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이재명 페이스북


'20대 개새끼론'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던 4.13 총선 직전, 참 많은 분석과 칼럼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나 이재명 성남시장이 "투표날 MT 가는 대학생들"에 관한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기름을 부었다. 그 실체에 대해서는 20대가 가장 잘 파악하고 있었다. 

"세대별 투표율 그래프를 보면, 20대가 제일 낮고, 그다음이 30대, 그리고 그다음이 40대예요. 왜 20대가 투표율이 낮으냐고 묻는다면 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정치에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에요. 저희가요, 19살 때까지는 '화장실 가도 되냐'고 물어보던 사람들이거든요. (일동 웃음)

애초에 성인이 되기 전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누구나 거리낌 없이 투표를 하러 갈 텐데, 우리는 그동안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투표 안 해도 누가 안 잡아가니까,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이해관계가 많아지니까요."

지난 11일 <프레시안>이 '첫 총선 투표를 앞둔 20대의 솔직 좌담' 중 20대 투표율이 낮은 이유에 대한 대학생 이연학씨의 답이다(관련 기사 : '진보 꼰대'들이 '20대 개새끼' 욕하는 이유?). 명쾌하다. 그렇게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사회 분위기가 그 수준인데 대학생들이 투표에, 정치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반론이다.

그럼 투표율만, 정치의식만 문제인 걸까. 흔히 '교육제도의 희생양'이라 일컬어지는 우리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안녕한 걸까.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사라진 14분 - 여대생 캠퍼스 추락 미스터리'>(아래 <그알>) 편은 한때 '상아탑'이라 불리던 한국의 대학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에 대한 일면과 더불어 점점 더 자율성과 주체성을 잃어 가고 있는 대학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 내 군기 문화가 부른 참극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 건물 4층에서 추락했지만 그는 그게 사고였는지 투신이었는지조차 기억 못(안) 한다.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 건물 4층에서 추락했지만 그는 그게 사고였는지 투신이었는지조차 기억 못(안) 한다. ⓒ SBS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 대학 도서관 건물 4층에서 추락했다. 칼로 벤 듯 턱은 상처가 깊었고, 오른쪽 발목은 심하게 부러져 있었다. 비명이 들려 달려간 도서관 직원이나 응급 요원 모두 그 여학생의 상태가 심각했다고 증언한다. 한데, 이 여학생은 자신이 왜 추락했는지, 그게 사고였는지 투신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14분간 기억이 없었다고 했다. 오전부터 연이은 수업에 참여했던 여대생은 어쩌다 처참한 몰골로 발견된 걸까. 진상은 이랬다. 피해자인 김세영(가명)씨는 오후 3시부터 이어진 학과 대면식에 참석했다고 했다. 대면식은 학과 교수님들과 선배들이 신입생들과 인사를 나누는 학과 행사다.

그런데 이 공인된 학과 행사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세영이 겪은 대면식은 그야말로 '군기 문화'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인신공격이랑 욕이란 욕은 다 하고…, 다리가 벌벌 떨렸어요"라고 진술했다. 대면식은 사실 전통이라는, 선후배 간의 친목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물리적·언어폭력의 장이었던 것이다.

삼수 끝에 입학한 학교에서 세영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이 많은 게 자랑이냐"와 같은 수모와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나이가 같거나 적은 선배들이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기 일쑤였다고 한다. 세영의 투신 역시 그러한 학과 내 군기 문화와 선배들의 괴롭힘과 관련이 있었다.

피해자인 세영은 깊은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못(안) 하는 상태였다. 이러한 피해자가 김세영씨 한 명뿐이라 짐작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방송에서 소개되지 않은 피해자들은 지금도 SNS에 글을 제보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각 대학 '대나무숲' 커뮤니티가 공론장이다. 20세기에 대자보가 있었다면 이제 '대나무 숲'이 그 기능을 어느 정도 가져간 것이다.

'대학교 대나무숲'이 횡행할 수밖에 없는 까닭

 우후죽순 처럼 생겨난 페이스북 '대나무숲'

우후죽순 처럼 생겨난 페이스북 '대나무숲' ⓒ 페이스북 갈무리


"치위생과 한 학생이 지나친 선배들의 군기 잡기로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교수들은 조용히 입단속 하라고 했다. 제발 많은 곳에 퍼트려 달라."

