 덜 걱정이 되는데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프신 분들은 일상적인 생활이 불편하죠. 예를 들면 식사라든가 청소 등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거동이 불편한 분의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주자는 의견부터 나왔다가 점점 욕심이 생겨서 아예 도배까지 해드리자는 결론이 내려졌죠. 회의를 마치고 그때는 모두 좋아라 하는 분위기였는데요, 막상 결정하고나니 앞이 캄캄한 거예요.

특히 '우도 장날'에는 남자 회원이 거의 없는 편이거든요. 도배를 하려면 장롱이며 세간살이를 모두 밖으로 내놓아야 하는데 하루라는 빠듯한 일정에 우리가 그 모두를 소화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었던 거죠.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진행하기로 했어요.

도배야 제가 배운 기술이 있으니 문제 없었고 우리 회원 중 나비님이 창호지를 바를 줄 알아 그것도 해결됐죠. 또 사란님과 파인님이 청소며 부엌 세간살이 정리까지 모두 분담했어요. 드디어 도배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벌어진 거예요. 잘 아는 친구의 20대 아들이 서울에서 놀러 왔다가 도와주겠다고 아침부터 와줬어요. 또 면사무소에서도 면장님과 주무관님이 도배 도구를 챙겨 와주셨어요.

게다가 비양동 동장님이 바쁘신 와중에도 무너져 내려앉는 안방의 천장을 수리해주셨고 또 도사님은 전기 공사를 도맡아 해주셨고요, 비양동 부녀회에서는 회장님과 총무님이 우리에게 커피를 타주고 감사의 말을 전해주며 해달섬 식당에서 점심 식사까지 제공해주셨지요.

우도의 4월은 1년 중 가장 바쁜 달이기도 해요. 바다에서는 천초며 톳을 채취해야 하고 밭에서는 마늘과 파농사의 갈무리를 해야 하거든요. 이렇게 바쁜 시기에 저희가 마을 어르신댁을 청소해드리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요. 부녀회에서는 저희에게 과분할 정도로 깊은 감사의 표시를 해주셔서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니까요.

많은 분들의 자원봉사 덕분에 우리는 하루 만에 안방 도배와 더불어 창호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를 수 있었어요. 오후 6시 즈음 할머니의 방과 마루 부엌과 화장실 등 온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와 정리를 마칠 수 있어서 너무도 뿌듯했죠. 저녁 뒤풀이를 하면서 '정말 우리가 하루 만에 해낸 거 맞지?'라면서 감격까지 했다니까요."

