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을 최소화해서 최대의 이익을 얻어 내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식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이만큼의 문명을 누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이 모든 것을 결정하도록 놔두면 그만큼 인간성은 상실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일까?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닐까? 'B급 좌파' 김규항은 자신의 칼럼에서 제주도의 해녀 할머니들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본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평생 물질로 살아 온 여든 된 해녀할머니에게 물었단다.

"스킨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더 많은 수확을 하실 텐데요?"
"그걸로 하면 한 사람이 100명이 하는 일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안 하세요?"
"그렇게 하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그러나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 한국에서 이런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배금주의가 비단 경제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종교, 역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뿌리박혀 있어서 이것을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흐름 가운데에서 '고비용 저효율'을 실천하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에게서 미묘하게 비슷한 점들을 발견한 듯해서 이들을 열거해 보고 싶어졌다.

[하나] 김태성 모헤닉게라지스 대표

모헤닉G 실내 모헤닉G 계기판과 실내 인테리어.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들은 보다 나은 완성을 위해 노력하고 또 기다린다.

▲ 모헤닉G 실내 모헤닉G 계기판과 실내 인테리어.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들은 보다 나은 완성을 위해 노력하고 또 기다린다. ⓒ 모헤닉게라지스


먼저 모헤닉게라지스(☞바로가기)의 김태성 대표. 요즘 불고 있는 갤로퍼 리스토어 열풍의 주역이다. 그는 원래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였다. 그가 운영했던 'THE디자인'은 실험적이면서 세련되고 모던한 가구디자인으로 승승장구하던 중 저렴한 중국발 카피제품들에 밀려 사업을 접었던 경력이 있다.

그 이후 자신이 타던 갤로퍼를 자신의 스타일로 리스토어 했고 이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의뢰를 받게 되면서 작업하던 공업사들의 완성도에 도저히 만족할 수 없게 되어 직접 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 모헤닉게라지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더 퍼스트 미디어>의 인터뷰 기사를 참고하면 된다(관련 기사 : 우리가 가면 그게 길이다! '모헤닉게라지스').

모헤닉G를 타기 위해 3년 동안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면 상상이 가는 일인가? 출고 예정에서 1년 이상 지연되고 있다면 가만히 있을 클라이언트가 있을까? 하지만 모헤닉게라지스는 계약자들마저 남다른지 이정도 기다리는 것은 예사이다. 심지어 더 늦게 출고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일찍 출고 받은 오너들이 억울해하기도 할 정도이다. 왜냐하면, 모헤닉게라지스에서는 출고가 지연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거나 새로운 작업이 적용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미 완성되었고 작동에도 아무 이상이 없는 배선을 더욱 심플한 회로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다시 다 풀어헤쳐서 배선 팀에서 자진해서 재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고급정비인력이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당한 원가 상승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보이지도 않는 부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각 파트마다 얼마만 한 정성을 쏟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표의 전공을 살려 디자인한 나무 소재를 사용한 계기판과 대시보드를 포함한 실내 인테리어 전체는 누구나 보기만 하면 반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모헤닉G를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이자 차량을 넘어 예술품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이다

[둘] 박성제 쿠르베 스피커 대표

쿠르베 2016 SIAS 서울국제오디오쇼 쿠르베 오디오 부스의 사진. MBC에서 해직된 박성제 기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꿈에 도전했다.

▲ 쿠르베 2016 SIAS 서울국제오디오쇼 쿠르베 오디오 부스의 사진. MBC에서 해직된 박성제 기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꿈에 도전했다. ⓒ 박경태


비슷한 창업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오디오계에도 있다. 쿠르베스피커(☞바로가기)의 박성제 대표. MBC 해직기자인 박성제 대표가 원래 자신의 취미였던 오디오에서 출발해서 수제 스피커 회사 대표가 되기까지…. 수익성을 우선해서 제작되는 기성품들에 만족하지 못해서 모든 물량과 정성을 쏟아서 만들기 시작했던 자신만의 스피커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하나 둘 만들어 주던 것이 결국 국산 스피커 브랜드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역시 더 자세한 내용은 <세상을 바꾸는 시간>의 503회 강연 영상에서 들을 수 있다(관련 영상 : 해직기자, 내친김에 창업하다)

