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잇는 또 하나의 세월호 참사 기록이다. 이전 책에서 유가족인 희생 학생 부모님들을 인터뷰했다면, 이번에는 사고 당시 10대였거나 20대 초반이었던 생존 학생들과 어린 유가족들을 인터뷰했다. 생존자들과 형제자매들은 사고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인터뷰에 참가한 생존자는 11명, 유가족은 15명이었다.
생존자들은 이제 스무 살이 되었고, 사고 당시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형제자매들은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다. 몇몇은 생의 가장 화려한 20대 초반의 시기를 동생을 잃은 슬픔과 함께 보내야 했다.

책 표지
 책 표지
ⓒ 창비

관련사진보기

책에서 아이들은 이제 더는 연민의 대상이자 보호의 대상에만 머물러 있지 않겠다고 말한다. 느꼈던 바, 생각했던 바를 누군가의 각색을 거치지 않고 직접 얘기하겠다고 말한다. 이제는 어른들이 바라는 바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움직이겠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의 다짐의 기록이기도 하다.

아직 어리고, 어려서 잘 모르고, 잘 몰라서 쉽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어른들의 뒤에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숨겨진 공간에서 실제 아이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다. 때론 무신경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들의 마음을 헤집었다.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제 명찰을 보시더니 "세윤이는 몇 학년이야?" 물었어요. 거짓말할 수도 있었는데, 학년마다 명찰 색이 달라서, 제가 사실대로 말해버렸어요. "그럼 세윤이 수학여행 갔어?" 멍청하게 막 다 대답을 했죠. "그럼 세윤이 그 배 탔겠네?"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고요. 너무 밉고 뭔가 창피하고 울고 싶고. 사람들 다 있는데서 솔직히 말하기 싫잖아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울었어요. 집에 오는 내내.' - 62쪽 반세윤,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아이들의 육성이 그대로 실려있다는 점이다. 더듬거리며, 울며, 아이들은 자기들만 살아와서 미안하다고 말했고, 동생이 보고 싶다고 말했고, 아빠의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말했고, 힘을 내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오빠를 볼 수 있으니 이제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고, 사는 게 무섭다고 말했고,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고, 친구들이 꿈에 나온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말을 지금에야 하게 됐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그 자체로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던 생존 학생들은 어렵게, 어렵게 사고의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이 차올랐는데,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 떠서 천장에 머리가 닿는 거예요. 그래서 입구로 잠수해서 나왔는데, 나오다가 어디에 걸린 거예요. 빨리 떠올라서 공기를 마셔야 되는데, 안 떠오르는 거죠. 눈은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 밀고 떠올랐다가, 다시 걸렸어요. 거기서는 조금 무서웠죠. 숨은 벌써 막히는데... 한번 더 걸리면 못 나가겠는 거예요. 그래도 또 올라갔는데, 다행히 (눈앞이) 밝아져서... 팍 나왔어요. 어디서 배 하나가 와서 저를 건져가고...' - 123쪽 박준혁,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제 발밑에서 애들이 손을 허우적대는 게 다 느껴졌어요. 저는 손을 쓸 수 없으니까 일단 제 발이라도 잡으라고 가만있었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발을 잡았어요.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애들이... 제 발을 놓쳤어요... 50인실이 엄청 넓거든요. 이거 물 차는 데 10초도 안 걸렸어요. 지윤이 말로는 캐비닛이 입구를 막았대요. 근데 제가 봤을 때는 아직 애들이 보였거든... 보였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애들이 틈 사이로 와가지고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면서 손 뻗는 걸 다 봤고 다 느꼈고...' - 166쪽 이시우,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점점 배가 기우니까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어른 한 분이 화가 나서 "왜 물 들어오는데 뛰어내리라고 말도 안 해주냐"고 했어요. 저희 보고는 빨리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그래서 뛰어내렸어요.' - 187쪽 김희은,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슬픔을 삼키는 아이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걸 아이들도 안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너져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기 자신을 다잡았다. 내 슬픔보다 부모의 슬픔이 더 클 테니까. 나까지 무너지면 정말 다 무너질 것 같으니까. 그래서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겉으로는 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다. 그렇게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 채 거기 그대로 남아있게 됐다.