지난달 17일 한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나간 김세영씨 관련 글이다. <그알>이 고발한 내용은 이미 한 달 전 커뮤니티와 SNS를 뜨겁게 달궜던 사건이었다. 이 대학의 경우 개별 페이스북 '대나무숲'이 존재하지 않지만,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수많은 대학의 익명 게시판 역할을 하는 '대나무숲'은 대학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성희롱부터 군기 문화까지, 대나무숲에는 일그러진 대학생들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시 <그알>로 돌아가 보자. 세영의 경우는 따돌림과 괴롭힘이 투신 사건으로 연결된 심각한 사건이다. 우리는 <그알>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자리 잡은 대면식을 비롯해 군기 잡기 같은 군대 문화가 곳곳에 지뢰처럼 퍼져 있음을 확인한다. <그알>에 도착한 제보 내용만 얼핏 봐도 한숨이 나온다.

"선배가 내 SNS에 글을 썼는데 까먹고 댓글을 안 쓰면 바로 다음 날 연락 와요. 그리고 집합을 한 뒤에 선후배 간의 기본적인 예의를 안 지켰다고 폭언을 하죠."

"매주 일요일, 정해진 시간에 집합을 시켜요. 군대와 다를 바가 없어요."

"입에 막걸리를 머금고 얼굴에 뿜었는데, 선배님께서 얼굴에 내뿜을 때 눈을 감거나 더럽다는 표정을 지으면 얼차려를 받았어요."

더욱이 주로 남자 선배들에 의해 자행되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이미 심각한 상태까지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알>이 소개한 강간 '몰카' 사건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명백하게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성희롱의 경우 익명의 공간에서 폭로될 수밖에 없다. 지난 15일 사과문을 게재한 한국외대를 비롯해 신입생 환영회나 MT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으로 사과문을 게재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대학만 여럿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어른들을 공격할 것이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예고의 한 장면. '캠퍼스의 봄은 왜 잔인한 계절이 되었나'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예고의 한 장면. '캠퍼스의 봄은 왜 잔인한 계절이 되었나' ⓒ SBS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폭력들이 점점 구조적으로 안착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그알>에서 더 충격을 던져줬던 장면은 교수들과 학교 직원들의 대응이었다. 방송에 학교 이름이 나가지 못하게 사정을 하는 것도 모자라 대면식을 교수들이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폭력들이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했다.

자율은커녕 기어코 기이한 형태의 또래집단을 형성해야만 자생하는 현 20대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랄까. 다시 초반에 언급한 인터뷰를 되짚어 보자. "19살 때까지는 '화장실 가도 되냐'고 물어보던 사람들이거든요"라는 이연학씨의 말은 '20대 개새끼론'에 대한 반박일 뿐 아니라 군기 문화가 점점 심해지는 일부 대학들의 단면도 한 번에 설명해 준다.

<그알> 속, '대나무숲' 속 폭력적인 선배들은 어디서 뚝 하고 떨어진 존재들이 아니다. 강압적인 입시문화와 경쟁이 일반화된 교육 시스템이 만든 우리의 자식들이고 내 안의 괴물이다. 불과 15년, 20년 전만 해도 민주주의와 자율성' 그리고 주체성을 그리도 강조했던 대학문화가 빠르게 변질됐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변화의 책임을 모두 '신자유주의' 교육 시스템의 폐해라고 돌려 버릴 수 있을까.

안타까운 점은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마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리라. <그알> 속 학교의 무대응을 보라.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악마적인 시스템이 괴물 같은 아이들을 낳는 법이다.

진행자 김상중은 방송 말미 "지금은 2016년입니다"라고 말했다. 안타깝지만, 전근대적인 군기 잡기는 폭력이 21세기의 한복판인 2016년의 한국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잡대'라고, '학생들이 나쁘다'라고 손가락질할 것도 없다. 작금의 어른들이 만든 불쌍한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언젠가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을 공격할 것이다. 시대가, 한국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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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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