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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2세 유아가 행인들의 방관으로 인해 숨진 사건이 담긴 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에 공개된 피터 싱어의 테드(TED) 강연 영상 '효율적 이타주의의 이유와 방법'을 캡쳐한 것. 영상 주소는 https://youtu.be/Diuv3XZQXyc
 중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2세 유아가 행인들의 방관으로 인해 숨진 사건이 담긴 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에 공개된 피터 싱어의 테드(TED) 강연 영상 '효율적 이타주의의 이유와 방법'을 캡쳐한 것. 영상 주소는 https://youtu.be/Diuv3XZQXyc
ⓒ 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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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중국인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승합차에 치여 피를 흘리는 두 살배기 유아를 행인들이 그대로 지나친 사건입니다. 사고 현장이 담긴 CCTV 화면입니다. 승합차 기사는 아이를 친 후 잠시 차를 멈추는데, 아이는 승합차 뒷바퀴에 1초 이상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분이 지나기 전에 3명의 행인이 아이 곁을 지나갑니다. 처음 지나간 사람은 심하게 다친 아이를 돌아서 지나갑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이를 목격했지만 그대로 내버려둔 채 지나갑니다."

2011년 10월,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사건을 알리는 뉴스 영상을 옮긴 것이다. 자동차 사고로 쓰러져 있는 아이 곁을 18명의 행인이 지나가는 동안 그대로 방치한 비정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후 아이는 또 다른 자동차에 치었고, 폐지를 줍던 아주머니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프린스턴대학교 생명윤리학 석좌교수인 피터 싱어는 2013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개최된 테드(TED) 강연을 이 뉴스 영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본인이 만약 사고 현장에 있었다면 다친 아이를 외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말했다.

대다수 청중이 손을 들었다. 싱어는 손을 들어 올린 사람들이 분명 아이를 도왔을 것으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너무 자랑스러워하지 말라"며 통계 자료를 하나 제시했다.

아동구호단체인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5세 이하 어린이 690만 명이 예방 가능한 빈곤 관련 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가 1200만 명이었던 1990년부터 사망자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피터 싱어는 이러한 감소 추세는 다행스러운 현상이지만, 690만 명이 사망했다는 것은 날마다 1만9000명이 빈곤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청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칠 일이 없는 이 1만9000명의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냐고.

싱어에 따르면, 빈곤으로 사망한 아이들과 중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아이는 윤리적 측면에서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다. 빈곤으로 죽어간 아이들이 나와 국적·인종이 다르다는 사실은 그들을 도덕적으로 달리 대우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생명의 가치는 경중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빈곤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어 사망자 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싱어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철학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피터 싱어의 철학은 그런 편견을 뒤집는다. 실천윤리학자인 그는 빈곤·기아를 비롯한 현실 문제에 공리주의를 적용하여 세상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철학을 알려왔다. 그런 그의 가르침은 머릿속의 공허한 지식에 머물지 않고 무수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2005년, <타임>지는 싱어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피터 싱어의 영향력은 인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1975년에 출간된 <동물해방>에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을 (성차별·인종차별에 빗대어) '종(種)차별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무수한 동물해방론자와 채식주의자를 탄생시킨 이 책은 '동물해방 운동의 바이블'로 불린다.

이 기사를 쓰는 기자 역시 <동물해방>을 읽고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됐다. 그런 피터 싱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물결을 이끌고 있다. 바로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철학·수학을 전공한 맷 웨이즈는 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 수강생이었다. 맷은 세계적 빈곤을 해결하는 방안에 대한 책을 읽던 중, 예방과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동 한 명을 살리는 데 드는 비용을 추산한 자료를 접했다.

그는 미국 평균소득을 자신의 예상 소득으로 잡고, 그 소득의 10%를 말라리아 방지용 모기장을 위험지역 가정에 공급하는 단체에 기부했을 때의 결과를 계산했다(말라리아는 세계적인 어린이 사망 원인 중 하나이다).