생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만 살아왔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슬픈 기색을 하기 힘들었다. 그럴 자격이 본인에겐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했다. 아이들은 밖에서 자신이 세월호 생존자라는 사실, 단원고 학생이라는 사실을 말하길 꺼렸다.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자신들을 보게 될까 겁이 나고 무서워서.

보통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아이들에겐 너무 큰 일이 되어 버렸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혹 사람들이 내가 단원고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 나를 피하지 않을까. 유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얻은 직장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묵묵히 밥만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유가족이에요"라고 말해야 할 때, 사람들의 반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저는 혼자 진웅이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고, 조금씩 스스로 치유해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야기해봤자 다른 사람에게 슬픔만 줄 뿐이니...' - 72쪽 김진철, 세월호 희생 학생 김진웅의 형

'근데 갈수록 쌓이는 게 많으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초반부터 계속 힘든 거를 몸 안에 쌓고 있었으니까. 울지도 않고. '내가 불평하면 안 된다'라는 강박관념이 너무 심하니까... 괜히 남이 볼 때 제가 얼마나 불쌍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싫어가지고 겉으로 표현도 안 하고 울지도 않았어요. 혼자 있을 때만 힘들어하고. 혼자 많이 삭혔어요. 제가 고통스럽다고 말해서 남들까지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 45쪽 정수범, 세월호 희생 학생 정휘범의 동생

'처음에는 저를 좀 탓했어요. 그때 친구들을 더 데려왔더라면 하고. 같이 있던 친구 보라도 그렇게 구했으니까 한 명 더, 두 명 더, 이렇게... (…) 병원에서 상담할 때 이 얘기를 했더니 선생님은 잘 생각해보면 제가 못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대요. 그래서 지금은 생각만 해요. 그냥 상상만.' - 264쪽 김수연,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지금까지 어디 가서 단원고라고 이야기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진짜 무서웠어요. 사고 이후에 학교 다닐 때는 다 알아볼 것 같고. 미용실 같은 데 가서도 어디 학교냐고 물으면 다른 학교라고 거짓말 치고. 바른대로 말하면 그다음부터 보는 게 달라지니까.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거 싫으니까.' - 249쪽 한성연,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상실을 통과할 수 있게 도와줘야

416 세월호 참사 작가 기록단(아래 작가단)은 "부모의 고통이 강조될수록 형제자매와 친구를 잃은 생존 학생의 고통은 주변으로 밀려"나 버린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고통이기에 고통을 느낀다는 자체에 아이들은 죄의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허락받지 못한 애통함'이 아이들을 침묵하게 하고, 자기 안으로만 침잠하게 하며, 이에 결과적으로 회복이 가로막히거나 느려진다.

책을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고통과 슬픔, 상처에 무감해지려 너무 많은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을 위해 감정을 억누르기만 했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 했고, 혹여나 자기가 부모님에게 짐이 될까 노심초사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 있다는 걸 어른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이해해주고, 귀담아 들어주는 어른을 만난 아이들은 조금 더 빨리 회복의 길을 걸었다. 털어놓는 것 자체,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에 큰 힘을 얻는 듯 보였다. 그런 아이들이 가장 많은 불만을 털어놓은 건 무언가를 더 바라는 어른들이었다. "너가 더 잘해야 한다", "너가 부모님 잘 챙겨라" 같은 어른들의 말이 아이들에겐 생각보다 더 큰 상처가 됐다.

우리는 말로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서, 막상 그 아이들을 헤아리려 노력하지는 않았던 것 아닐까.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부모만이 아니다. 생존자와 어린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살았으니까 됐다", "어서 훌훌 털고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라며 아이들의 감정을 가볍게 취급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상실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채 홀로 응어리진 감정을 안에 쌓아두어야만 했다.

