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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무지개재단은 2014년 창립 이후 사단법인 등록과 관련하여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2일 3차 변론기일이 있었고, 이전까지 총 4회로 성적소수자 단체와 사단법인 등록의 의미를 국내외적 사례 등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회에서는 2차 변론기일의 스케치, 2회에서는 아프리카 보츠와나 성적소수자 단체인 레가비보의 단체 등록 과정을 통해 보는 해외 사례, 3회에는 재단 사단법인의 법적 의미 그리고 4회에서는 사단법인 등록과 관련된 국제적 의견을 다룰 것입니다. -기자말

 법무부의 사단법인 불허가 공문
▲ 법무부의 사단법인 불허가 공문 법무부의 사단법인 불허가 공문
ⓒ 비온뒤무지개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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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출범한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성적소수자 인권단체로서는 최초로 사단법인 등록을 시도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동성애자인권운동을 위한 단체들이 만들어지고 활동해 온 지 20여 년. 하지만 성적소수자의 권익증진과 인권향상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들이 법인 형태로 만들어진 적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성적소수자 인권운동의 새로운 시도다.

비영리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 즉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주무부처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2014년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서울시 인권과 등을 비롯하여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에 법인 설립에 관해 문의했다. 하지만 난처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비온뒤무지개재단 설립이) '미풍양속에 저해'된다고 판단하지 않겠냐"는 서울시 담당자의 우려 섞인 답변이든, "신청해봐야 상임위원회에서 통과가 안 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의 충고든, 모두 비슷했다. 모두 성적소수자 인권이라는 말에 난색을 표하며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법인설립 신청을 꺼려했다.

최종적으로 법인 설립 신청을 낸 법무부에서는 신청한 지 6개월 만인 2015년 4월 불허가를 통보해왔다. 이에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사단법인 설립불허가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지난 4월 22일 세 번째 변론기일을 맞았다. 6월 3일 추가 변론이 진행된 이후, 최종 판결이 내려질 전망이다.

성소수자는 '보편적 인권' 대상 아니다? 황당한 법무부    

헌법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모인 개인들이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는 것을 국가로부터 방해받지 않을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가 개인의 단체 설립을 재량적으로 판단하여 허가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단체 설립을 국가의 판단으로 금지하거나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단체를 운영하고 관리하기 위해 법인과 같은 형태를 취하겠다는 것에 국가의 허가가 필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법무부도 충분히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와 같이 비영리법인 설립이 허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주무관청의 과도한 개입으로 헌법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하며 2014년 10월 이미 정부(법무부)에서 관련 민법 개정안을 냈기 때문이다.

비온뒤무지개재단에 대한 법인설립 불허가는 법무부가 스스로 우려하던 결사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행정소송에서 법무부는 '우리는 보편적 인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특정 영역·대상의 인권을 다루는 단체마저 소관 업무의 단체로 보면 제도의 혼란을 가져온다, 따라서 법인 설립을 불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분명 법무부 소관 법인인 많은 단체가 범죄피해자 보호나 법학 연구 등과 같은 '일반적이고 전반적인 인권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 외에도 청소년, 이주민, 다문화 등과 같은 특정 대상의 인권단체에게 법인 설립을 허가해왔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성적소수자 단체의 비영리 법인 설립을 허가하면, 다른 특정 대상 인권단체들의 신청이 난립하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게다가 이전 기사(관련기사 : 햇살은 만인에게 따뜻하지 않다)에서 밝혔듯이, 법무부는 과거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2014년도 이행상황(2016.2)'을 비롯하여 문서 상 성적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사항의 추진부서로 확인되고 있다. 또 2012년에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 및 그 시정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도 하였다.

지금 와서 '성적소수자 인권은 법무부의 소관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전문 지식이나 업무 경험이 부족'해서 다룰 수 없다는 것도 스스로 과거를 살피면 납득되지 않는 궁색한 논리일 따름이다.

사실, 성적소수자 인권을 소관 업무로 하는 정부부처가 '마치' 없는 것으로 보이는 현실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소수자 인권 정책의 일부가 구멍이 뚫린 채로 회피되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차별로 인해 인권상황이 취약한 사각지대에 놓인 소수자 집단의 인권 증진은 보편적 인권 증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집단의 개인들의 인권이 배제되고 있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인권이라면 곧 보편적 인권의 확보를 위해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하는 사안이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은 반복적이고 구조적이다. 따라서 국가가 가장 먼저 나서서 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해 움직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의 소관부처인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헌법상 평등권을 명시한 것으로는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평등이 이루어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만약 다른 부처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인권정책을 추진하거나 그 사무를 다루는 곳이 없는 상황의 사회적 소수자가 있다면, 그것은 보편적 인권을 다루는 법무부가 다루어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본디 소수자 인권 증진과 그 활동을 지원해야 하는 국가가 도리어 이를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은 책임의 회피이다.

법인으로 단체를 설립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제상의 혜택 등의 의미를 넘어서(물론 이 또한 성적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국가 지원 정책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사회적으로 신뢰성을 가지고 활동함을 공표하고 확인받는다는 의미다.

성적소수자 재단의 '커밍아웃' 누가 막고 있나  

비온뒤무지개재단 사무실 입구에 있는 2014년 퀴어문화페스티벌 슬로건.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비온뒤무지개재단 사무실 입구에 있는 2014년 퀴어문화페스티벌 슬로건.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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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무지개재단은 국가에서 외면하고 있는 성적소수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시민사회의 인권 활동을 지원하고 사회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사업과 모금운동을 한다. 이러한 활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법인 설립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중요하다.

법적으로 본다면 단체는 법인이 됨으로써 스스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법인격을 획득한다. 다시 말해, 사회에서 독립된 주체로 활동할 것을 법적으로 선언하고 공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법인 설립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단체의 공개 커밍아웃이기도 하다. 이마저도 2년 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성적소수자 개인들이 처한 상황이자, 한국 사회와 정부가 가진 차별의식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인권이다. 성적소수자의 인권증진을 위한 소수자단체의 법인 설립을 통해 결사의 자유와 평등 원칙을 실현해 나가는 이 과정 또한 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긴 행로의 한 자락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승현 기자는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이자 법학박사입니다.



태그:#비온뒤무지개재단, #법무부, #사단법인, #변론기일, #행정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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