"음악과 스피커를 좋아하던 40대 방송기자가 20년 동안 탈없이 다니던 회사에서 어느날 갑자기 짤렸습니다. 복직소송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방에서 가구를 만들다가 오랜 꿈이었던 스피커 제작에 도전!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신기한 모양의 스피커를 만들어 봤는데 의외로 쏟아진 호평에 힘입어 내친 김에 수제 스피커 회사 대표로 변신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로 창업해서 즐겁게 살고 싶다'라는, 직장인들이면 누구나 한 번씩 해보는 생각이지만 엄두를 못내는 꿈이기도 하죠. 그러나 일단 저지르고 좌충우돌하다 보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 꿈에 다가가는, 작지만 소중한 힌트를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셋] 이승환 드림팩토리 대표

<10억 광년의 신호> 재킷 이미지 음악계의 대표적 '고비용 저효율' 아티스트는 단연 이승환이다.

▲ <10억 광년의 신호> 재킷 이미지 음악계의 대표적 '고비용 저효율' 아티스트는 단연 이승환이다. ⓒ 드림팩토리


가요계에서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라면 단연 드림팩토리(☞바로가기)의 이승환이다. 그는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비용을 아끼지 않고 쏟아 붓기로 유명하다. 최고의 스튜디오와 최고의 세션들을 동원한 음악적 결과물은 그의 음반들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다. 20년이 넘게 활동하면서 발표해 온 수많은 음반들 중 어떤 것을 들어 보든 시대를 넘는 세련됨이 있는 고급스럽고 꽉찬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그의 안티들은 "그렇게 돈을 처바르면 누가 못하냐"고 비아냥 거린다. 하지만 훌륭한 예술적 결과물은 단지 돈만 많이 들인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예술적 감동은 비용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엇이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하다 보면 비용은 상승할 수밖에 없고 이승환은 그런 부분에서 타협을 하는 법이 없다.

그는 공연에 있어서도 최초나 최고의 온갖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무려 27년차의 중견가수가 작년에는 6시간 21분의 단독공연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올해는 7시간에 도전할 거란다. 그의 노래가 발라드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공연 시간 내내 소리 지르면서 뛰어 다니는데, 이번 총선의 국회의원 당선자 표창원이 형이라고 부르는 나이를 믿을 수 없는 절대동안과 무한체력의 비결이 정말 궁금하다.

"저는 사실 꿈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제가 하는 회사 이름도 드림팩토리고요. 20대 때 제 꿈은 키 크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유효하고요. 40대가 넘어서, 이런 말씀드리기가 예전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40대의 제 꿈은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이승환 '노무현 대통령 추모 문화제' 중에서

최근 들어 그는 사회적인 발언을 많이 하는 가수로도 알려져 있다. 가수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정치란 것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것이고 가수라고 해서 발언을 삼가야 할 이유도 없다. 더우기 노랫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가수라면 올바른 정치적 견해를 갖추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고, 정치적 올바름이라 함은 관심이 우리 시대의 약자들을 향해 있을 때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관련 기사 : 이승환이 보내온 10억 광년의 신호 해독하기).

그런 그가 지난 21일 신곡 '10억 광년의 신호'를 발표했다. 요즘 가볍고 반복적인 노래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낭만적이면서도 아련한 메시지를 묵직하고 진중한 사운드로 녹여낸 멋진 곡이다. 신곡의 뮤직비디오는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백종열 감독이 만들었다고 한다. 백종열 감독은 모헤닉G의 오너이고 영화에서 주인공의 차로 등장하기도 했었다.

신곡 발표 쇼케이스가 당일 저녁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있어서 다녀 왔다. 보통 가수들의 쇼케이스라 하면 기자회견과 함께 MR로 한두곡 부르고 마는데, 이승환은 신곡 발표를 위해 공연을 마련하고 풀밴드와 함께 수십명의 현악까지 동원해서 장장 세시간에 가까운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 주었다. 신곡을 팬들에게 제대로 들려 주기 위해서는 공연장의 사운드라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현장에서 듣고 보고 느낀 신곡의 감격을 말로 전하기는 어렵다. 마지막 가사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에서 울컥했다는 것 밖에는... 귀에 대고 속삭이듯 하다 어느 순간 고함 치고 절규하며 '날 용서해 널 사랑해'를 외치는 이승환.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이런 느낌이 쉽게 전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위에 언급한 쿠르베 스피커로 이 곡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다면 조금이라도 전해질까?

보통 이렇게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장인정신은 충성도 높은 열혈 팬들을 만들어 내고 결국 자본주의적인 성공으로도 이어진다. 자본주의의 역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주의에게 승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라 본다.

모헤닉게라지스 쿠르베오디오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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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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