누구의 고통이 더 크고 작고를 따질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너무 큰 상실을 경험한 아이들이 지금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을 어른들은 공감해 줘야 할 것 같다. 이제 막 십 대 시절을 지나온 아이가 "저는 솔직히 사는 거에 대해 미련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이유가 "어차피 애들 보러 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라는 것. 지금 가장 바라는 소원 딱 한 가지가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거나, 과거로 돌아가 복도에 쭈르륵 앉아 있던 친구들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소리치는 것이라는 것.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침에 전철 타고 오면서 가면서도 막 울어요. 퇴근하면서도, 일하다가도 막 울어요"라고 말하거나, "슬픔이 조금씩 저를 갉아먹는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하는 어린 유가족들이 있다는 것. 이들을 헤아리려는 어른들의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작가단은 아이들의 회복을 위해 우리가 보내주어야 할 건 그래서 연민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아이들이 경험한 상실의 의미를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에는 '외상 후 성장'을 이루어내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요건이 나와 있었다. 관계의 응집력, 사회적으로 구성된 사건의 의미, 사회적 지지,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의 정도. 이 네 가지 요건을 보면 우리가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얼마나 미숙하게 다뤘는지 알 수 있다. "어리니까 몰라도 된다"가 아니라 각종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세월호 사고의 사회적 의미와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나가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회복에 무엇보다 도움이 될 듯 보인다.

이젠 가만히 있지 않을래요

사회가 미숙해서 또 무지해서 아이들을 방치해 두기만 했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스스로 커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세월호를 통해 어떻게 사회를 바라봐야 할지 배웠고, 고통과 슬픔을 통해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이며, 이제는 어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하고 있다.

세월호 1주기 때는 형제자매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고, 진상규명을 위해 다양한 일을 벌이고도 있다. 그러면서 말하길,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한다. 끝까지, 해결될 때까지, 참여하겠다고 한다. 더는 보호받을 어린이가 아닌 직접 사회를 바꿀 시민으로서 행동하겠다는 것이다.

'애들이 죽은 건, 침묵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이 시대의 어른들. 제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래서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난다면 죽는 것보다 더 비극적일 것 같아요. 그렇게 안 살기로 다짐했어요. 성호랑도 약속했어요. 불의를 보면 침묵하지 않고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그걸 넘어서 저보다 어린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의견을 존중할 거예요.' - 219쪽 박예나, 세월호 희생 학생 박성호의 누나

'진상규명은 필요한 일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선까지 최대한 해야죠. 아빠가 항상 말해요. "지금은 부모들이 하지만 나중엔 너희가 해야 된다."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그게 아빠 일이 아니라 제 일이지 않아요? 당연히 해야죠. 그동안은 미성년자였지만 이제 성인이잖아요. 그니까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거 같아요.' - 246쪽 장애진,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이번 단원고 교실 존치 피케팅하는 것 주제가 이거예요.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 또. 다. 시. 그래서 애들이 이렇게 됐는데,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하지만 부모님들한테 뭐라 할 순 없어요. 이해가 가니깐.(...) 지난 1주기때 형제자매들이 낸 성명에 이런 표현을 넣었어요. '엄마 아빠의 동료가 되어 진실에 다가가겠다'고요. 정치권의 임기는 몇 년이지만 세월호 형제자매라는 이름의 임기는 죽을 때까지니까.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 부모님 세대에서 밝혀내지 못하면 우리 세대에서라도 꼭 밝혀낼 것이다. 그걸 권력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엄마 아빠들한테도 말하고 싶었어요. 엄마 아빠들이 이렇게 하다가 지치셔도 우리가 자라난다. 권력은 지금 착각하고 있어요. 착각하면 안 돼요. 일이 년 지나서 끝날 일이 아니거든요.' - 333쪽 남서현, 세월호 희생 학생 남지현의 언니

이렇듯 이 책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존자와 어린 유가족들의 다짐과, 겨울 끝에 찾아온 봄의 새싹처럼 새로운 시간을 향해 힘 있게 일어나겠다는 아이들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계절은 오고 가고, 봄 역시 가고 또 온다. 내년에도 봄은 올 것이고,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면 그 봄엔 해결해야 할 세월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봄에 또 다시 바라게 될 것이다. 다음의 봄엔 해결해야 할 세월호가 아닌, 그립고 보고 싶은 세월호만 오게 되길. 그리워하고 추억하기 만도 모자란 시간인데 더는 다른 곳에 시간을 쏟지 않게 되길.

매해 다시 봄이 올 것이다. 언젠가는 진짜 봄이. 우리 모두의 바람 위에.

덧붙이는 글 | <다시 봄이 올 거예요>(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창비/2016년 04월 11일/1만5천원)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2016)


태그:#세월호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