[사진] 우도 장날의 찾아가는 봉사 활동, Before & After
<우도 장날> 찾아가는 봉사활동에 참가한 멤버들 '자 그럼 우리 모두 무엇인가에 사과하는 마음으로 사과 들고 김치~' 기념촬영할 때 날려주었던 멋진 멘트. 지난 4월 12일 우도 장날의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위해 수고해주신 분들 (오른쪽 앞 줄부터 : 우도 면사무소 오용국 주무관님(도구 운반), 윤영유 우도 면장님(창호도배지 제거 및 청소), 할머니, 하이디님(도배담당), 전일환님(가구 이동 및 도배 보조), 나비님(창호지문), 사란님(창호지문과 청소 등), 파인님(부엌과 화장실 청소 전담) ⓒ 고성미
안방 BEFORE 도배 담당 하이디님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던 순간. 어서 빨리 깨끗하게 도배하자고요~ ⓒ 고성미
안방 AFTER 깨끗하게 도배된 안방에 장롱도 들여놓고 서둘러 보일러를 틀어 이부자리까지 깔아 놓았다. 하루 종일 눕지도 못하고 앉아계셨던 할머니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 고성미
초배지에 풀칠하고 있는 사란 님 ⓒ 고성미
비양동에서 해달섬 식당을 운영하시는 김광석 동장님 바쁜 와중에도 한 걸음에 달려와 내려앉은 천장을 수리해주셨다 ⓒ 고성미
도배 중인 하이디 님과 전기공사를 해주신 도사 님 ⓒ 고성미
우도에서 살려면 도배는 기본이죠. 정식으로 도배를 배웠다는 하이디님의 도배 솜씨. ⓒ 고성미
영차, 영차. 도배를 마치고 장농을 옮기고 있다. ⓒ 고성미
장농까지 옮겨놓고 보니 마치 새색시 방 같으네. 깔끔하게 마무리 청소를 해주신 파인님 ⓒ 고성미
BEFOR : 공사를 시작하기 전 건넌방의 모습 ⓒ 고성미
AFTER 새하얀 창호지로 바꾸고 청소와 정리를 마친 모습. 하이디님은 이 방까지 도배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 고성미
창호지문을 모두 떼어 내어 한지를 뜯어내기 위해 물을 뿌려 불리는 작업을 하는 사란님 ⓒ 고성미
불려진 한지를 뜯어내는 작업 가장 손이 많이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도 했다. 윤영유 우도 면장님과 나비님이 작업 중. ⓒ 고성미
하얀 한지를 새로 붙이고 마무리 작업 중. 나비님 ⓒ 고성미
BEFOR: 부엌의 모든 살림살이를 꺼내어 하루 종일 씻고 정리해 주신 파인님 ⓒ 고성미
AFTER : 밥공기, 반찬그릇, 유리 타파와 냄비 등 모든 살림살이가 깨끗하게 씻겨져 저 싱크대 안에 종류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 고성미
AFTER : 모든 세간살림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깨끗하게 물청소까지 마무리된 마당. ⓒ 고성미
우도 장날,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을 나서기 전 정이 많은 나비님이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며 인사를 드리고 있다. ⓒ 고성미
[사진] 우도 장날, 이런 모습입니다
우도 장날의 최연소 셀러들의 아지트. 집에서 키운 오이는 이미 완판되었고 작은 화분과 필기도구 그리고 인형 등이 남아있다. ⓒ 고성미
단돈 1만원이면 예쁜 소품들 몇 가지 득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 고성미
거북손, 보말과 같은 우도만의 핑거 푸드는 특히 외국인들에게 인기많은 메뉴이기도 하다. ⓒ 고성미
고급 천연염색 원단까지 등장.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고성미
단돈 5천원 가방을 포함 예쁜 소품들의 가격 ⓒ 고성미
소세지모듬꼬치. 매번 장날마다 완판을 기록하고 있다. ⓒ 고성미
원희룡 제주도지사 2016년 4월 1일 우도 면승격 30주년을 축하해주기 위해 우도에 들어왔던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우도 장날에 들러 셀러들과 인사를 나누고 격려의 말을 전해 주었다. ⓒ 고성미
예술가의 손으로 탄생한 우도의 또 다른 모습들. ⓒ 고성미
우도 장날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언제있을지 예측할 수 없는 번개 공연. 장날이 한창일 즈음 조용히 울려퍼지는 기타소리와 어우러지는 샹송. 바로 이런 순간이 관광객들에게는 색다른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는 것이 아닐까. ⓒ 고성미
장구소리에 맞추어 관광객들도 어깨춤 덩실덩실. ⓒ 고성미
'우도 장날'의 행동대장인 사란님에게 장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도 장날'은 아주 작은 규모의 프리마켓이에요. 돈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는 관광객과 우도의 주민이 한 자리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다는 희망이 더 크기도 하죠.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는 것도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이런 소박한 프리마켓에서 우도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가 되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우리는 돈보다는 마음과 추억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한답니다. 혹시라도 우도에 오시는 분들 우연히 금요일에 오시는 분들 시간 되면 우도 장날 한번 들려주셔요. 굳이 물건을 사지 않아도 그냥 들러서 우도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관광지 등에 대해 물어보셔도 좋고요. 또 우리가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찾아가는 봉사활동'의 현장에 잠시 들러 단 한 시간만이라도 함께 시간 내주시면 더욱더 감사하고요.

우리는 바로 이런 것들이 관광객들에게 조금 더 색다르고 진한 추억을 우리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얼마 전 우도 장날 카페(바로 가기)를 만들었어요. 저희는 장날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도록 준비 중이고요. 특히 이 달의 무료상품 목록을 만들 예정입니다. 운이 좋다면 여행 중 기분 좋은 '득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도깨비 공연도 준비하고 있으니 여행객 중에서 노래와 춤 무엇이라도 재능기부해서 우도 장날을 축제의 분위기로 만들어주시는 분, 환영입니다. 공연비는 못 드리지만 막걸리와 빈대떡은 쏠 수 있어요. 아무튼 우도 장날 많이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우도의 천진항에서 만날 수 있는 우도 장날 셀러 신청은 여기에서! 카페 http://me2.do/FMUN0wxn ⓒ 고성미

덧붙이는 글 | 우도 장날의 <찾아가는 봉사활동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따스한 손길입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독거노인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에 많은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태그:#우도, #우도 장날, #원희룡 제주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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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우도에서 살고 있는 사진쟁이 글쟁이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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