맷은 그 정도의 기부활동만으로도 평생 100명가량의 어린이를 살릴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어떤 사람이 불길에 싸인 건물을 목격하고 화재 현장으로 들어가 100명을 구조한다면 '영웅'으로 불릴 것이다. 그런데 맷은 보통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2년 후 대학을 졸업한 맷은 철학전공자에게 '꿈의 기회'라 불리는 옥스퍼드대학원 연구과정에 뽑히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다른 진로를 선택했고, 월스트리트의 증권선물거래 회사에 입사했다. 고소득 직업을 택하면 더 많이 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맷은 연봉의 절반에 해당하는 여섯 자릿수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 그 결과, 평생이 아니라 직장생활 한두 해만에 100명을 살렸고, 이후로도 매년 100명씩 더 살리고 있다.

맷은 효율적 이타주의자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각자의 한도 내에서 선(善)을 최대화하는 것으로, 오늘날 사회운동으로 부상하고 있다. <효율적 이타주의자>에서 피터 싱어는 남을 해치거나 죽이지 않는 기본적인 도덕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본인과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고도 돈과 시간이 남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물론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맷처럼 전부 고소득자는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효율적 이타주의자의 대다수는 부유한 사회의 평균소득층이나 저소득층에 속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은 매달 집세를 비롯한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금액에서 저축과 기부(가령 소득의 10%)를 한다. 그리고 기부를 위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검소한 생활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소박한 안락과 편의마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싱어는 지금 하는 기부가 억울하게 느껴진다면 과연 그것이 잘하는 일인지 재고하라고 조언한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이 즐거운 모범을 보여야 더 많은 사람을 동참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보다 '머리'로 하는 기부

 <효율적 이타주의자>
 <효율적 이타주의자>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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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 연민을 자아내는 사진은 사람들을 기부로 이끄는 대표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자신의 기부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구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본인이 기부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자의 기부 습관 역시 이런 유형에 가깝다. 그러나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감성보다 이성에 따르는 기부를 한다. 이들의 관심은 세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을 제공하기 위한 모금캠페인을 거론한다.

안내견 제공이 반드시 필요한 활동임에 틀림없지만, 같은 자원으로 가능한 대안들을 따져보라고 한다. 미국인 한 명에게 안내견을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4만 달러다. 대부분 안내견과 수혜자의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반면, 트라코마(개발도상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안질환)로 실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치료비용은 20~100달러에 불과하다. 같은 돈으로 미국의 시각장애인 한 명에게 안내견을 제공하느냐, 개발도상국에서 400~2000명을 실명으로부터 구할 것이냐의 선택에 직면했을 때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먼 나라의 빈민보다는 자국민을 돕는 쪽으로 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구할 수 있는 생명의 숫자를 중시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생명의 가치는 동일하니까.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선진국의 빈민보다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빈민에게 기부한다. 같은 금액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동물의 고통 경감을 위한 기부에도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한다. '동물구호활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주인을 잃은 개·고양이의 구조·입양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책에 따르면, 동물의 고통을 경감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소·돼지·닭 등의 농장동물을 돕는 것이다. 학대당하는 개·고양이는 식용으로 희생되는 동물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장동물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가혹한 고통을 겪으며 사육되고 도축된다.

특히 이 책은 채식주의 캠페인에 주력하는 단체들을 후원할 것을 추천한다. 게다가 육류소비 감소는 농장동물의 고통 경감 외에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책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방지를 원한다면 탄소발자국 지우기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것보다 채식을 홍보하는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남을 돕는 것'이 결국 '나를 돕는 것'이다

시각장애인 한 명에게 안내견 제공 vs. 400-2,000명을 실명 위험으로부터 구조, 당신의 선택은? 유튜브에 공개된 피터 싱어의 테드(TED) 강연 영상을 캡쳐한 것.
 시각장애인 한 명에게 안내견 제공 vs. 400-2,000명을 실명 위험으로부터 구조, 당신의 선택은? 유튜브에 공개된 피터 싱어의 테드(TED) 강연 영상을 캡쳐한 것.
ⓒ 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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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벌어서 많이 기부하는 것, 그리고 효율적인 자선단체의 직원이 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까? 동물과 무관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동물보호 전업활동가를 꿈꾸는 기자도 궁금했던 부분이다. 책에 따르면, 전자가 더 효과적인 선택이다. 자선단체 직원으로서 나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지만, 기부자로서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소득 일자리를 거절한다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월급의 상당량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게다가 내가 만약 최상위 고소득직종에 종사해서 소득의 절반을 기부할 경우, 자선단체는 그 돈으로 직원을 더 많이 고용해서 훨씬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

효율적 이타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단지 돈벌이를 위해 선택한 직업은, 설사 그 대가로 얻는 돈을 자선활동에 쓴다 해도 '인격을 좀먹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처사라는 것이다. 예전만큼 기부를 하지 못하게 될까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계속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기자 역시 이런 딜레마를 느껴왔다.

이에 대해 싱어는 어차피 세상에는 본인의 생계와 가족부양을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열정을 느낄 수 없는 직업이 본인이나 가족을 위한 돈벌이일 때는 괜찮고, 남들을 위한 돈벌이일 때는 인격을 좀먹는 일이 되는 건 아니라며 브룩스의 의견을 반박했다.

그런데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자신을 위한 소비를 줄여 남에게 기부하는 것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활동은 직접적으로는 남을 돕지만, 간접적으로는 자신을 돕는 행위다. 나 자신 또는 내 자녀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비는 완벽한 만족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소비를 통해 잠깐의 즐거움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곧 그 소비 수준에 적응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같은 양의 즐거움을 얻으려면 소비 수준을 높여야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쾌락의 쳇바퀴'에 갇히는 것이다.

삶에 필수가 아닌 것들에 적지 않은 돈을 소비하고, 가벼워진 지갑을 채우기 위해 힘겨운 노동을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또다시 물건을 구입하지만 즐거움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다. 싱어는 이러한 소비패턴을 '시지포스의 형벌'에 비유한다. 시지포스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는데, 산꼭대기에 이르면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져 다시 위로 올리는 고역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

책에서 싱어는 효율적 이타주의를 실천함으로써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그럼으로써 삶의 의미와 성취감을 찾고, 자존감의 단단한 기틀을 마련하라고 이야기한다.

앞에서 효율적인 이타주의자는 최대한 많은 숫자를 구할 수 있는 곳에 기부한다고 했다. 같은 금액으로 훨씬 더 많은 선을 행하는 단체가 '효율적인 자선단체'다. 효율적인 자선단체를 후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 따르면, 기브웰(GiveWell)과 같은 자선단체 평가기관에서 추천하는 단체에 기부하면 된다. 기브웰은 자선단체의 활동을 비용효과성 면에서 평가하고 홍보하는 기관이다. 그밖에 기빙왓위캔(Giving What We Can)·당신이구할수있는생명(The Life You Can Save)도 효율적인 자선단체 목록을 제공한다. 동물을 구하는 일에 기부하고 싶다면 동물구호평가회(Animal Charity Evaluators, ACE)가 추천하는 단체의 목록을 참고하면 된다.

기사에 언급된 자선단체 평가기관의 웹사이트 주소
기브웰: www.givewell.org/
기빙왓위캔:www.givingwhatwecan.org/
당신이구할수있는생명: www.thelifeyoucansave.org/

위의 세 단체 모두 어게인스트말라리아재단(Against Malaria Foundation)을 가장 효율적인 자선단체로 꼽고 있다. 어게인스트말라리아재단은 말라리아 위험지역 가정들에 모기장을 보급하는 자선단체다.

동물구호평가회: www.animalcharityevaluators.org/

동물구호평가회는 동물 복지 관련 자선단체들의 효율성을 평가하고 최선의 단체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동물구호평가회가 추천하는 동물보호단체로는 애니멀이퀄러티(Animal Equality)·머시포애니멀스(Mercy For Animals)·더휴메인리그(The Humane League)가 있다.

덧붙이는 글 | <효율적 이타주의자>(피터 싱어 / 이재경 번역 / 21세기북스/ 16,000원)



효율적 이타주의자 - 예일대학교 캐슬 강연

피터 싱어 지음, 이재경 옮김, 21세기북스(2016)


태그:#효율적 이타주의자, #피터 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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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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